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좌파들이 끊임없이 주장해온 재벌해체, 국유화가 문재인 정권에서 가시화됐다. 그것도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20년 5월6일,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라고 선언했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은 올해 54세다. 이에따라 30년쯤 지나면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2세 경영주,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져온 오너경영 시대가 끝나게 된다.

이 부회장과 그의 가족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로는 남겠지만, 4세승계 포기를 선언한 만큼, 앞으로는 삼성전자 지분의 8% 가량을 가진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은행, 정부가 삼성의 경영권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삼성의 공기업화, 국유화다.

4세승계 포기선언 당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제공 혐의로 파기환송 재판을 받고 있었다.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1년을 복역한 그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대법원이 항소심의 무죄 부분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바람에, 뇌물액수가 다시 늘어나 재수감될 위기에 처했다.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었던 2017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어머니 홍라희 여사가 “아들 걱정 때문에 단 하루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 할 정도였다.

당시 이 부회장 재판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서울구치소의 독방이라는게 국내 최대기업의 오너인 본인 집 화장실의 1/10도 안되고, 에어컨도 안나오는데 1년이나 버텨낸 이 부회장이 놀랍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끔찍한 감옥생활을 다시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이 부회장에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하도록 요구했고, 이는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요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절박한 삼성은 2020년 1월, 부랴부랴 진보적 법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권과도 코드가 통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영입,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준법감시위는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반성·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이 부회장의 4세승계 포기와 창사이래 삼성이 견지해온 무노조경영 포기선언이다.

하지만 2021년 1월18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정준영)은 그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해버렸다.

가업의 ‘미래 경영권’을 내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철통같이 지켜온 무노조 경영원칙까지 허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서 선택해야만 했던 심각한 ‘자기부정’으로 인한 족쇄다.

삼성준법감시위의 활동을 놓고 삼성 안팎에서는 “말이 좋아서 준법감시위원회지 준법 이 아닌 초법(超法), 정치의 눈높이와 국민의 반재벌정서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특히 준법감시위가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국민 반성·사과하라”는 권고문을 내자 이 부회장의 승계과정을 합법적으로 설계하고 법률적으로 지탱해온 삼성 안팎 인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2009년 5월29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의혹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에버랜드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이다. 이 판결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3세 총수자격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이슈와 관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사건이 터졌지만 삼성은 단 한번도 이를 불법적인 승계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인정한 바 없다.

최순실 사건에서도 삼성과 변호인단은 기본적으로 경영권 승계과 뇌물을 분리해 접근하고 있던 터였다. 강압적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났기에 더 이상 법리공방은 하지 않고 구속과 불구속, 형량 등 양형 문제만 다투는 전략을 구사했다.

준법감시위의 권고대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국민 반성·사과하라”는 권고를 받아 들이는 순간, 이 부회장의 정통성 문제가 야기되는 터였다.

결국, 당시 이 부회장의 선택은 감옥도 못 피하고 가업의 미래경영권에 자신의 정통성마저 상실하는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 재계의 최대 이슈는 가업승계다. 상위 20개 기업을 놓고 볼 때, SK나 롯데, 포스코 KT 같은 공기업 내지 준공기업을 빼면 대부분 3,4세로의 승계작업이 진행중이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은 3세 경영인인 정의선 회장으로의 승계작업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 1위,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이 30년 후 경영권포기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72년 이병철(왼쪽) 삼성 창업주의 장충동 자택에 모인 이건희, 이재용 3대의 모습. / 사진=삼성전자
1972년 이병철(왼쪽) 삼성 창업주의 장충동 자택에 모인 이건희, 이재용 3대의 모습. / 사진=삼성전자

 


재벌’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내고, 세계 주요 사전(辭典)에 이 단어를 등재시킬 정도로 한국 자본주의는 오너경영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독점과 정경유착, 부의 편중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수출을 통해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비결이다.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의 본질인 개인의 욕망과 사적경영, 이병철 회장의 예지력과 승부사적 기질, 이건희 회장의 편집증에 가까운 1등주의가 아니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설명하기 어렵다.

1983년 2월 8일,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중에서도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유명한 ‘도쿄 선언’이다. 그때 삼성은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도 겨우 만들던 때라 미국 인텔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잘못하면 삼성그룹 절반 이상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이 아니면 이 모험을 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 도쿄선언은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중 최고의 순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과연 공기업 삼성전자가 계속 세계 1등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감옥을 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이재용의 자기부정은 그 자신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기업의 자기부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으로 보인다.<펜앤 특별취재반>

윤석열 시대,재계의 새 질서(목차)

①SK와 최태원, 질주는 계속될까?(上,下)
②이재용의 ‘굴레벗기’와 삼성의 미래(上,中,下)
③‘정주영 DNA’ 찾는 정의선과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
④구광모의 LG자존심 회복은 이루어질 것인가
⑤김동관 체제 가동되는 한화의 앞날...태양광 다음은?
⑥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와 롯데,신동빈
⑦지조와 의리의 상징된 GS, LG를 넘어서
⑧왕회장의 5백원 지폐, 그리고 정기선의 꿈
⑨신세계의 ‘정용진리스크’ 윤석열시대에 득(得)되나?
⑩한류는 계속된다...CJ의 진격
⑪문재인 정권 최대 수혜자 한진과 조원태, 빛과 그늘
⑫윤석열의 ‘원전강국’과 두산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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