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은 "내년 4월에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했다. 기준연료비를 2회에 나눠 킬로와트시(kWh)당 9.8원씩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4월에 인상 폭의 절반인 4.9원을 올리고 10월에 나머지를 올리게 되면, 가정용 전기요금은 연평균 5.6% 인상된다. 기후환경요금도 내년 4월부터 kWh당 2원씩 인상된다.

당시 한전의 발표에 대해, 억눌러왔던 전기요금 인상을 차기 정부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정치논리”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기요금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기요금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3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 부담을 한 스푼 덜어드립니다'라는 전기세 공약 발표를 열고,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이 정부가 졸속으로 밀어붙인 탈원전으로 발생한 한국전력의 적자와 부채의 책임을 회피하고, 전기료 인상의 짐을 고스란히 국민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정부의 인상 계획을 정면 비판했다. 특히 대선 직후에 전기요금을 올리겠다는 것은 과학과 상식이 아닌 ‘정치 논리’라면서,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것이다.

정부의 무리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매출이 급감한 소상공인들이 부담을 더욱 지게 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는 점에서, 공공 요금 인상에 민감한 민심을 잡는 한편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특히 윤 후보는 "AI(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디지털 산업 혁신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가져온다. 반도체 공장 1개 쓰는 전력이 대도시 전기량과 맞먹는다"면서, 낮은 전기 가격을 유지하는 건 디지털 혁신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원전 포함한 전력 공급 계획 선언

“(전기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한전의 적자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기자의 지적에 “원전, LNG, 석탄, 신재생 에너지 등 네 가지 에너지 믹스로 전력 공급을 한다. 어떤 에너지 믹스가 가장 적합한지 비용과 효율을 다 따져봐서 에너지 계획을 세워서 전력공급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비과학적 근거에 따라서 무조건 탈원전을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전기공급 계획을 무단으로 변경해선 안 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을 정면 비판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원가 상승도 보류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며 “가격 반영도 과학적 근거에 따라야지, 갑자기 대선 끝난 직후에 본격적으로 올리겠다고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며 "한전의 적자폭이 갑자기 늘어난 때는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이 추진된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해’다. 그래서 국제 에너지원의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한전의 적자 누적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된다.

대선이 끝난 직후인 4월, 전기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대선이 끝난 직후인 4월, 전기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 [사진=연합뉴스]

한전 적자 가중시키는 ‘기후환경비용’ 해결이 과제

한전의 적자를 가중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기후환경비용’이 지난해에만도 4조원에 달한다는 점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전이 14일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환경비용은 전년(2조6507억원) 대비 약 1.5배 늘어난 3조9334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기후환경비용에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용과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비용, 석탄발전 감축비용이 포함된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RPS 비용은 전년(2조2470억원) 대비 약 1.4배 늘어난 3조1905억원에 달했다. 전체 발전량 중 일정 부분을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하는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인증서(REC)를 구입해 RPS 비율을 맞춘다. 한전은 발전사업자들의 신재생에너지 생산 및 REC 구매 비용을 보전해 주고 있다.

영업비용 대비 RPS 비용의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5.5%에 달한다. 지난 2017년(2.8%)과 비교하면 2배가량 비중이 높아졌다.

한전은 지난해 1~3분기 영업손익이 3조2444억원에 달했는데, 연간 기준으로는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적자 규모와 RPS 비용 규모가 맞먹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중시킨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용도 차기 정부 과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RPS 비용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원자력발전 대신 풍력과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면서 늘어난 비용인 셈이다.

같은 기간 ETS 비용은 약 1.7배 증가한 4323억원, 석탄발전 감축비용은 약 2.2배 늘어난 3106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한전의 기후환경비용은 2017년(1조9713억원), 2018년(2조1529억원), 2019년(2조6028억원), 2020년(2조6507억원), 2021년(3조9334억원)으로 최근 5년간 증가세를 이어왔다.

이런 정책 비용의 증가는 결국 전기료 인상 압박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전기료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전기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 비용도 전기료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전 관계자, 탈원전으로 인한 ‘RPS 비용 증가’ 시인

펜앤드마이크는 14일 한전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재생에너지 대신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늘리면 RPS 비용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했다. 한전 담당자는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로만 발전을 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에너지 믹스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산업부가 결정하는 대로 우리는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산업부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무리하게 진행된 탈원전의 결과 RPS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에 따라 기후환경비용 역시 꾸준히 늘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촉진법(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RPS 상한은 2021년 10%에서 2026년 25%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올해 RPS 의무비율은 12.5%다.

앞으로도 탄소중립 비용은 계속 늘 수밖에 없어 장기적으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4월로 예정된 전기료 인상을 최소화하며 자구책을 마련하는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탄소중립 비용이 전 국민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합리적 비용 분담과 재원의 효율적 활용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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