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신문, TV, 포털, SNS 등 각종 미디어는 전송 수단인 미디어라는 창(windows)을 통해서 제공되는 콘텐츠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실제 세계에 살지만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미디어 세상’이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제2의 현실이다. 의제 설정 기능으로 사회를 만들어가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고 미디어가 제공하는 문화콘텐츠가 현실에 대한 해석 지침 내지는 행동의 방향을 제공하여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뉴미디어 시대는 유튜브의 경우처럼 모두가 시청자이면서 자기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창작자이므로 누구나 미디어 세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미디어 세상에 변화를 주게되는 언론・미디어・문화 정책은 모두가 참여하는 미디어 세상을 규율하는 제도를 만들기에 다른 국가 정책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정책은 코로나 극복, 일자리 마련, 주택문제 등 경제와 복지 정책에 집중되어 있고 언론과 미디어 및 문화 분야에 대해서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동안 나온 여러 정책 과제들을 나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선관위에 제출된 정책 공약 자료, 개별적인 공약 발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 등에서 나온 정책들을 살펴보면, 언론 중재법 파동 이후 대안으로서 제시된 언론 자율 규제 기구 제안과 관련된 규율 제도의 정립 과제, 공적자금이 투입되지만 신뢰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공영방송의 제도 개선 과제, OTT를 규율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과제, 콘텐츠로 통합되는 미디어 융합 시대에 미디어와 문화 소관 부처의 통합, 문화예술 콘텐츠와 문화 예술인 지원등의 문화 복지 정책들이 있다.

여러 가지 정책 주제들은 변화하는 미디어와 문화 분야의 현실을 보여준다. 미디어 융합 시대는 유통되는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미디어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다매체 다채널의 미디어 상황과 정보통신망을 통한 콘텐츠 유통의 증대라는 상황은 단일한 콘텐츠가 다양한 전송 수단으로 전달되므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콘텐츠가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미디어와 문화 정책 논의는 매체별 논의를 떠나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종래의 매체별의 수직적 규제에 대해서, 미디어를 콘텐츠층과 전송층을 구분하여 동일한 계층에는 동일한 규제를 한다는 차원에서 수평적 규제를 하자는 주장도 그런 경우다.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문화정책은 유통되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통합되는 종합적인 문화정책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방향은 매체별로 영역이 구분되어있는 정책 과제를 콘텐츠를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게 된다. 신문 정책, 방송 정책이 아니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 정책이라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방향이 설정될 때에 구체적으로 미디어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관할하는 제도 변화가 논의될 수 있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언론, 미디어, 문화 분야가 같이 논의된다면 기존 매체별 정책 가치들은 다시 평가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매체가 탄생할 때에 그와 가장 유사한 종래의 매체를 규율하는 법체계를 적용하여 규율하게 되는데, 매체별로 다른 정책을 일률적으로 다른 매체에 적용할 때에 혼란이 발생한다. 매체별로 수립된 미디어 정책은 매체별 특성에 따른 고유한 정책 효과를 목표로 하는 정책 가치에 근거하므로 다른 매체에는 정합적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방송법의 원칙을 신문이나 출판물에 적용하는 것은 신문과 방송 간에 지향하는 정책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작년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와 관련하여 언론 관련법에 방송법상의 정책 가치인 공정성 규정을 신설하는 입법안이 제안한 경우가 있었다.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 가치의 제도적 구현을 위한 신문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기에 규제장치로서의 방송법상의 취지에서의 공정성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상 적절하지 않고, 신문등 출판물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콘텐츠에 대한 직접 규제라는 문제가 있다.

현재 유력한 동영상제공서비스인 OTT를 둘러싼 정책논의도 이러한 측면을 보여준다. OTT에 대한 규제 논의는 방송법에 포함시켜서 규제하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안과 영상진흥기본법안에 포함시켜서 문화콘텐츠로서 규율하자는 안이 있다, OTT를 방송법 체제에 넣게되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방송통신심의를 받게되는 등 규제 체체에 포섭되는 것이고, 문화 콘텐츠로 본다면 영상물 자율등급제라는 제한은 받지만 진흥 체제에 포섭되는 것이다. 어떤 법체계에 포함되느냐에 따라서 그 법체계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규율되므로 먼저 어떠한 정책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OTT를 콘텐츠로 볼 것인지 아니면 미디어로 규정할 것인지, 방향은 규제인지 아니면 진흥인지, 그리고 왜 규제이며 왜 진흥인지의 여부와 관련된 정책 목적을 정하는등의 정책에 대한 방향 설정이 선결문제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향하는 문화정책의 경우에는 지원의 공정하고 투명한 배분을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문화향유가 권리가 되고 복지가 된 상황에서 문화정책은 다른 정책이나 다른 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와의 조율이라는 과제가 있다. 문화기본법 제4조에 의해서 문화 향유는 평등권의 하나로서의 문화권이라는 권리의 성격을 획득하였고, 문화복지로서 확장된다. 권리로서의 청구는 문화다양성을 근거로 하고 참여라는 요구에 의해서 제기된다. 권리 및 복지로서의 문화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 재정의 사용이 다른 정책 가치와의 충돌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정책 정합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문화 다양성 보장을 위한 정책들이 기존 가치와의 충돌로 인해서 사회 갈등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미디어와 문화 정책 분야에서 다양성은 다원주의의 요청에 의한 여론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미디어 정책에서도 유래되고 문화 분야에 있어서 참여라는 가치와 함께 논의되는데, 다양성 가치가 확장되어 문화적 정체성의 권리화와 이를 위한 분권화현상으로 확산될 때에, 다양성이 각종 문화정체성의 정치화 수단이 되어 정치적 분열의 계기가 됨으로써 공화정의 단일성을 훼손하여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된다는 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창작자의 권리 보장과 문화 향유권의 충족 및 문화 복지를 넘어서 지방자치와 관련해서 문화 분권까지 거론되는 상황이고 보면 이러한 다양성의 확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요망된다.

현재의 여러 정책 과제들은 개개의 매체별 기준의 정책 과제들이 나열되는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변화한 미디어 상황에 따른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콘텐츠로 통합되는 미디어 변화 상황에서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문화 분야에 있어서 지향해야 할 가치들을 재정의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도 설계에 앞서서 정립된 정책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언론과 미디어 및 문화 분야에서 공정성, 다양성, 투명성 등 정책 가치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것은 변화된 미디어상황에서는 이러한 가치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세상을 규율하는 규범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가치와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콘텐츠로 통합되는 언론 미디어 지형은 문화 정책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가치로서의 다양성 가치와 그 구현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같이 극도로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 공화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통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다양성 가치에 대한 논의와 의견 수렴은 국민적 통합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이후 분열된 사회의 통합을 위한 사회 문화적 통합의 시도가 정치적 통합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는 다른 어떤 정책 과제 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前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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