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린 이종왕 전 삼성전자 고문의 49재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무단전재 금지-사용시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시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린 이종왕 전 삼성전자 고문의 49재에 참석, 유족을 위로했다.

지난해 연말 지병으로 별세한 이 전 고문은 삼성의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시대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사법시험 17회 출신인 이 전 고문은 검사시절 인사와 기획업무는 물론, 공안에 특수통까지 두루거치며 상하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평검사 시절부터 ‘미래의 가장 확실한 검찰총장감’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김대중 정부시절 정권실세 수사가 외압으로 벽에 부딪히자 검사직을 던졌다.

개인 변호사,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거쳐 2004년 삼성의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옮긴 이 전 고문은 이건희 회장 시절 그룹의 중요업무를 협의하는 이학수 부회장 등의 ‘8인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이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그가 삼성으로 옮긴지 얼마 안돼 김용철 변호사의 이건희 회장 비자금 폭로사건이 터졌는데, 이 일을 수습하면서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총수의 비자금을 정리하는 등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애썼다.

김용철 폭로사건과 삼성특검을 수습하고 2007년에 삼성을 떠났지만 2010년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삼성전자 법률고문으로 복귀했다. 이후 삼성을 떠난 뒤에도 최순실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사법처리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챙겼다.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에게 국정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사시 동기중 유독 그를 좋아했지만 본인이 고사했다.

6공 최대의 공안사건인 임수경양 밀입북사건 주임검사를 하면서 임씨가 방북 중 북한 젊은이들에게 퍼뜨린 자본주의 바람의 효과를 감안해 기소유예를 하자는 전향적인 의견을 낼 정도로 원칙은 물론 유연함도 겸비했다.

법조인으로서 삶의 마지막을 삼성그룹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이 전 고문은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진관사에서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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