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소비자들은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덜 내기 위해 지금까지는 ‘이자율’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대출 만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나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이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사진=한국경제 TV 캡처]
부산은행, 대구은행, 신은행이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사진=한국경제 TV 캡처]

7월부터는 총 대출액이 1억원만 넘어도 DSR을 40% 이하로 묶는 'DSR 3단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DSR 규제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소득으로 나눠 가계 대출을 관리하는 제도이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자동차 할부금,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이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정부의 DSR 규제에 발목 잡힌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절묘한 한 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출 원금’이다. 4억원을 빌려서 집을 구매할 때, 만약 그 대출의 만기가 10년이라면 1년에 4000만원의 원금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그 대출의 만기가 40년이라면 1년에 1000만원의 원금만 갚으면 된다. 매월 갚아야 하는 원금의 규모가 4분의 1로 줄어들므로, 원금 상환액이 월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그만큼 줄어든다.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1년에 갚는 원리금이 줄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대출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대출 금리가 3.5%일 때 연봉 5000만원 근로자가 만기가 30년짜리 대출을 받으면 3억 7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기 40년 대출이라면 4억2900만원으로 대출가능금액이 늘어난다. 은행들이 만기 40년짜리 대출을 내놓은 이유이다.

현재 하나·부산·대구은행이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고, 신한·NH농협은행에서는 다음달부터 가능하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40년 만기 주담대 출시를 검토 중이다.

신한은행도 5월부터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한국경제TV 캡처]
신한은행도 5월부터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할 예정이다. [사진=한국경제TV 캡처]

지금까지는 30년 혹은 35년짜리 대출이 가장 만기가 긴 주담대였다. 은행 입장에서는 만기가 30년이든 40년이든 별 차이가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주택 구매자는 10년 이내에 집을 팔고 대출을 상환하기 때문이다.

40년 만기 대출이 등장한 이유는, ‘급격한 금리상승과 DSR 규제’ 때문이다.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는 데다 가계 부채 관리 규제 강화 영향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감소하자, 은행들이 만기를 늘린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 대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절묘한 한 수’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새정부 LTV 규제는 완화해도 DSR 규제는 유지 방침...대출 기간 늘리면 DSR 규제 약화돼

새 정부가 현행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는 완화해주는 반면, 차주별 DSR 규제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TV 규제를 풀더라도 차주별 대출 한도가 정해져 있는 한 대출 규제 완화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만기를 연장해 규제 부담을 덜어보려는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현재 규제지역 내 6억원이 넘는 주택을 구매할 경우 총대출 금액이 2억원 이상인 차주는 연소득의 40% 내에서만 대출받을 수 있는 차주별 ‘DSR 1단계’가 시행 중이다. 차주가 연봉 5000만원인 직장인이라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2000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대출 한도가 묶여 있는 것이다. 올해 7월부터는 규제가 한층 더 강화돼 1억원 초과 시 연소득 40% 내에서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소득이 낮으면 대출받기가 더 어려워지고, 집 사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출 만기가 더 늘어나면 차주 입장에서는 은행에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 부담을 더는 효과가 생기고, 대출 여력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돈을 더 빌려줄 수 있고 더 길게 이자 장사를 할 수도 있다.

대출 만기가 더 늘어나면 차주 입장에서는 은행에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 부담을 더는 효과가 생기고, 대출 여력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출 만기가 40년으로 늘어날 경우 차주 입장에서는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 부담을 더는 효과가 있고, 대출 여력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7월부터 한층 강화된 DSR 규제 적용...은행권은 ‘10년 분할상환 신용대출’도 검토

금융권에 따르면, 7월부터 한층 강화된 DSR 규제 시행을 앞두고 각 은행별로 ‘10년 분할상환 신용대출’도 검토 중이다. 현재 신용대출은 1년 만기 일시상환 방식이 대부분이고, 분할상환 최장 만기도 5년인데, 이를 최대 10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DSR 규제 장벽을 ‘초장기 대출 상환’으로 피하겠다는 의도인데, 가계 부채 급증을 막으려는 DSR 규제 취지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인위적인 DSR 규제’ 자체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시장에 초래할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DSR 규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원금 상환액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가계 대출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은행권이 만기를 늘려서 대출 가능 금액을 올려주면 DSR 규제를 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어차피 대출 원금은 집을 팔아서 갚으면 되므로, 이자만 갚는 대출을 출시하는 게 차라리 효율적이라는 의견까지 제시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DSR 제도를 현실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실정이다. 시중은행의 부동산 전문가는 “주택 가격을 잡기 위해 강화한 LTV·DSR 규제, 임대차법 등이 쏟아지면서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고 주택 시장의 불안과 양극화, 계층 간 갈등은 더 심화됐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미래 상환 능력이 있는 청년과 맞벌이 부부 등 주택 마련 실수요에 대한 DSR 기준을 완화해 제도를 현실에 맞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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