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확인된 文정부의 ‘우물안 스포츠 외교’...통역 없이 항의했다
베이징서 확인된 文정부의 ‘우물안 스포츠 외교’...통역 없이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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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한국팀 남자 선수들은 심판진의 공정하지 못한 실격처리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대한체육회는 8일 중국 베이징의 대회 메인 미디어 센터(MMC)에서 쇼트트랙 판정에 항의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홍근 단장의 긴급 기자회견, ‘통역’ 없이 한국기자 상대로 ‘퍼포먼스’?

펜앤드마이크가 10일 YTN의 기자회견 동영상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날 선수단은 ‘통역’을 배치하지 않았다. 한국기자들만을 상대로 항의 퍼포먼스를 벌인 셈이다. 잘못된 판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국제사회 여론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본으로 요구되는 영어 통역조차 없었던 것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었던 것도 문제로 꼽힌다. 결국 선수단이 판정의 부당함을 공식화하고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 억울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외교의 부재’를 확인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인 윤홍근 한국선수단장과 유인탁 부단장,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 이소희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코치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윤 단장은 전날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실격처리 당한 황대헌, 이준서의 사례가 ‘편파 판정’이라고 주장하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홍근 한국선수단장은 8일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남자 쇼트트랙 1,000m 편파 판정과 관련,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윤홍근 한국선수단장은 8일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남자 쇼트트랙 1,000m 편파 판정과 관련,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윤 단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기흥 체육회 회장과 유승민 IOC 선수위원을 통해 바흐 위원장과의 즉석 면담을 요청해놨다"면서 "이런 부당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바흐 위원장에게)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편파 판정 사태는 심각...윤홍근 단장은 강도 높은 비판 제기

윤 단장의 어조는 단호했고 발언의 강도도 높았다. 그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지난 7일 황대헌(강원도청)은 쇼트트랙 남자 1500m 준결승 1조 1위를 차지했지만 페널티 판정을 받아 결승행에 실패했다. 2조 2위에 오른 이준서(한국체대)도 마찬가지로 결승행이 좌절됐다. 한국 선수들이 빠진 자리는 모두 중국 선수들이 채웠다.

중국 선수들이 3명이나 출전한 결승전에서도 황당한 판정이 이어졌다. 헝가리의 사올린 샨도르 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심판은 그에게 두 개의 페널티를 줬고, 중국의 런쯔웨이가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받았다.

윤 단장의 기자회견에는 우리 취재진 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노골적인 편파 판정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로이터 통신 기자는 ‘통역’없는 발표에 항의하며 자리 떠나...일부 국내 기자들은 ‘통역 부재’ 추궁

하지만 국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포츠 외교의 기본인 ‘통역’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수단의 강력한 항의 및 향후 대응 계획 발표는 ‘우물안 행사’에 그쳤다.

윤 단장의 발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로이터 통신 기자는 통역이 배치되지 않은 데 대해 항의하며 자리를 떴다.

윤 단장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어진 기자들의 질의 시간에 모 신문사 기자는 “국제적인 행사이고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다른 나라에도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통역이 준비되지 않아 로이터 통신 기자가 항의하고 나갔다”며 “AP 통신 기자도 와 있고 방송 카메라도 돌아가는데, 준비가 제대로 좀 안 된 건지 궁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선수단은 “새벽에 갑작스레 룸을 빌리면서 관련된 사항들을 요청했는데, 그 부분 준비가 어렵다는 것을 아침에 통보받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부득이하게 내부적인 사항으로 준비를 못했다며 “어렵게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을 강조했다.

또다른 기자, “체육회에 영어 하는 사람도 없나”

선수단 관계자의 답변에 또다른 기자도 불만을 제기했다. “체육회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기 앉아서 (답변)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지적했다. 자칫 우리나라만의 문제 제기로 그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담긴 지적이었다. 편파 판정의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이고, 다른 나라에도 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선수단 관계자는 “그 부분도 생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에 갑자기 상황이 좀 바뀐 게 있어서”라며 양해를 구하고, 다음 질문으로 재빠르게 넘어갔다. 판정의 부당함을 공식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 국제적인 여론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기흥 회장과 윤홍근 단장, 9일 회의서 ISU의 ‘무성의한 대답’만 들어

지난 8일 윤홍근 한국 선수단장은 7일 열린 남자 쇼트트랙 1,000m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ISU 및 IOC에 항의서한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지난 8일 윤홍근 한국선수단장은 7일 열린 남자 쇼트트랙 1,000m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ISU 및 IOC에 항의 서한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윤 단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우리 선수단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와 IOC에도 항의 서한문을 이미 보낸 상태였다. 그에 따라 9일 오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윤 단장은 ISU 얀 다케마 회장 및 대회국장·경기국장과 온라인 화상회의를 실시했다. 현지시간 오후 3시에 시작해 총 30분 간 진행된 회의에서 이 회장과 윤 단장은 지난 7일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준결승에서 발생한 판정을 두고 "편항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잘못된 판정으로 ISU의 명예가 훼손되고 실추될 수 있으며, 한국 선수단과 ISU의 신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우려와 함께, 당장 이날부터 올바른 판정을 내리는지 지켜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ISU는 물러서지 않았고, 자신들의 입장은 "7일 발표한 결과와 변함없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서 벌어진 판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ISU는 또 "공정한 판정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했다.

ISU 국제심판인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은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ISU는 오심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심판진의 모든 것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면서 "정말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유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스포츠 외교의 부재 탓에, ‘유감’이라는 표현도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대한체육회와 선수단은 ‘국제적 여론 형성’에 실패...ISU가 ‘유감’이라는 말도 하지 않아

이를 두고 체육계에서는 ‘국제적인 여론 형성에 실패’한 결과라는 지적과 함께 ‘스포츠 외교의 부재’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통역 준비 등 해외 통신사 기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탓이라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회장이 2016년 빙상연맹 회장을 그만둔 이후, IOC와 ISU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포츠 외교 시스템 부재와 전문가 육성을 소홀히 한 탓에,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기간에 CAS에 제소를 한 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체조 양태영 선수 사태 이후 18년 만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펜싱 신아람의 ‘잃어버린 1초 사건’, 그리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피겨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 사건’ 때도 제소를 하지는 않았다.

판정 번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CAS는 규정 오적용이나 심판 매수 이런 비리가 아니면 아예 심리 대상에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측의 심판 매수 등의 정황이 있다면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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