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2월 7일 전주 차명자산 ‘평화의 전당’에 제의를 차려입은 천주교 사제들과 수녀들 그리고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였다. 추최 단체인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시국 기도회’를 연다고 했다. 정구사 대표 사제인 김영식 신부가 등단했다. 김 신부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로 마이크를 잡았다. 금세라도 복음을 전파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기도도 복음도 아니었다. 그가 낭독한 것은 ‘천주교 평신도·수도자· 사제 1만 5천 인의 호소’라는 성명서였고, 내용은 특정 대선 후보를 미화하고 다른 후보를 비방하는 사실상의 선거유세였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당연히 사제들도 국민이고 유권자이니 누구를 지지하든 조용히 결정해서 투표하면 된다. 그러나, 꼭 사제들이 천주교의 이름을 내걸고 정치행사를 벌려야 하는가?

사제의 길, 고난과 희생 그리고 영광의 길

천주교 사제의 길은 무수한 고난과 희생 그리고 빛나는 영광의 길이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선정과정과 7년 이상의 수학을 거쳐야 하며, 결혼, 후손, 재산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서품식에서 예비사제들은 제대 앞에 엎드려 맹약한다. “영원하신 스승이자 사제이시고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의 법을 목상하고 묵상하는 것을 읽으며, 읽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며,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겠다”고 언약한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과 말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하여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행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고해성사를 통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며, 병자성사를 통해 앓는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서약한다. 이렇게 서품을 마치면 사제로서 행할 수 있는 특권과 함께 무거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자식을 사제로 내보낸 부모들은 매일 새벽미사에 나와 기도하며 서품식에서는 바닥에 엎드린 자식들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이를 바라보며 경건함에 압도된 신자들의 눈가도 젖어든다. 당연히, 신자들은 하늘의 영광을 위해 세상 욕심을 모두 버리고 희생의 길을 택한 사제들과 수녀들을 존경한다. 이것이 천주교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정구사의 등장과 함께 이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념화와 좌경화

지금의 정구사는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도망온 민주시위자들을 숨겨주었던 그 때의 정구사가 아니다. 이들은 좌파이념을 선전하고 구현하는 정치세력이 되어가고 있으며, 독재든 파렴치 범죄든 불공정 보도든 좌파의 흠결에는 침묵하고 반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내로남불 정치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날 ‘기도회’에서도 김영식 신부는 성명을 통해 “주술권력에게 칼을 쥐어주지 말고 이성적 평화세력에게 미래를 맡기자”고 호소했고, 그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 위한 정의로운 선거’라고 했다. 한 쪽을 ‘이성적 평화세력’으로 미화하면서 다른 쪽을 ‘작두 무당’인양 비하한 것이다. 여야 후보 모두가 이런저런 전력과 흠결로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판단은 유권자 각자의 몫이다. 때문에 한 사람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못본체 하면서 다른 사람의 티끌을 과장·비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며 천주교 사제가 할 일도 아니다. 선거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집회를 '기도회'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천주교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한국에는 순교자 성지가 유난히 많다. 조선조 말 천주교 탄압 시절에 수많은 교인들이 순교했고, 6·25를 전후해서 공산당 치하에서 많은 사제와 수녀들이 즉음을 당했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를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정구사 사제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부인하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추종자가 되어가는 이 모순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종전체제∙평화체제로의 함정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김 신부는 정전체제를 종전체제∙평화체제로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번영 노력을 이어갈 정부가 필요하다는 말로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을 촉구해온 기존 입장을 내세우며 또 다시 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하지만, 정구사 사제들과 그들을 따르는 수녀들과 신자들이 종전체제∙평화체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침략 흑심을 숨긴 일방이 있거나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못하는 상호 억제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체결된 평화협정들은 모두 깨졌다. 정구사 사제들은 이 역사적 교훈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일까? 한 장의 문서에 적힌 또는 세 치 혀로 말하는 평화를 믿고 방심한 국가는 패망하고 국민이 대학살을 당했던 무수한 사례들을 들어보지도 못한 것일까? 이런 교훈과 사례를 종합한다면, 불변의 주체통일 목표를 하에 도발을 일삼는 핵무장 북한이야말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체결해서는 안 되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상대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믿고 방심 속에 ‘민족’과 ‘반미’를 외치면서 혼란을 즐기던(?) 남베트남은 2년 후 북베트남이 평화협정을 깨고 남침을 재개하자 56일 만에 패망했다. 미군이 떠나면서 남겨준 수많은 군사장비들은 영혼이 떠나간 남베트남군에게는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조종사들이 도주함에 따라 전투기들은 이륙하지도 못했고,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국제 패튼(patton) 전차를 타고 사이공에 입성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의 좌파들은 “평화가 왔으니 동맹도 주한미군도 필요없다”고 외쳐댈 것이며, 안보가 무엇인지 모르는 철부지들은 환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심각한 사회불안과 안보위기가 닥쳐올 수 있음이 불보듯 뻔하다. 정구사 사제들은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고 교회가 있어야 사제도 있다는 이치조차 모르는 철부지들일까?

