탄핵 이후 우파의 이념적 취약성은 갈수록 악화
유튜브 시장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아
우파 이념, 고유한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 및 전파돼야
토론이 우파의 진짜 정치학습...정치학교 필요하다
매월 당비 1만원 내는 진성당원 50만명 갖춘 우파정당 만들어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유튜브에 익숙해진 지금 세대에게는 용어조차 생소하겠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는 VHS와 베타맥스 등 두 가지 표준을 둘러싼 전쟁이 치열했다. 두 표준의 특징을 칼로 무 자르듯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VHS 방식이 저가 보급형 기술이었던 반면, 베타맥스는 보다 고가 고품질 시장을 노린 기술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 전쟁의 승리는 보다 싸고 편리하게 카세트 레코더를 제공한 VHS에게 돌아갔다. 베타맥스 방식은 고화질 영상을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비디오 렌트 시장이 대세가 되면서 베타맥스 방식은 역사의 뒷마당으로 사라져갔다.

비슷한 사례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PC의 개념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은 초창기 시장의 선두주자였고 기술적으로도 앞서갔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PC의 표준을 장악한 IBM 호환PC에 시장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특히 IBM이 자신들의 기술을 개방해 수많은 업체들이 그 표준을 이용하게 만든 것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치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광범위한 대중에게 손쉽게 전파하는 능력이 정치투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이 능력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좌파는 구체적이고 도식화가 가능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그것이고, 주체사상도 비슷하다. 설계주의적 특성을 갖는 좌파 이념은 지식층과 활동가가 광범위한 대중을 설득하고 세뇌하여 지지층으로 만드는 데 유용한 무기 역할을 한다. 값싸고 쉽게 접근 가능한 VHS 방식의 비디오테이프, IBM 호환PC와 비슷하다.

우파 이념은 그렇지 않다. 좌파처럼 설계주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완결된 체계로 도식화하기가 어렵다. 우파의 이념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의 덩어리에 가깝다. 비가시적이고, 비정형이다. 그러니 단순 명료하게 요약하기도 어렵다. 그냥 삶의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단기간에 광범위한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념적 특성 때문인지 우파는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는 경우가 많다. 우파 이념은 탄탄한 지적 전통 속에서 정치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국가에서 주로 위력을 발휘한다. 역사적으로 우파 이념은 현실 정합성을 검증 받았지만, 지적 기반이 취약한 나라의 경우 좌파의 이념 공세에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적으로 앞선다고 평가받던 베타맥스 표준이나 애플 PC가 광범위한 대중 접촉면을 갖고 있던 VHS나 IBM 호환PC에 패배한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를테면 정치 이념 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한국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이런 이념적 취약성이 매우 두드러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우파의 이념적 취약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파 정치교육도 활발하게 시도됐지만 성공 사례는 별로 없다. 초창기에 많은 수강생들이 모였다가도 오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한다. 정형화 도식화가 어려운 우파 이념의 특성 때문에 커리큘럼 구성 자체가 어렵고 강사진 확보도 마찬가지다.

우파가 주도권을 쥔 것으로 평가받는 유튜브 시장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 도그마화하기 어려운 우파 이념의 특성상 각각의 논객이 상황과 이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쉽고, 그것을 통제 규율할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사소한 이견으로도 분란이 극대화되고 적대 진영을 대하는 것보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우파의 이념은 그 고유한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 및 전파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좌파의 이념 학습처럼 고정된 커리큘럼을 훈련된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대중의 머릿속에 세뇌하는 방식은 우파에게 적합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우파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경험주의 철학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우파 이념의 학습도 다양한 영역에서 우파들이 쌓아온 가치 있는 경험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우파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이념적 주제보다는 실제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고도화된 이론적 이념적 체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핵심은 일상 속에서 정치토론을 조직화, 체계화하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달리 대중은 실생활에서 직접 부딪히는 이슈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역의 이슈를 정치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토론이 장기 전망 위에서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토론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우파의 이념 자체가 장기적인 경험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토론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은 정당뿐이다. 정당은 이념 결사 자체이기 때문에 그런 토론을 이끌 자원을 보유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토론의 당사자는 당원이며, 토론 주제는 모든 당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핵심 관심사인 공직선거 후보 공천이어야 한다. 즉, 공천 문제가 정치 토론의 핵심 주제여야 한다.

바로 이 공직선거 후보 공천을 놓고 이뤄지는 토론이 우파의 진짜 정치학습이다. 여기에는 커리큘럼도 강사도 필요없다. 공천을 받고자 하는 당원의 정견 발표와 거기에 대한 당원들의 질의응답 그리고 철저하게 민주주의 일반원칙에 근거한 투표만이 중요하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의 지도부를 선임하는 투표도 마찬가지다.

