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대한민국의 교육은 누가 망가뜨리고 있을까?
[황인희 칼럼] 대한민국의 교육은 누가 망가뜨리고 있을까?
  •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2.05.09 13:19:44
  • 최종수정 2022.05.09 13:1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누가 망가뜨리고 있을까? 자녀에게 생선 잡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생선 살을 발라 먹여 주려고만 하고 선진국의 어떤 좋은 교육 정책이 들어와도 멋대로 휘저어버리는 학부모일까? 反대한민국 교육을 일삼는 일부 교사나 그들을 방관하는 다른 교사들일까? 잘못된 교육 정책을 남발하고도 잘못을 인정 않는 좌파 교육감들이나 비전문가 교육부 장관일까? 단일화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는 우파 교육감 후보들일까? 출구는 못 찾으면서 해결책 없는 정책들로 교육의 일관성만 해치는 교육 당국일까? 오랜 기간 교육계를 장악하며 전교조가 탄생할 빌미를 제공한 ‘교육 마피아’일까? 아니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무관심으로 이 모든 일을 방치하는 '나 자신'일까?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케이블 TV 일본 방송에서 특이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났다. ‘나의 첫 심부름’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말 그대로 유아들이 생애 ‘첫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다룬 내용인데 놀랍게도 심부름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 중에는 아직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든 두세 살짜리도 있었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그 아이가 해야 할 심부름은 아버지가 낚시로 잡은 생선 세 마리를 생선가게에 갖다 주고 그곳에서 회를 떠주면 그것을 다시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생선은 뚜껑이 없는 스티로폴 상자에 담겨 있는데, 가는 길 상자가 뒤집혀 생선이 바닥에 쏟아졌다. 처음에는 어른 팔뚝만한, 미끄덩거리는 생선들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는 왜 이런 생선을 잡아왔을까”라며 ‘한탄’까지 했지만 결국 도구를 이용하는 등 고심과 천신만고 끝에 생선들을 상자에 담았다. 상자를 들고 일어나려는데 이번에는 손잡이 끈이 끊어졌다. 아이는 스텝이 아닌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것도 아이가 찾을 수 있는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오는 길, 아이의 짐은 생선회뿐만이 아니었다. 동생에게 먹일 분유 두 통, 과일, 엄마에게 줄 캔 음료까지. 아이는 양팔이 늘어지도록 짐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도중에 과일 봉지가 뒤집혀 사과가 언덕 밑까지 굴러 내려가길 몇 번. ‘생애 첫 시련’을 겪으며 나름 삶의 요령을 터득하고 자립심과 책임감, 인내심과 사회성을 기르며 아이가 발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이 평소 즐겨 먹던 생선회가 대단한 노고 끝에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판에 박힌 어린이 방송이 아니었다.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생선을 먹여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진정한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훗날,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과 인내심으로 무장하고 자라난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 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1
생선을 먹여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대체 교육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교육의 범주를 생각해보면 이 질문의 답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갈 수 있다. 교육의 범주는 참으로 넓고 그 기간은 길기도 하다. 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 지대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등이 모두 교육기관이고 교육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기에 ‘평생 교육’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나의 어린 시절, 그 당시 많은 어머니는 1년에 한 번 정도 학교에 찾아갔을 때 으레 자녀의 담임 선생님께 건네는 말이 있었다.

“아이 교육은 선생님을 믿고 맡기니 잘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분리되어 있었고 가정 교육은 부모가, 학교 교육은 교사가 맡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는 학교의 교육 과정에, 교육 방식과 방향에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는 가정에서도 자녀의 학교 교육을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느라 학부모는 가정 교육할 겨를이 없고 교사는 학부모에 치어 뒷전으로 물러나야 한다. 가정 교육이나 학교 교육이나 파행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망가졌다고들 난리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썩기 시작한 걸까? 상황과 증상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할 텐데 상처 범위가 너무 넓어 구체적인 치료 방법도 찾기 어렵다. 얼마 전 많은 사람의 분노를 자아냈던 지하철의 젊은 여성.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침을 뱉고 그를 저지하는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머리를 휴대폰으로 피가 나도록 가격한 젊은이의 모습은 가정 교육, 사회 교육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더구나 “나 경찰에 빽 있어”라는 그의 외침은 그가 얼마나 ‘되먹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그 젊은이의 문제뿐일까?

