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개시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의 막이 올랐다. 현재 미국과 나토국들이 우크라이나에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대러 경제제재의 고삐를 조이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력 격차가 워낙 큰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과 나토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세계 제2위 군사강국을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음이 놀랍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의 끝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어떤 결말로 가든 이 전쟁은 세계질서에 변화를 초래하면서 전쟁 당사국은 물론 미국, 나토, 중국 등을 시험대에 올리고 한국에게도 교훈들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스스로를 가장 힘든 시험대에 올려 놓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전쟁이 ‘푸틴 몰락의 서막’이 될 것으로 예상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푸틴의 위험한 도박’이라고 부른다.

푸틴몽을 자극한 나토의 확장

전쟁은 나토(NATO)의 동진(東進),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 독일의 전략적 모호성 등 제 요인들이 ‘푸틴몽(夢)’을 자극하면서 시작되었다. 1991년 소련연방 해체와 함께 유럽은 탈냉전 질서로 재편되었다. 공산진영의 군사동맹체였던 바르샤와동맹기구(WTO)가 와해되고 소련의 위성국가들과 소련으로부터 이탈한 신생 독립국들이 나토에 가입함에 따라 1949년 12개국으로 출범한 나토의 회원국은 30개국으로 늘었다. 러시아는 국토의 1/4을 상실한 경제파탄 상태의 소련을 계승했고, 이후 10년은 러시아판 ‘치욕의 시대’였다. 핵무기 해체를 위해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했고 군대는 탱크와 장갑차를 팔아먹을 정도로 부패했다. 소련 군사력의 상징이었던 멀쩡한 항모 민스크호와 노보로스키호가 고철로 한국 업체에 팔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푸틴은 2000년 제3대 대통령이 되면서 범슬라브주의와 러시아 내셔널리즘을 지향하면서 나토 확장 견제와 군사력 재건에 착수했다. 유럽에서의 미·러 신냉전의 부활은 당연한 결과였다. 푸틴은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방어 체제를 배치하는 것에 항의하여 대응적 공격 핵무기들을 개발했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여 흑해의 요충지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했다. 푸틴은 3,4,대 대통령 재임 후 3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수하인 메드베데프를 제5대 대통령으로 세우고 총리로서 수렴청정을 했고, 이후 6,7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다. 2020년 개헌을 통해 3연임 금지조항을 폐기함으로써 영구집권의 길도 열었다. 소비에트 제국의 영광 재현을 향한 절대 권력자 푸틴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며,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움직임은 푸틴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과 독일요인

1991년 12월 1일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미국의 재정지원과 함께 미·러·영으로부터의 주권과 국경선을 보장받고 자국내에 남겨진 2,000여 기의 소련 핵무를 러시아에 반납했지만, 부강한 국가가 될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4천만 명이 넘는 인구에 비옥한 흑토지대에 한국의 6배 크기의 국토를 가졌고, 국토의 3/4이 경작이 가능한 땅이었다. 농업대국이자 풍부한 지하자원 보유국인 우크라이나는 병력 78만명, 전차 6,500대, 항공기 2,000대 등을 가진 군사강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문서로 약속된 평화를 믿고 감군을 계속했으며 부패와 정치적 혼란을 반복했다. 2010년에 집권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친러 정책으로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할 모멘텀을 상실했다. 서부의 친서방 지역과 동부의 친러 지역 간 내전이 촉발되었고, 크리미아 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2014년에 집권한 포로셴코 대통령은 친서방 정책으로 복귀했으나 나라를 부강으로 이끄는 전략가는 아니었다. 현 젤렌스키 대통령은 코미디언 배우로 인기를 얻어 41세에 최연소 대통령이 되어 나토 가입을 천명했지만, 요직에 동료 방송인과 일가친척 등을 포진시켜 ‘전문성이 없는 정부’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오가는 혼선이 어어지는 중에 우크라이나군은 20만 명의 소군으로 전락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GDP는 약 1,600억 달러로 세계 55위이며 일인당 GDP는 4천 달러로 100위 내에도 들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에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가 10년만 통치했더라면 오늘날의 수모를 없었을 것이다. 현 사태가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없지 않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심하고 침공 시점을 정하는 데에는 독일 요인도 있었다. 독일은 유럽연합(EU)과 나토의 리더국으로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사실상 독일의 의중에 달려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지연된 것에는 우크라이나 스스로의 무능도 원인이었지만, 러시아를 의식하는 독일의 미적거림과 ‘전략적 모호성’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독일은 국방비를 GDP의 1.5% 이내로 제한해왔고 상비군을 2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면서 안보는 미국에 그리고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정책을 택했다. 독일은 러시아 가스를 직구입하기 위해 노르트 스트림 송유관을 건설하고 있었고, 독일의 안보 기여도가 적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과 반목했다. 독일로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대러시아 관계를 해치는 독약이었다. 독일의 이런 미지근한 태도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2018년 헌법에 나토 가입을 최우선 국가전략으로 명시했음에도 가입은 지연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 그리고 나토의 우크라이나 보호 의지가 강하지 않은 현 시점이 침공의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 세 개의 시나리오