이 토론 과정에서 정당의 이념과 정치적 가치관이 경험의 공유라는 방식으로 당원들에게 전파된다. 직업 정치인이나 선배 당원들의 축적된 경험이 평범한 당원들에게 전달되어 당원 전체의 역량을 키우고 이들 가운데서 공직선거 후보 등 직업 정치인을 배양하는 밭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당원의 자격이다. 공직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토론과 투표에 참가할 당원의 자격 문제는 이 토론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이다. 매월 당비 1만원 이상 납부하는 진성 당원에게 권리와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당에 대한 이 정도 참여와 애정이 없으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악질 분자가 당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것도 막기 어렵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되는 자격기준은 현재 매월 당비 1천원 납부이다. 이 정도 당비를 내는 당원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매월 당비 1만원이라고 하면 비현실적인 이상론이라고 느끼기 쉽다. 당원들의 심리적 저항감도 무척 강하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만원이라면 두 사람이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금액이고, 점심 한 끼 식사비용이다. 소규모 친목모임에서도 월 1만원 회비는 그다지 드물지 않다. 정당은 시민들의 현실 참여 활동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결단과 훈련을 요구한다. 엄밀히 말해 월 1만원 당비가 부담스러워서 못 내겠다는 당원은 거의 없다. 당원들이 월 1만원 당비도 내기 아까워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금 국민의힘 열성당원들은 특정 정치인의 개인적 추종자인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 당원이라기보다 특정 정치인의 조직원으로서 일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받으며 일해도 부족할 판에 엉뚱하게 당비를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설혹 자기 돈을 낸다 해도 그 돈은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위해 써야 한다고 여긴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당비 1만원을 내게 만들러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만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 무슨 이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격을 갖춘 당원으로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공직선거 후보로 내보내는 권리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문제는 우파 정당의 고질적인 리더십 부재 문제와 이어져 있다. 정치는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우파는 계속해서 리더십 창출에 실패해왔다. 탄핵과 전국규모 선거 4연패라는 충격적인 기록은 우파가 정치투쟁을 승리로 이끌 리더십을 만드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느 정당이나 선거를 전후해서는 공천 잡음이 터져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파 정당에서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나곤 했다.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보여준 공천 난맥상은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런 공천 난맥의 근본적인 이유는 당 지도부의 위탁을 받은 소수 인사들이 밀실에서 공천을 좌우하는 데 있다. 공천 기준도 분명치 않고 실제 그 기준을 적용한 구체적인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뒷말이 나오게 되고, 정당은 정치 메시지와 콘텐츠가 유통되는 결사체가 아니라 정치 이권이 거래되는 싸롱이 된다.

우파 정당의 정치 리더십 불임 현상이 심화된 것에는 이런 공천 파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우파 정당은 사실상 청와대의 국회 파견 조직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당원들이 자기 손으로 리더십을 창출해본 경험이 없다. 그런 관성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도 당원들을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에서 배제하고 구경꾼으로 남겨두는 현상이 이어져왔다.

당원들이 상향식으로 정치 리더십을 창출하는 시스템도 없고 당원들의 정치적 훈련도 부족한 상태의 해결책은 정치권 밖에서 출세한 유명인을 영입하는 것이다. 우파 정당에 변호사나 교수 등 명망가들이 특히 많은 이유가 이것이다. 그런데, 그런 명망가들이 정치 리더십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왔을까?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전개됐던 선대위 구성 갈등도 결국은 당의 주인인 당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국민의힘의 자산을 노린 빈집털이들이 서로 삿대질하고 몽둥이 휘두르며 싸우는 셈이랄까? 이들이 싸우는 동안 정작 당의 주인인 당원들은 잠들었거나 내 일 아니라며 팔짱 끼고 구경하는 판국이다.

좌파들은 시민단체 정치를 해왔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좌파 시민단체들이 어젠다와 인력을 민주당 등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좌파 빅텐트를 구성했던 것이다. 비록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이런 구조를 통해 좌파들은 광범위한 대중들과 연계하고 나름의 정치 생태계를 형성했다.

반면 우파는 극소수 정치 자영업자들이 대중과 괴리된 채 자신들만의 밀실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지지 대중을 구경꾼이나 박수부대로 만드는 행태를 몇십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우파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지지자와 당원들에게 죽창 주고 기관총 난사하는 적진에 돌격하라고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좌파의 시민단체 정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왔지만 약점도 많다. 기본 자세가 아마추어적이며, 대중적 광기에 휩쓸리기 쉬우며,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다. 특히 법치를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다. 우파는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통해 비로소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 정당정치의 출발이 진성 당원제의 정착이고, 진짜 정치학교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직선거 자격시험이라는 얄팍한 쇼맨십 대신 진성 당원제의 도입과 정착에 승부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젊은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런 정면승부였다고 본다. 친인척 등의 등쌀에 마지못해 써주는 1천원 입당원서와 스스로 국민의힘의 정치적 가치에 동의하여 내는 1만원 납부 진성당원. 우파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대선 승부와 별개로 이 정도 근본적인 혁신이 없으면 우파들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상상해보자. 매월 당비 1만원 내는 진성당원 50만명을 갖춘 우파 정당. 매월 걷히는 당비만 50억원, 연간이면 600억원이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지금보다 몇십 배 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

이걸 못한다고?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정치를 관둬라. 우파는 이걸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실천에 옮기는 정치 지도자와 그 깃발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 명제로 우파의 부활과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원하는 지지자들을 설득해 진짜 당원으로 조직할 수 있다. 진심은 통한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이럴 때 필요한 단어일 것이다.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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