‘평화를 위한 몸부림’을 ‘호전적 의지’로 매도하나?

김 신부는 야당 후보의 ‘선제타격∙사드 추가배치’ 발언을 ‘호전적 의지의 과시'라고 일갈했고,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정말 그럴까? 북한이 1분 이내에 서울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미사일들을 무수히 보유하고 있으니, 군통수권자가 대한민국을 향해 발사될 징후가 있을 때 먼저 파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선제타격이란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고 재정 소요가 많아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국군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미사일이 날아오면 막아내야 하고, 도발에 대해서는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요컨대, 선제, 방어, 응징 등 3대 군사역량을 의미하는 ’3축 체제‘란 그런 힘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전쟁이나 도발을 엄두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즉,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를 두고 ‘호전적 의지’ 운운하는 것은 ‘안보를 볼모로 한 정치선동’이 되고 만다. 상대가 칼과 창을 들고 있는데 벌거벗고 다가가서 선의를 구하는 것은 개인 간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5천만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안보에서 한 번의 실수가 곧바로 망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북화해와 협력은 늘 중요하지만 확고한 안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남북화해와 안보는 함께 굴러가야 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인 것이다. 정구사 사제들은 이런 정론조차 모르는 무식쟁이들일까?

이제는 정구사 사제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필자는 많은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 이 칼럼을 작성했다. 대부분의 천주교 사제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과 봉사의 삶을 서약한 하느님의 고귀한 종들이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하느님의 백성들을 은총의 길로 인도하려 최선을 다하며, 언제일지 모르는 하느님의 부름에 대비하여 검은 수의를 입고 살아간다. 그래서 신자들은 사제들과 수녀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이 글이 이 대부분의 사제들과 수녀들에게 누가 될까 심히 두렵다.

그럼에도 천주교인들은 정구사 사제들과 일부 수녀들의 반국가적이고 흉한 언행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들에 의해 천주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망실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증거도 재판도 없이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촛불 시위에 앞장서는 모습도 보았고, 사드 배치 반대, 송전탑 건설 반대, 국가보안법 해체 등을 요구하는 시국미사도 보아왔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속치마를 펄럭이면서 경찰들에 의해 들려 나가는 수녀도 있었다. 떼를 지어 추기경 사퇴를 요구하는 광경도 목도했다. 사실 진저리가 난다.

이제 이 땅의 모든 애국 교우들에게 두 손 모아 정구사 사제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청하고 싶다. “저들로 하여금 종교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과 사제 신분에 부적합한 언행을 금지하는 교회법을 준수하게 하시고, 대한민국을 해치고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언행을 중단하고 제대로 돌아오게 하소서! 천상의 진미성찬을 기다리며 성실히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게 하소서! 저들이 사막에 흩뿌려진 검불이 되게 않게 하시고 시냇가에 뿌리내린 나무가 되어 양떼를 먹이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May God bless this nation! May God guide our journey to grace!”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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