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음속 활공비행체’도 첫 등장
“김정은, 핵 무력 사용 조건에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 포함...체제안보, 정권안보, 체제 위기, 내부 위기까지 포함될 수 있어”
“북한, ‘버티기’에 한계 오면 자기들이 선제적으로 상황을 돌파 위해 핵카드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까지 확대해석이 가능”

북한이 26일 개최한 ‘항일빨치산’ 90주년 열병식(이른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에서 남한 공격용 전술유도미사일부터 미국 본토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각종 핵투발 수단을 총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은 26일 기사와 관련 사진을 통해 전날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공개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운용 수단을 기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입장 순서별 종대를 설명하면서 “높은 기동력과 섬멸적인 타격력으로 적들이 손쓸 새 없이 침략전쟁 장비들을 초기에 풍비박산 낼 멸적의 기상을 안고 최신형 전술미사일종대들이...”라고 하는 등 ‘최신’ ‘첨단’ 등을 강조했다.

이번 열병식에선 탄도미사일 등 신형 무기체계도 일부 포착됐다.

특히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작년 1월 당대회 열병식 당시 처음 선보인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보다 탄두부가 커지고 길이가 1m 가량 늘어난 신형 SLBM이 처음 등장했다.

크기 등을 고려하면 북한이 신포조선소에서 건조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3천t급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한 용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작년 10월 북한이 잠수함에서 수중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미니 SLBM’도 열병식에 등장했다. 미니 SLBM은 탄두부가 더 뾰족해졌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연합뉴스에 “북극성-4형, 5형 그리고 신형 SLBM은 현재 건조 중인 잠수함에 장착하도록 지속적으로 설계 변경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그동안 열병식에서 보여준 SLBM은 실제 모델이 아니고 목업 모델일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도색을 새로 마치고 탄두부가 길어진 쐐기(Wedge) 형상의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화성-8형’과 기동식 재진입체(MARV) 형상인 탄도미사일도 열병식에 처음 등장했다. 두 발사체는 북한이 각각 작년 9월과 올해 1월에 처음 시험발사한 미사일이다.

이 외에 지난 16일에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 차량의 대열로 등장했다. 또 능동방어체계(APS)를 갖춘 전차 대열도 포착됐다. 전차 능동방어체계는 레이더를 이용해 날아오는 탄환을 감지한 뒤 미사일로 막는 방어 수단이다.

열병식의 마지막에는 ICBM인 화성-15형, 화성-17형이 등장했다.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총 4기를 처음 선보인 ICBM으로, 올해 들어서만 최소 3차례 성능시험 발사가 이뤄졌다. 마지막 세 번째 발사 때인 지난달 16일에는 공중 폭발했으나 북한은 지난달 24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이날 열병식 연설에서 “핵 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며 “어떤 세력이든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행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김정은은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 조성된 정세는 공화국 무력의 현대성과 군사기술적 강세를 담보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강구할 것을 재촉한다”며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핵 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해 임의의 전쟁 상황에서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이 열병식 연설에서 핵 무력 사용 조건에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을 포함시킨다고 발언한 것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행위 이외의 비군사적 위기 상황에서도 핵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어서 미국과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을 노골화했다는 분석이다.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김정은이 전쟁억지력 차원에서 핵을 사용한다는 북한의 기존 핵 운용 교리의 변화를 시사했다며, 국제사회 핵 질서의 기초를 흔드는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근본 이익 침탈은 결국 체제안보, 정권안보, 체제 위기 모든 것을 포함한다”며 “좀 더 넓혀서 해석하면 대북제재 심화로 인한 내부 체제 위기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버티기에 한계가 올 경우 자기들이 선제적으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핵카드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까지 확대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정은의 이번 발언은 앞서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군사적 충돌 상황을 전제로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던 대남 비난 담화보다 한층 더 위협의 강도가 세진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VOA에 “최고 지도자가 직접 한 발언인만큼 북한의 핵 운용 교리의 수정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이 핵 무력 강화 발전을 거듭 강조한 것은 대형 도발을 예고한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