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값이 한풀 꺾이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집값 안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동안 집값 급등 때문에 애를 먹은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하향 안정세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 안정세를 자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제3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최근의 공급 확대, 심리 진정, 금리 추이, 글로벌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시장 하향 안정세는 더 속도를 낼 것"이라며 "특히 그동안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했던 부분에 대한 일정부분의 하향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회의에서 '일정부분 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입장이다. 확신에 찬 어조로 집값 하락 안정에 자신감을 내비친 홍 부총리는 몇 가지 관련 주요 지표를 제시하며 힘을 실었다.

최근 집값이 한풀 꺾이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집값 안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사진=연합뉴스]
최근 집값이 한풀 꺾이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집값 안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사진=연합뉴스]

① 아파트 매매가격과 매수우위지수가 연속 하락

정부는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1년 8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1월 들어서는 강남, 서초 등 다수 지역 실거래가가 신고가 대비 1억원 이상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1월 넷째 주 부동산 시장에서 수도권 아파트가 2019년 8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매매가 상승세를 멈추고(0.00%) 서울 아파트는 2020년 5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0.01% 하락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을 비롯해 대전(-0.04%), 세종(-0.19%) 등 광역 단위의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고 기초 단위로는 전국 조사대상 176개 지자체 가운데 하락 지자체수가 54개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거래의 경우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거래에서 5채 중 4채가 이전 신고가 대비 하락했으며 1월 들어서는 강남, 서초, 성동, 일산 등 다수 지역에서 1억원 이상 하락한 거래사례가 지속 포착되는 등 체감의 폭이 더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또 주택 선행지표인 KB부동산 매수우위지수도 22주 연속 하락(46.6)하며, 지난 2008년6월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홍 부총리는 설명했다. 매수우위지수는 중개업소 설문을 통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0~200으로 지수화한 지표다.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매도세가 매수세보다 더 강함을 뜻한다.

② 전문가와 국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하락 추세’ 전망이 우세해

또 홍 부총리는 전문가와 국민 설문조사 결과 역시 ‘주택 가격 상승보다는 하락’을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전국 주택가격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락 전망이 51.3%로 더 많았다.

한국은행이 서울거주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1월 95로 나타났다. 100 이하일 경우 하락 응답비중이 상승 응답비중 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거주자 절반 이상이 올해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이 지표는 작년 11월 113, 12월 101에 이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③ 2·4대책도 시장 하향 안정에 기여했다고 자평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지난해 8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며 발표한 2·4 대책(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대책)도 집값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대책 발표 직후 물량효과로 단기 시장불안 완화 및 하반기 들어 후보지·지구지정 본격화로 최근의 시장 하향 안정화 추세에도 핵심적으로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2·4 주택공급대책은 규제완화, 신속 인허가, 파격적 인센티브 등을 통해 '공급쇼크' 수준의 83만6000호를 공급하고, 도심공급 지정에서 분양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13년에서 1.5년으로 단축하는 등 공급모델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11곳, 1만호를 포함해 금년 중 도심복합 5만호, 공공정비 5만호, 소규모 정비 2만3000호 등 후보지를 추가 선정한다"며 "기발표한 후보지 전량에 대해서도 연내 지구지정 등을 완료토록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봄 이사철 시장상황과 대선 등 변수 많아 하락론은 시기상조?

정부의 이런 자평과 달리, 시장에서는 후보지의 대부분이 실제 개발로 이뤄질지 불투명한데다, 차기 정부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후 2·4대책은 추진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차기 정부가 계승할 만큼 모범적이거나 정착된 모델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차기 정부가 2·4대책을 이어갈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섣불리 집값과 전셋값 하락 안정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설 연휴 이후로 변화가 많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휴 이후에는 봄 이사철이 맞물려 있고, 게다가 대통령 선거도 앞두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 이슈가 앞으로 집값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선거 이후 부동산 정책이 바뀔 수 있고 지역별로 개발 이슈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선거 변수가 있을 때는 시장을 지켜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월세 상한제에 갇혔던 물량 나오면 전세값 상승폭 커질 수도

부동산 전문가들은 특히 최근 하향 안정세가 뚜렷한 전셋값도 설 이후 매매가격 상승률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는 3월과 6월 대형 선거 이벤트가 있는 만큼 전셋값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게다가 계약갱신청구권의 사용이 만료되는 임대 매물들이 5~6월 시장에 신규로 나오면서 시세를 상승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 2년간 전월세상한제의 5% 룰에 갇혀 있던 물량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 시세와의 ‘키 맞추기’가 이뤄지면서 전셋값 상승폭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는 "금리 인상과 대출 강화가 심리적으로 수요 위축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전셋값이 안정세로 갈 수 있을지 불안한 부분이 있고,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완전히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동산에 투자 하려는 수요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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