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애국심의 기원, 조국의 탄생
[남정욱 칼럼]애국심의 기원, 조국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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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나라마다 건국 설화가 있다 대부분은 신화의 세계에서 형제가 서로 죽이거나 혹은 남매가 사통하는 등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막장이거나 유혈낭자다. 반면 우리의 건국은 세계사적으로 독보적이다. 동굴에 처박혀 쑥하고 마늘 먹기 시합을 해서 이긴 쪽이 하늘의 아들과 혼인한다. 경쟁은 있었지만 살상은 없었다. 단군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통해 알려졌지만 일연의 창작물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일연이 다듬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건국 설화는 전래민담이 기원이다. 이 건국설화를 아예 창작한 나라가 있다. 고대 로마다. 전형적인 문과 체질에다 전쟁능력이 부실하며 그 부족한 것을 간교함으로 돌파한 아우구스투스는 유사 황제 자리에 올라 ‘네이션-빌딩’에 착수한다. 이때 그의 주변에 있던 어용작가들이 베르길리우스와 리비우스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의 기원을 트로이전쟁에서 가져왔다. 불타는 트로이에서 탈출한 귀족이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했고 그의 16대 손이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두 어용작가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자의 기록을 가져오지 않고 패자의 기원을 취한 것일까. 무력에서는 ‘밥’이었지만 그리스는 로마에 선진문물을 전해준 나라다. 건국 신화까지 그들의 계보를 빌려오자니 자존심이 상했나 의심해 볼 수 있는데 로마는 그리스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로마는 실용적인 나라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들의 선조를 픽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애국심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찾는 한국인들은 그 앞에서 가슴 벅차게 민주주의의 의미를, 가치를, 소중함을 마음속에 새긴다. 교육이 이상하다보니 반만 배워서 그렇다. 민주주의도 유명하지만 아테네는 ‘애국심’을 발명한 나라다. 아테네 전성기를 지배했던 페리클레스는 대중연설 때마다 자유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는 애국심으로 결집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애국심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얘기다. 이때의 애국심은 소박하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 정도가 애국심의 범주다. 당시 사람들은 폴리스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실체가 불분명했다. 30만 명 인구의 폴리스는 국가라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약간 대상이 없는 애국심이었다. 그 대상인 ‘조국’을 발명한 게 로마인들이다. 그리스인들도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었지만 로마의 조국관은 차원이 다르다. 로마인은 자신들이 만든 ‘공화국’을 지켜나간다는 명확한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로마군으로 이들은 지휘관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에게는 언제나 자유보다 조국이 먼저였고 우선이었다.

결이 다른 두 개의 연설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인(당시는 미케네인)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인 헥토르의 대결이 중심이다. 헥토르는 두려운 눈빛의 병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시작한다. “내게는 몇 개의 원칙이 있다. 신을 사랑하고, 내 여자를 아끼고, 내 나라를 지키는 것, 이게 내 삶의 원칙이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아들들에게 조국 트로이를 위해 나가 싸우자는 말로 연설을 마친다. 무지하게 종교적이고 애국적이다. 트로이해변에 상륙 직전 아킬레우스 역시 부하들을 독려한다. 그는 자신이 이 전쟁에서 죽을 것을 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얻는 것이 영원한 명성이라는 것도 안다. 전쟁을 피해 편안한 삶을 살다 잊히는 대신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것을 선택한 아킬레우스의 연설은 이렇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도 이 전쟁에 나선다면 후세의 영웅이 내 이름을 반길 것이다. 용맹을 떨쳐보자. 우리는 사자다, 저 해변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영원한 승리다. 가서 쟁취하자.” 연설에는 신, 애국, 국가 이런 거 전혀 없다. 오직 자기 이름을 남기는 것만 중요하다(공격하는 입장이라 가족이 빠진 것 까지는 이해한다). 개인주의의 극치다. 로마인들이 승전국 그리스 대신 패망의 이름 트로이를 선택한 이유다. 개인의 명예가 오로지인 아킬레우스보다 질 것을 알면서도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성실하게 버티는 헥토르가 로마인들의 품성에 더 잘 맞았던 것이다.

MZ 세대의 새로운 애국심

40대 이상의 연령대는 ‘조국’에 익숙하다.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학교에서, 영화관에서, 길거리에서 골백번 다짐하며 보냈다. 그 아래 세대는 어떨까. 대학 내일이라는 매체에서 15세부터 59세 사이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보인다. X세대와 86세대는 응답자의 절반이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MZ세대의 동의는 29%였다. 반역자가 늘어난 것일까. 아니다. 애국심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달라졌을 뿐이다. MZ세대 역시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대답은 65%이상이었으며 다만 ‘희생’에 초점을 맞춘 기성세대와 달리 새로운 방향으로 애국심이 발휘되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애국자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는 않았지만 K-POP을 전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알아주고 인정할 때 애국심이 느껴진단다. 희생이 아닌 성취의 애국심이요 인정투쟁의 세계화다. ‘한복 챌린지’를 기억하실 것이다. 게임 속 한복 아이템을 중국 네티즌이 중국 전통의복이라고 주장하자 MZ세대들이 중국의 논리를 반박하며 벌인 온라인 대중국 반격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선한 오지랖’이 애국의 일환이 된 것이다. 전통미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MZ세대가 원하는 ‘힙’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속칭 대박이 난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goods는 애국심도 이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선 앞두고 MZ세대의 마음을 잡아보겠다며 여야 할 것 없이 아무 말 대잔치 중이다. MZ세대는 바보가 아니다. 퍼주기, 환심 사기, 아양 떨기 따위의 가증과 구태의연 말고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2030세대의 마음을 얻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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