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우리는 여전히 '미완성'의 근대화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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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2.05.12 07:45:11
  • 최종수정 2022.05.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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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중국과 18세기 영국의 결정적인 차이,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남과 북은 여전히 근대화의 과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 상태
근대 법치 위에서 기업, 시장,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체제 변화로 이어져
송나라 경제발전은 정치적 요소의 발전 결여했기에 산업혁명과 근대화로 가지 못해
근대 정신의 집약된 실체가 바로 국민과 국민국가...유럽은 19세기말 국민국가 건설
국민국가 개념에 가장 근접한 나라, 바로 미국...전근대 전통과 단절된 채 설계, 건설돼
미국 건국과 비슷한 과정 거친 나라 아시아에도 있어...바로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6.25의 결과물...분단은 자신의 헌정질서 선택한 두 집단의 경쟁
사회주의는 대륙세력의 근대화 모델로 근대화의 핵심 요소들 결여
대한민국은 분단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근대화의 과제 미완성
남과 북, 같은 민족 같은 국민 아냐...흡수통일이 근대 국민국가 건설과 한반도 근대화 완수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중국 송나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산업혁명에 근접하는 경제적, 사회적, 과학기술적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폐와 어음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주식회사의 초기 형태도 나타났다. 이앙법의 보급으로 쌀 생산량이 급증하고 이는 인구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당시 중국의 인구는 최초로 1억 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철을 단련하는 용광로와 수력 방직기, 화약, 물시계 등이 발명됐고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했다. 건축에 아치형 다리와 받침대가 쓰였고 나침반과 수력 터빈이 등장하는 등 조선업이나 항해술도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당시 송나라의 경제 규모는 전세계 경제의 40%선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있다.

이렇게 고도의 발전을 이룬 송나라가 왜 정작 산업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심지어 군사적 측면에서는 요나라나 금나라 등 인구가 몇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소위 오랑캐들에게 탈탈 털리고, 급기야 몽고족의 원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는가 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오랜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다.

송나라가 달성하지 못했던 산업혁명은 그보다 800여년 뒤 유럽의 구석에 자리잡은 섬나라였던 영국에 의해 본격화됐다. 그리고 영국이 불씨를 당긴 산업혁명은 이후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전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불씨가 됐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촉발된 변화는 이후 인류문명의 생활상 전반을 규정하는 하나의 표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 표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10세기의 중국과 18세기 영국의 결정적인 차이를 낳은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문제는 역사학자들만의 화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 그리고 저 북쪽 김씨조선 정권 모두에게 현재적인 중요성을 갖는 이슈이다. 산업혁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총체적 변화가 근대화이며 한반도는 여전히 근대화의 과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인간의 노동력이나 그를 보조하는 가축의 능력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기계적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계에 매달려 단일한 규격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세분화하여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는 분업은 생산력을 극대화했고, 이는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부분의 민중이 전근대의 왕족보다 우월한 생활 수준을 누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규모 공장 생산이 확대되면서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게 됐다. 노동자 계급은 대부분 장원에서 일하던 농민들이었다. 농민들은 원래 노동시간이란 것이 따로 구분되기 어렵다. 농민들은 근본적으로 땅에 매인 존재였고 따라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한계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이른바 신분제이다.

하지만 공장 노동에서는 신분제가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방해가 된다. 노예나 농노는 주인이나 영주에게 자유를 맡기는 반면 생존은 보장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노예주인은 그 삶을 책임진다. 먹이고, 숙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공장 노동에서는 일하지 않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칼같이 구분해 일하는 시간에만 급여를 지급한다. 공장 노동에서는 노동하는 그 시간에만 노동자와 자본가가 서로를 규율할 뿐이다.

이런 조건에서 자연스럽게 계약의 중요성이 커진다. 계약은 본질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대등한 위상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장치이다. 천부인권의 개념은 여기서 구체적인 형태를 찾게 된다. 나아가 계약의 원칙이 전체 사회의 범주로 확산될 때 법치의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

이런 법치 위에서 기업과 시장,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 사유재산의 권리는 이런 자유의 구체적인 발현이다. 이 모든 변화에는 인류 역사의 발전 동력인 자유의 확대가 작용하고 있다. 경쟁은 이런 자유의 공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실체가 없는 권위나 막연한 허상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철저한 실용과 실증의 정신이다. 실용과 실증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은 나아가 학문과 사회 전반의 합리화를 재촉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최종적으로 정치 체제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근대의 정치 체제는 나폴레옹 민법의 원리를 중심으로 단일한 헌정질서를 구현하게 되며 이 헌정질서가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영토와 국경선을 갖게 된다.

이 영토와 국경선은 과거에 비해 훨씬 견고하고 경직된 특성을 갖게 된다. 비단길 등 초원의 길이 사라진 것은 해양 교역로의 비중이 커진 영향 외에도 이렇게 근대적 헌정질서가 유지되는 영토와 국경선이 과거와 비교 불가능하게 경직된 탓도 크다. 이는 그만큼 근대 헌정질서의 배타성, 독자성, 견고성이 높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 헌정질서는 과거처럼 소수 지배계층이 자기들 뜻에 맞게 구성해서 대다수 민중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전체 민중이 모두 동일한 자격으로, 대등한 관계 위에서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수용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이다.

전근대의 지배계층이 민중의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라면, 근대 법치에서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은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법의 지배(Rule of Law)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대 정신의 집약된 실체가 바로 국민과 국민국가이다. 자발적으로 자유와 평등, 인권, 계약, 개인, 기업, 시장 등의 정신을 구현한 헌정질서를 수용하고 충성하는 민중을 국민(Nation)이라고 부른다. Nation은 국가나 전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도 모두 동일한 맥락이다. 이런 헌정질서를 하나의 정치 체제로 구현하여 영토와 주권, 국민을 갖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국민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이라고 부른다.

