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칼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로 본 막장 뒷끝 입법 난동
[황근 칼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로 본 막장 뒷끝 입법 난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내어주면 돌려받을 수 없지만 빼앗기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재작년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크게 성공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유진 초이가 고종의 충직한 신하 이정문 대감에게 했던 말이다. 새 정권 출범을 코앞에 두고 퇴출하는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검수완박’ 막장 입법 난동을 보면서 이 대사가 떠올랐다. 지난 3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문재인 정권 핵심부는 그동안 은폐해왔던 자신들의 권력형 범죄 의혹들이 본격적으로 수사받게 될 것을 크게 고민했을 것이다. 정치와 무관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원전 경제성평가 조작, 울산시장 불법 선거개입, 대장동 사태, 옵티머스 등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낼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검찰 수사를 아예 못하게 하겠다는 ‘검수완박’ 입법 강행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더구나 180석 가까운 의석수로 거침없이 폭주해왔던 입법 독재 행태들로 보아 못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정권 끝물에 그것도 자신들의 범죄 은폐를 위한 검찰 무력화를 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법 개정 취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급조된 내용으로 ‘검수범벅’이라 조롱받고 있는 상태에서 숫적 우세로 밀어붙이게 되면 ‘다수의 폭력’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형태든 형식상으로 ‘합의’ 혹은 ‘동의’로 포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국회의장 중재안이라는 꼼수로 합의를 모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러일전쟁 승리 후 일제가 국제여론을 의식해 모양 좋게 조선을 먹을 방법에 노심초사했던 것과 판박이다. 결국 을사조약에서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강압에 의한 것이지만 합의형식의 절차를 거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가장된 합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상대방 중에 합의를 주도할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 그들에게는 지엽적이지만 타협점과 합의 후 기대할 수 있는 개인적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에서도 이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선거사범과 공직자 비리 수사권을 즉시 박탈해 문재인 대통령과 핵심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형해화시키고 향후 자신들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 칼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마치 한일병합조약에 조선 왕족을 ‘이왕’으로 존치하고 엄청난 세비 지원을 약속받은 것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고 왕과 그 일족들은 호위호식한 셈이다. 검찰수사권을 박탈해 여·야 모두 정치인들은 편해지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합의한 것이다.

비록 국민들의 엄청난 비판에 봉착해 합의안은 파기되었지만, 민주당에게 일방 처리할 수 있는 그럴듯한 빌미를 제공해준 셈이 되었다. 향후 의회 구도가 바뀌어 원상복귀하려해도 민주당은 합의 파기 같은 이유를 들어 저항할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빼앗기면 되찾아올 수 있지만 내어주면 돌려받을 수 없다’는 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막장 뒷끝 입법 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제2막 언론개혁 입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 신문사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를 위한 신문법 개정안, 언론 피해 보상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징벌적 배상제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강력한 언론탄압법으로 국민들의 저항으로 중단된 바 있고, 25인 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공영방송운영위원회’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공영방송 이사회와 경영진을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 또한 신문사 편집위원회는 방송사 편성위원회처럼 노조가 신문편집에 직접 개입하게 되어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혹자는 이 법들은 어차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에서 의결될테니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4개 법안 중에 서로가 적당히 타협해서 합의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어차피 위헌 가능성이 있는 언론중재법이나 신문법은 민주당이 포기하고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엿바꿔 먹기’가 벌어질 소지도 많다. 25인 ‘공영방송운영위원회’는 시민사회단체 추천 형식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추천단체 구성에서 여·야가 협상을 통해 적당히 나누어가질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현행 법대로 하면 친 민주당 위원이 최소 2/3를 차지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방송통신위원회, KBS, MBC 같은 공영방송 이사회 그리고 수많은 언론 유관단체들의 장이나 임원을 당장 교체하기 힘들다는 현실이다. 또한 국회 의석수를 감안하면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해결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전 정권처럼 이런저런 비리를 들추고 파행적 방법으로 사람 바꿔치기를 하면 ‘너도 마찬가지였구나’라는 국민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여당과 보수성향 인사들 중에는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을 받아들여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늘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적당히 합의해서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할 명분이 거의 없다. 그것은 대의를 버리고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빼앗기는게 아니라 내어주는 꼴’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야가 합의해 구성 운영 중인 미디어특별위원회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당의 언론개혁 4대 입법은 그들의 언론장악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법들이다. 이런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합의·협의 같은 모양을 갖춰준다면, 그것은 저들의 정권 말기 막장 뒷끝 입법 난동을 방관 아니 동조하는 꼴이 된다. 그 결과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언론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스터 선샤인’에서 의병으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를 읊어보자.

“그때 누군가는 싸우고 있었다고 할 수 있어야지요”

황 근(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