전쟁이 종결과 관련해서는 세 개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고 괴뢰정부를 수립하는 시나리오다. 우크라이나는 반군이 지배하는 동부의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러시아에 할양하고 러시아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무장을 금지당하며 나토가입을 포기한 러시아의 위성국가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불평등 합의 시나리오다. 쌍방이 전쟁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 동부의 두 공화국을 포기하거나 독립을 인정하고 나토가입을 보류하는 선에서 타결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푸틴이 실패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체면치레만을 건지고 철군하는 경우다. 즉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이 이어지면서 1941년 ‘겨울전쟁’이나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때와 같이 러시아군이 패배하고 물러나는 시나리오다. 1939년 겨울전쟁에서 소련은 인구 300만 명의 소국 핀란드를 단숨에 굴복시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13만여 명의 소련군 전상자를 내고 극히 작은 영토를 할양받고 물러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년 동안 7만여 명의 전상자를 기록하고 물러났는데 이것이 소련연방의 붕괴에 직접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세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푸틴은 국제적으로 ‘전쟁 범죄자’로 몰리고 국내 정치기반을 상당 부분 상실할 것이다. 실권할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의 GDP(2021)는 한국(1조 8,600억 달러)보다 조금 작은 1조 6,500억 달러로 세계 11위며, 2위 중국의 1/10 그리고 1위 미국의 1/14에 지나지 않는다. 1인당 GDP는 한국의 1/3 수준이다. 물론, 루불화 경제권인 러시아의 경제력을 달러화로 환산 비교하는 것에 무리가 있기 때문에 구매력(PPP)으로 따지면 러시아의 순위는 좀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비중은 소비에트 시절에 비해 현저하게 축소되었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과 대등한 핵군사력을 유지하는 무리수를 고수하면서 신무기 경쟁을 해왔다. 여기에 더하여 서방의 경제제재와 수출봉쇄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면 푸틴의 정치적 위기도 더 심각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능성은 낮지만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쟁을 ‘푸틴의 위험한 도박’이라 부른다.

교훈점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에게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간 및 미·러 간 신냉전 대결을 격화시킬 것이며, 최악의 경우 ‘죽의 장막(bamboo curtain)과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함께 내려진 가운데 세계는 ‘민주세력 대 독재세력’으로 양분될 것이다. 핵강국 러시아의 핵사용 위협으로 세계 핵질서가 흔들리고 너도 나도 핵보유를 원하게 될 수 있으며 ‘유엔 무용론’도 대두될 수 있다. 미국이 ‘종이 호랑이’ 이미지를 남긴다면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자극하여 대만이 위태로워질 것이며 북한의 대남도발 의욕을 촉발할 수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러시아가 한국의 주위협인 북쪽 세력의 배후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필요하지만, 세계가 양분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세계를 조망하는 시야로 국가생존 전략을 수립하고 고난도 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문서로 약속된 평화에 안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주권 및 국경선 보장’을 약속한 부다페스트각서를 믿고 군사력을 축소했으며, 2014년 크리미아 반도를 빼앗긴 후에도 동부의 두 공화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국경선을 존중받기로 한 민스크협정(2014, 2015)에 안주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희망사항을 전제로 한 ‘국방개혁 2.0’을 밀어붙이면서 국방력을 감축하고 종전선언에 매달렸던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해 봐야 한다.

동맹의 중요성도 재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국방역량을 가진 나토의 회원국이었다면 푸틴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전개했을까? 이런 맥락에서, 요즘 한국의 대선 후보급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걱정스럽다. 어제는 “한국은 친일파와 미군 점령군이 세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라고 해놓고 오늘은 “한국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미국의 동맹국이므로 전쟁이 나면 미군이 달려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할까?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이를 빌미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허용하려고 하는가”라고 다른 후보를 닥달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북핵위협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한국군의 ‘3축 체제’를 ‘호전적 의지의 발로’로 매도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한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그리고 유사시 도와줄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평화를 지키는 위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라는 안보의 대원칙마저 조롱하는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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