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대대적인 전기요금 개혁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핵심은 원가주의에 입각해 전기를 판매해 왜곡된 전력판매 시장을 정상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판매 시장을 민간기업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금처럼 반드시 한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전력을 직접 거래하는 전력구매계약(PPA) 허용 범위가 늘어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원가주의'에 입각해 전기를 판매하도록 함으로써, 전력판매 시장을 정상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정부는 '원가주의'에 입각해 전기를 판매해, 왜곡된 전력판매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급등이 우려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정부의 전기요금 개혁의 최종 목표=원가주의 적용해서 전력판매 시장 개방

이 같은 청사진이 실현되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전기 소비자인 기업 및 가계가 큰 폭의 전기요금을 감내해야 한다. 지속적인 인상을 통해 전기요금이 현실화돼야 전력판매 시장에 뛰어들 민간기업이 생기기 때문이다.

발전 단가가 낮은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이는 보완책이 시행되겠지만, 원전 비중이 전기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을 정도로 의미있게 확대되려면 2030년은 돼야 한다. 그 전까지 한전이 원가에 전기를 판매한다면, 전기요금은 지속적으로 인상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석유, LNG 국제시세가 지금처럼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전기요금이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는 이 같은 전기시장 개혁안을 담은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기본 방향과 5대 중점 과제’를 지난 28일 발표했다. 그 중 3가지가 전력판매시장의 대변화를 겨냥하고 있다. △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합리적 조화 △ 공급확대 위주에서 수요정책 강화로 전환 △ 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 등이 그것이다.

역대 정부는 전기를 ‘공공재’ 취급, 싼값에 충분히 공급...윤석열 정부는 ‘일반재’처럼 시장논리로 수요 조절

‘공급확대 위주에서 수요 정책 강화로 전환’은 '전기'라는 상품 자체의 개념을 혁신하는 정책이다. 역대 정부는 전기공급 확대에 역점을 둬왔다. 모든 국민들이 충분한 전기를 싼값에 소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전기가 ‘공공재’에 가깝다는 인식에 기반한 정책이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다.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모두 충촉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비경합성은 A가 소비한다고 해도 B의 소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이다. 비배제성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소비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전기는 요금을 지불해야 사용할 수 있을 배제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A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면 B가 쓸 전기가 줄어드는 경합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전기를 공공재 취급함으로써 전기가격을 통제해왔다. 석유나 LNG의 국제시세가 폭등할 때도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전기생산독점판매자인 한전의 적자구조를 심화시켜온 것이다.

대신에 국민은 전기를 흥청망청 소비할 수 있었다. 전기 소비자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인수위가 ‘수요정책 강화’를 강조한 것은 이러한 수요를 시장논리에 충실하게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국제유가가 폭등하면 원가주의에 입각해 상응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그럴 경우 전기 수요는 자연스럽게 감소될 것이라는 구상인 것이다.

전기수요를 시장에서 조절하려면 ‘원가주의’ 실행이 전제조건...원가주의 적용하면 전기요금 폭등 불가피

이처럼 전기수요를 시장논리에 맡길 경우 ‘에너지 시장 기능 정상화’가 이뤄진다는 게 인수위의 구상이다. 이는 전기를 원가주의에 입각해 판매하겠다는 뜻이다. 현재는 원가 인하로 전기를 판매하는 왜곡된 시장이라는 게 인수위의 판단이다.

전기 수요를 시장에서 조절하려면 '원가주의' 실행이 전제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전기 수요를 시장에서 조절하려면 '원가주의' 실행이 전제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박주헌 경제2분과 전문위원(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5대 중점과제를 발표한 자리에서 “한전의 대규모 적자는 잘못된 전기가격 결정의 정책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면서 “가격을 독립적으로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전기요금은 올해 1월 올렸어야 하는데 대선 뒤로 미뤄졌고 kWh당 4.9원 인상이라는 예정된 스케줄이 있다”며 “하반기 국제 에너지 시장 가격을 살펴서 가격이 결정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관행이 아닌 원가주의에 따라 잘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수위 발표대로 원가주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한전이 소비자들에게 원가를 받고 전기를 팔 수 없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은 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인수위가 강조하는 ‘원가주의’에 직결되는 게 연료비 조정단가이다. 연료비가 오르면 이 단가를 인상하고, 연료비가 떨어지면 이 단가를 인하하는 것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3개월마다 조정된다. 단 조정폭은 3.0원/kWh을 인상 혹은 인하할 수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4월 기준연료비 4.9원과 기후환경요금 2원을 인상했으나 연료비 조정단가는 인상하지 못했다. 인수위 반대로 산업부가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안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오는 10월에는 기준연료비만 kWh당 4.9원을 인상하는 방안을 한전에 허가한 상태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원가주의’에 입각해 2차례의 연료비조정단가를 두 차례 인상할 수 있다. 그럴 경우 6.0원/kWh 인상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원가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상액이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가격인 전력시장 도매단가(SMP)는 지난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81.5원이었다. 그런데 판매단가는 110.5원이었다. 결국 1분기 동안 한전은 1 kWh의 전기를 팔 때마다 71.0원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SMP가 1분기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료비 조정단가를 하반기에 두 차례 인상해 총 인상액을 6.0원/kWh으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원가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원전 비중 높이면 원가 인하되지만, 2030년은 돼야 가능해... ‘원가주의’ 지켜낼 독립적 기관 신설 필요성 대두

따라서 인수위는 원가 자체를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5대 과제 중의 하나인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합리적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전체 전기생산에서 원전비중을 높여나감으로써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전기생산단가도 낮추는 전략을 펴겠다는 것이다.

김기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경제2분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기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경제2분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의 계속 운전, 이용률 조정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원전 비중은 그 특성상 갑자기 올라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꾸준히 줄여온 원전 비중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려면 2030년은 돼야 한다는 게 인수위의 판단이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원전 등을 활용해서 전기생산 원가를 낮추는 것은 임기 동안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전기요금 개혁을 위해서 손에 쥔 카드는 ‘원가주의’ 뿐이다. 따라서 정부나 여야 정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독립기구 설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 발표대로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인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원가주의’ 실행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인플레이션 억제정책과 같은 외부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영국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독일 연방네트워크기구(BNetzA),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처럼 에너지 분야에 독립적인 규제기관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