대한민국의 교육은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교육을 망치는 요건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
학위 논문에 대한 잡음으로 ‘학계’의 명예와 신뢰 자체가 땅에 떨어져버린 듯하다.

가정에는 “내 자식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식의 그릇된 보호로 자녀를 망치는 학부모들이 있다. 일본 방송에서 다룬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심부름도 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자립심과 책임감, 인내심부터 길러주는 교육을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서너 살 때부터 국어보다 영어 단어 한 마디 더 가르치려고 난리다. 그 영어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알맹이 없는 겉치레 교육이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편한 시간을 가지려고 유모차에 탄 아기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는 생각 없는 부모도 수두룩하다.

초중등 교육기에 들어서 학교에 가면 반대한민국 교육, 왜곡된 역사 교육으로 본격적으로 아이들 일생과 나라를 망치려는 교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역사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박정희는 개XX”라고 가르친다는데 부모는 속수무책이다. 학교에 가서 항의라도 하면 내 아이는 그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다. 전학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놀라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를 자퇴시킬 각오가 없다면 알고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학교에 인질로 붙잡힌 셈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로 학생을 보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조례에서는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을 권리’가 보이지 않는다. 교사들의 상황도 좋지는 않다. 인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사는 ‘잠재적 뇌물 수수자(收受者)’로 낙인찍혔다. 그래서 이미 10여 년 전 한 교사 단체는 스승의 날을 아예 휴무 처리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고등 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스펙을 조작했다는 사건들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줄줄이 이어 나온다. 수시라는 제도가 생긴 후 수많은 수험생이 가을 내내 남의 들러리 서다가 ‘수시’로 낙방을 체험하고 절망과 탈진에 이른다. 물론 응시료도 만만치 않다. 응시료 한 차례 받으면 대학은 건물 한 채를 짓는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바람결에 들려오고 있다. 누가 응시하라고 강제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수시 권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석사 학위 논문 표절은 ‘관행’처럼 여겨지고 박사 논문 심사는 ‘방석집’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사학위 취득을 가장 먼저 축하해준 사람이 내 가족이 아니라 ‘방석집’ 여종업원이었고 그들과 축하 파티했음을 자랑처럼 떠벌릴 정도라면 그 상황을 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몇 년 전, 지도 교수에게 노예처럼 부려지고 학대당하다가 대변까지 먹었다는 대학원생 얘기도 화제가 되었다. 논문을 지도‧심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부조리가 있는지 짐작케 하는 일들이다. 특정인만 관직의 문턱에서 낙마한 것이 아니다. 교육계에서 이어지는 ‘학계’라는 그 숭고한 영역의 명예와 신뢰 자체가 땅에 떨어져버린 듯하다.

1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요즘, 참 교육자의 빈자리가 유난히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런 상황들 해결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 장관은 ‘어린 시절 교사가 되는 꿈’을 가진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교육계를 장악해온 전문가 집단은 ‘교육 마피아’라 불리며 배척받고 있다. 결국 전문가도 피하고 비전문가도 피하면서 교육을 바로잡을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파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이 가장 앞에 내세우는 목표는 ‘좌파 교육감을 물리치는 것’, ‘전교조를 잡는 것’이다. 선거가 보름 남짓 남은 지금까지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후보 단일화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책이 준비되고 그것을 유권자에게 어필하기도 어렵다. 아니 교육감 선거 자체가 정당이라는 최소한의 길잡이도 없는 ‘깜깜이 선거’이다. 거기서 내 자녀와 내 나라의 백년지계를 맡길 책임자를 뽑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누가 망가뜨리고 있을까? 자녀에게 생선 잡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생선살을 발라 먹여주려고만 하고 선진국의 어떤 좋은 교육 정책이 들어와도 멋대로 휘저어버리는 학부모일까? 반대한민국 교육을 일삼는 일부 교사나 그들을 방관하는 다른 교사들일까? 잘못된 교육 정책을 남발하고도 잘못을 인정 않는 좌파 교육감들이나 비전문가 교육부 장관일까? 단일화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 아니면 안된다고 나서는 우파 교육감 후보들일까? 출구는 못 찾으면서 해결책 없는 정책들로 교육의 일관성만 해치는 교육 당국일까? 오랜 기간 교육계를 장악하며 전교조가 탄생할 빌미를 제공한 ‘교육 마피아’일까? 아니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으로 이 모든 일을 방치하는 ‘나 자신’일까?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요즘, 참 교육자의 빈자리가 유난히 아쉽게만 느껴진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