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누가 ‘소 도둑’을 키우고 있는가?
[황인희 칼럼] 누가 ‘소 도둑’을 키우고 있는가?
  •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2.01.20 08:13:42
  • 최종수정 2022.01.20 19:2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마도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일은 정당화하고 오히려 찬양하는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 체제 사회에서의 도둑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자녀에게, 혹은 제자에게 “부자의 것을 빼앗아 나누어 가져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늘 도둑은 소 도둑이 된다. 역시 교육의 문제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유명 기업에서 엄청난 횡령 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잡혔지만 그 횡령 액수가 사상 최대라 했다. 2천만 원 혹은 2억 원이라면 돈의 크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2천억 원에 가까운 돈은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잘 안 된다. 기사를 보고 드는 생각은 ‘참 간도 크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라는 생각뿐이다. 설사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회삿돈을 훔친 것을 용서받을 수는 없다. 그런 제의가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중국집에서 시킨 음식 덜어둘 작은 그릇 하나를 덜 보내고도 가슴을 졸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 어마어마한 공금을 빼돌릴 수 있을까? 아주 잠깐, 우리 가족이 못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곧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런 짓을 상상도 못 하고 사는 우리 가족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어린 시절 들었던, 도둑질을 경계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옮겨본다.

한 흉악한 도둑이 있었다. 저지른 죄가 너무 커서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집행에 앞서 형리가 그에게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나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어머니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습니다.”

마지막 소원이라니 인도적 차원에서 그 어머니를 데려다주었다. 도둑의 어머니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풀어헤쳐 도둑의 얼굴 앞에 대주었다. 그런데 그 도둑은 느닷없이 어머니의 젖가슴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놀란 관리들은 어머니를 떼어놓으며 왜 그런 짓을 했는가 그에게 물었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도둑질을 했을 때 어머니가 나를 때려서라도 그 버릇을 고쳐주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죽지는 않을 겁니다. 어머니가 원망스럽습니다.”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바늘 도둑은 소 도둑으로 자라나니 어린 시절의 도벽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경고가 담긴 이야기이다. 그런 의지가 실현되는 것을 실제 곁에서 본 적도 있다.

1
횡령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20대 중반, 나는 회사에서 개최하는 강좌 진행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강사 중 한 명이 조용히 내게 물었다.

“지난번 강사료를 못 받았어요. 확인해줄래요?”

급히 확인해보니 경리부에는 그 강사의 자필 서명이 선명한 영수증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이 강사료를 빼돌리고 영수증에 서명까지 일필휘지 자기 필체로 ‘멋지게’ 휘갈겨 제출했던 것이다. 상황이 들통나자 그 직원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때 그 웃음 못지않게 나를 분노케 한 것은 그가 강사의 필체를 흉내 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명문대 출신의 그 직원을 권고 사직케 했다. 강사료는 지금 돈으로 30만 원 정도였다.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면서 내 상사인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때 사무국장의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이후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요즘의 부모, 어른 중에는 자식에게, 어린 세대에게 도둑질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가르치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예의 직원처럼 도둑질을 “살다 보면 더러 저지를 수도 있는 일” 정도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초등학교 앞 무인 문구점에서 다량의 문구를 도난당한 일이 일어났다. CCTV를 확인해보니 초등학생 몇 명이 문구들을 가방에 쓸어 담고 있었다. 문구점 주인은 범인들을 잡아 그 부모들에게 배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다가 경찰 조사가 본격화하니 피해자가 제시한 배상 금액의 절반씩을 입금했다고 한다.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피해자 문구점 주인은 그 돈을 돌려보내고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
얼마 전 초등학교 앞 무인 문구점에서 다량의 문구를 도난당한 일이 일어났다(이 사진은 본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기사만 가지고는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초등학생 부모 쪽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일을 키운 그 부모들의 태도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 우리 앞 세대의 부모들은 그런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직간접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일단 잘못은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있음을, 자식이 저지른 짓이 범죄 행위임을 확실히 인식한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자녀를 끌고 피해자에게 간다. 가서 피해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든 무릎을 꿇든 잘못했다고 빌게 한다. 그런 다음 배상에 대해 얘기한다. 최선을 다해 배상할 것이나 이쪽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얘기를 정중하게 한다. 혹여 피해자가 “괜찮습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얘기를 하면 백배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서 자녀를 다시 한번 꾸짖으며 재차 사과하게 한다. 만일 피해자가 끝내 배상을 요구하면 최선을 다해 갚으려 애쓴다. 여의치 않으면 자녀에게 피해자의 가게에서 잔심부름이라도 하게 하여 인건비로 손해 비용을 갚게 한다. 어쨌든 어떻게라도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번 ‘문방구 사건’의 부모들은 이런 인식을 갖고 이런 과정을 치렀을까? 피해자가 용서하기 전에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자신들이 먼저 용서하고 끝내려 했던 건 아닐까? ‘피해자에게 끌려가서 빌 때의 수치심은 아이에게 평생 상처가 된다’라는 생각으로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는 과정을 거부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잘못을 용서받으면 그 잘못의 크기에 대해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면 똑같은 잘못을,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자녀를 오히려 망치는 일이다. 그 수치심이 평생 상처가 될까 걱정하는 것보다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백신으로 작용하길 기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문득 생기는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부자의 소유를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이 도둑질을 정당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미 그런 공산주의식 사고를 어릴 때부터 교육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없으면 없으니까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 것이 정당하다, 부자는 무조건 악이고 빈자는 약자이며 무조건 선이니 부자들을 괴롭혀도 된다, 내가 부족할 것이 없어도 더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은 상관없다, 부자가 가진 것은 더 큰 도둑질로 이룬 것이니 그것을 빼앗아도 상관없다’라는 등의 생각은 도둑질에 합당한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또 이는 스스로 도둑질을 하고 ‘장물’을 취했다는 자인(自認)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일은 정당화하고 오히려 찬양하는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시장 경제 체제 사회에서의 도둑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자녀에게, 혹은 제자에게 “부자의 것을 빼앗아 나누어 가져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늘 도둑은 소 도둑이 된다. 역시 교육의 문제이다.

3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자녀를 오히려 망치는 일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