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공직자여, 비서의 충성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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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04.07 07:33:02
  • 최종수정 2022.04.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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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권이 바뀌고 수많은 새 공직자가 탄생할 것이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비서와 운전기사, 법인카드, 이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조심해야 할 사람은 충성심 깊은 비서이다. 공직자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다시 말해 비서에게 시키면 불법이 되는 사적 영역의 일을 기꺼이 대신 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이다. 그 아래 다른 비서들이 있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충성심 높은 상급 비서는 하급 비서에게 상사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더 빨리, 더 잘 하라고 닦달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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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발표되어 국내에서도 제법 화제가 되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국하고도 뉴욕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새내기로 취업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 분)’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런웨이〉의 전설과도 같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의 비서로 일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자리는 ‘달콤한 지옥’이었다. 일터에서 주인공 안드리아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선임 비서인 에밀리 찰튼(에밀리 블런트 분)의 구박에 가까운 닦달이다. 에밀리는 후임 비서를 딛고 자신만이 인정받고 출세하려고 했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인 주인공에게 일을 가르치기보다는 ‘갑질’을 했다. 혹시라도 후임의 능력이 자신보다 낫다는 것이 상사의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호되게 시집살이를 했던 사람이 며느리에게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심한 시집살이를 시키듯 선임 비서는 자신이 겪은 대로 후임을 괴롭힌다.

물론 영화 속 편집장 미란다의 태도에도 큰 문제가 있다. 뭔가 전문성이 있어 보이고 그렇게 해야 업무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늘 엄격한 얼굴로 부하 직원을 대하고, 직원들을 혹사시켜야 일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출근하며 코트를 비서에게 내던지는 것 등은 영화 속 과장과 애교라고, 혹은 사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접어둘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절대 납득도, 용납도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기 딸이 원한다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해리포터 원고를 구해다 바치라는 것이었다. 자기 돈으로 월급 주는 개인 비서가 아닌 회사 직원에게 사적인 일을, 그것도 무리한 일을 시킨 것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공과 사를 구별 못 하는 이 모습에서 미란다의 매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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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즉 관리들의 잘잘못을 살피고, 법을 집행하던 관청 사헌부의 상징 해태.

이 영화에서와 같은 문제는 현실에서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사람이 맡은 업무를 좀더 열심히,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곁에 두는 직원이 비서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비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공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공직자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비서들을 자기 개인 심부름꾼 취급하는 경우는 거의 일반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5년 만에 다시 새 대통령이 뽑혔다. 한 여론 조사 결과 유권자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은 이유로 신뢰성 부족/거짓말(19%), 도덕성 부족(11%), 대장동 사건(6%), 부정부패(6%), 정권 교체 필요(6%), 전과/범죄자(6%), 가족 관계/개인사(6%) 등이 꼽혔다. 그런데 ‘정권 교체 필요’와 ‘가족 관계/개인사’ 외에는 모두 ‘도덕성 부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묶을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세분한다면 나는 ‘초밥 배달’ 사건도 한 항목으로 넣을 만하다고 본다.

초밥 배달 사건을 폭로한 것은 별정직 7급 공무원인 A씨(이하 편의상 일반적인 후임 비서를 7급이라 칭한다)이다. 그런데 그가 이 건을 터뜨린 데는 상급자인 5급 공무원 B씨(이하 편의상 일반적인 선임 비서를 5급이라 칭한다)의 갑질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신혼이던 7급은 아내와 함께 있는 휴일에 5급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곁에 있는 상태에서 5급에게 뭔가 심한 채근을 당한 7급은 쌓여 있던 불만을 터트리고 이른바 ‘공익 제보자’가 된 것이다.

5급은 자신이 모시는 사람에게는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충실한 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상사의 공적인 일은 물론이고 집안일까지 나서서 해결해주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5급이 그 충성을 혼자만 바치고 상사를 위한 잡일을 자기 혼자 다 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5급은 그 일들을 스스로 하지 않았다. 자기 아래 사람인 또 다른 공무원 7급에게 음식 배달과 집안일을 시키고 그것이 제대로 처리되었는지 보고하게 하였다. 심지어는 ‘문진표 대리 작성과 의약품 대리 처방’이라는 불법적인 일까지 시켰다.