이 국민국가는 특정 지역(수도권)의 언어를 이른바 표준어로 지정해 언어의 통일도 이룩한다. 지금 대다수 나라들의 표준어는 이런 국민국가의 헌정질서가 목적의식적으로 창조해낸 인공물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경우 북경 일대에서 통용되던 만다린이 표준어로 지정돼 있다.

이런 요소들의 총합이 바로 근대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어느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상호간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작동하기 때문에 이중 일부 요소를 제외할 경우 나머지 기능들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한다.

가령 법치에 기반한 인권 보호 없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나 과학 기술의 발전도 불가능하고, 삼권분립 없이는 자유의 외적 표현인 공화정이 불가능하다. 송나라의 경제 발전은 이런 정치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나 근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근대적 거버넌스 체제로 구현되고 이 영역 안에 있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충성심과 정체성을 결합해내는 정치체제가 국민국가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19세기를 전후해 이런 국민국가의 건설에 이르렀다. 국민국가는 민중들의 잠재된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체제였고 유럽 국가들은 이렇게 조직된 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식민화에 나섰다.

근대화는 각각의 지역에서 저마다 고유한 발전 요인에 의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 어느 한 지역에서라도 근대화의 선도적 움직임이 발생하고 이것이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지면 이 모델은 나머지 지역으로도 파급된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인류 문명의 발전 자체가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전개돼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근대화도 마찬가지다. 설혹 내부에 근대화로 가는 씨앗들이 잠재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적절한 계기와 시기를 만나지 못하는 이상 세상은 그들의 자생적인 근대화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생적 근대화론자들이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를 달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망상일 뿐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앞서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을 기다려준다 해도 이들 나라들이 제대로 근대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생적 근대화란 사실상 근대화를 거부하기 위한 반근대론자들의 편리한 명분으로 쓰일 뿐이다.

다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근대화는 유럽 국가들에 의해 강제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기존 공동체의 조건과 상황을 무시한 채 유럽 국가들의 필요에 종속되는 기형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근대화 자체에 대한 강한 정서적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특히 유럽 국가들에 의한 근대화 이전부터 근대 국민국가와 유사한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에 더욱 부작용이 컸다. 즉, 국민국가의 필수 요소인 소속감과 정체성이 기존 국가 기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정체성이 국민(Nation)이 아닌 신민(臣民)의 그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외부의 영향력에 대한 배타성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기능을 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이 이런 경우이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근대화는 자신들의 주권을 위협하는 유럽 국가 등 식민 본국에 대한 저항과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나타났다. ‘국민’으로 번역되어야 할 Nation이 ‘민족’이라는 혈통적, 문화적 색채를 강하게 띤 용어로 변질된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사실 국민국가의 개념에 가장 근접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의외로 느껴질 수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국민(Nation)의 개념이 전통적인 혈통적, 문화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근대적 헌정질서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과 소속감으로 재결합한 민중들이라고 했을 때 이런 기준에 가장 적합하게 건설된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전근대의 전통과 완전히 단절된 제로그라운드의 신대륙에서 청교도 정신과 미국 헌법의 자유주의 정신에 근거하여 인위적으로 설계, 건설한 나라가 미국인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America Nationalism을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이 이를 ‘아메리카 민족주의’로 번역한 것이야말로 형용모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는 미국 국민주의라고 번역해야 한다.

뜻밖에도 이런 미국의 건국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리모델링된 나라가 아시아에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6.25의 결과물이다. 비록 원하지 않은 전쟁이었지만, 이 전쟁을 통해서 해방 이전부터 한반도 내부에서 내연해오던 좌우 대립이 전면화됐다. 그리고 그 결과 한반도 주민들은 스스로의 이념적 선택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됐다. 한반도 거주민이 스스로 자신이 충성할 헌정질서와 거기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설계할 땅을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단순한 군사분계선이었던 3.8선 대신 휴전선이 자리잡았고, 그 이남에 대한민국이 건설됐다. 휴전선 이북으로 간 사람들도 이념적 정체성에 따라 자신들이 충성할 헌정질서를 선택했다. 분단은 이렇게 이념적 정체성에 따라 자신의 헌정질서를 선택한 두 집단 가운데 누가 옳았는지를 입증하는 경쟁이다.

사회주의는 해양세력이 주도한 근대화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대륙세력의 근대화 모델이다. 소련과 중공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둘 가운데 어떤 방식의 근대화가 옳았는지를 입증하는 세계사적 실험이 진행됐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이 실험의 최종 결과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검증에서 패배한 좌파가 민족이라는 왜곡된 개념으로 최후의 저항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식 근대화는 자유와 인권, 기업과 시장, 계약과 개인,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한 법치와 정치 구조 등 근대화의 핵심 요소들을 결여하고 있다. 사실상 근대화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근대화가 역사의 종언은 아니다. 세계의 지성들이 탈근대화의 대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의 성과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미래지향적인 탈근대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근대화의 과제가 미완성인 상태이다.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근대화의 절대 과제가 분단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안정도, 외교 안보의 정상화도 기대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끊임없이 내전의 양상을 띠고, 모든 이슈가 정치적인 문제로 수렴되는 정치 과잉 현상도 이런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과제가 미완성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체제로의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대한민국이 해내지 못하면 열쇠가 북한 김씨조선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같은 민족, 같은 국민(Nation)이 아니다. 지금의 분단은 남과 북이 하나의 국민으로 거듭나는 진통의 과정이다. 대한민국 체제로의 흡수 통일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근대 국민국가의 건설과 한반도의 근대화라는 우리 근현대사 최고의 숙제가 완수될 것이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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