처음부터 7급에게 이런 심부름들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꾸역꾸역 이런 일들을 해냈을 것이다. 그에게 이런 일들이 ‘문제’로 떠오른 것은 상급 비서인 5급의 갑질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자신이 모셔온 ‘그분’은 물론 ‘사모님’에게 ‘입안의 혀’처럼 충성해왔을 5급은 자신의 충성심을 좀더 확실히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급 비서인 7급이 일을 잘 하는지 늘 감시하고 빨리, 제대로 하라고 성화를 부렸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7급이 일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잘 하면 그 공은 언제나 5급에게 돌아간다. 상사는 5급의 충성만을 기억하고 다음 공직에도 5급을 데리고 갈 것이다.

새로 정권이 바뀌고 수많은 새 공직자가 탄생할 것이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비서와 운전기사, 법인카드, 이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여기서 비서는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코드나 충성심이 검증된 사람을 비서로 데려가려 한다.

그런데 진짜 조심해야 할 사람은 충성심 깊은 비서이다. 공직자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다시 말해 비서에게 시키면 불법이 되는 사적 영역의 일을 기꺼이 대신 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이다. 그 아래 다른 비서들이 있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충성심 높은 상급 비서는 하급 비서에게 상사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더 빨리, 더 잘 하라고 닦달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충성심이 충만한 상급 비서는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충성도가 그만 못한 하급 비서는, 그리고 ‘그분’의 ‘따뜻한 눈길’이 닿지 않는 하급 비서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자체가 불법이고 자신이 당하는 닦달조차 불법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 폭로하는 7급이 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어쨌든 사건의 시작은 5급의 공적 영역을 벗어난 충성심인 셈이다.

공직 사회에는 5급의 과잉 충성심 때문에 상처 입은 수많은 7급이 있다. 충성심 깊은 8급에게 한심한 인간 취급받는 수많은 9급이 있다. 그 배경에는 비서에게 자기가 할 일을 시키는 것이 불법인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상사가 있다. 그리고 하급 비서의 불만을 ‘조직 사회니까 감수해야 하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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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쌓은 것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충성스러운 상급 비서는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스스로 다가와 불법을 제안한다.

“결혼기념일인데 사모님 선물 제가 골라드릴까요?”

“어머니 생신인데 거래처 꽃집에 꽃바구니 주문해 보낼까요?”

“사모님 대신 제가 병원에 다녀올까요?”

“공관 마당에 있는 감나무 열매 비서실 직원들 가서 함께 딸까요?”

“전 직원이 다 들어야 하는 온라인 교육 제가 대신 들어드릴까요?”

번거로움을 해결해주는 이런 고마운(?) 제안들이 사실 나중에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이가 좋을 때는 훈훈한 도움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이가 틀어지면 이게 다 자신의 직책을 더럽히는 독직(瀆職)의 원인이 된다. 비서가 여럿이면 더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 그래도 불법인 일에 후임에 대한 선임 비서의 갑질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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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은 절벽 위를 걷는 것처럼 고도의 주의와 집중력이 필요한 자리다.

새 정권에서 새로 높은 자리에 앉는, 그래서 비서를 거느리게 되는 많은 공직자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이제껏 믿을 만했던 비서를 다시 보고 경계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을 비서가 대신 하겠다고 제안하는가. 어떤 일을 부탁했는데 그 아래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가. 나에게 충성을 바친답시고 후임 직원에게 갑질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믿는 선임 비서 때문에 고통당하는 직원이 없는가. 조직을 핑계로 갑질 당하는 직원의 불만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살피고 또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비서에게 잡일도 못 시키느냐고 볼멘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의 ‘사적인 잡일’을 도우라고 공무원인 그 비서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겠는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를 폭로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 폭로가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장관에서 끌어내릴 수도, 교도소로 보낼 수도, 작은 일로 큰 망신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힘들게 쌓은 것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그렇게 무겁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자리라는 것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다. 공직은 절벽 위를 걷는 것처럼 고도의 주의와 집중력이 필요한 자리다. 비서의 잘못도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만큼 나와 내 주변을 수시로 점검하고 경계해야 그 자리에서 명예롭게 떠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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