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는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하는 가운데 국가방역사업이 '최대 비상방역 체계'로 전환됐다고 15일 보도했다. 전면 봉쇄·격리 조치가 내려지면서 도시 곳곳이 텅 비어있고 도로와 인도에는 차량과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중앙TV 화면] 2022.5.15
북한 조선중앙TV는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하는 가운데 국가방역사업이 '최대 비상방역 체계'로 전환됐다고 15일 보도했다. 전면 봉쇄·격리 조치가 내려지면서 도시 곳곳이 텅 비어있고 도로와 인도에는 차량과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중앙TV 화면] 2022.5.15

미국의 의료 전문가들은 북한 내 코로나19 발병에 대해 심각성을 경고하면서도, 북한당국의 코로나19 감염 인정은 복합적인 셈법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했다.

과거 북중 국경지대에서 북한의 보건 시스템을 장기간 연구했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의 길버트 번햄 교수는 13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북한의 코로나 확산 발표는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단지 시간 문제였다”고 했다. 번햄 교수는 “북한주민들은 백신접종을 못해 면역력이 없고 의료시스템은 매우 열악하며 다수의 인구가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번햄 교수는 “북한이 지금 당장 백신 접종에 들어간다고 해도 대규모 전염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라며 “북한 지도부의 지속적인 미사일 도발로 많은 나라들이 대북지원에 도움을 줄 것 같지 않고 북한도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의 지원을 계속 꺼리고 있어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보건 상황을 20년 넘게 연구한 같은 대학의 코틀랜드 로빈슨 교수는 VOA에 “북한은 수백만 달러를 미사일 구축에 사용하고 있는데 왜 백신에는 약간의 돈도 쓸 수 없느냐”며 “이는 정당한 질문”이라고 했다. 로빈슨 교수는 “북한은 전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그들이 결정한 것이기에 많은 냉소가 흐르고 있다”고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정권의 무책임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인도적 입장에서 북한을 도왔지만 북한은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투명성과 모니터링 등 국제적인 기준을 무시하고 있어 북한보다 다른 나라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로빈슨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왜 지금 이런 위기 신호를 보내는지 그들의 말대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면 스스로 하게 두면 되지 왜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지 의문”이라며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선을 동정심으로 돌리려는 의도인지,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혼미케 하는 이런 북한의 현실이 북한주민들에게는 비극”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의사로 전염병을 담당했던 최정훈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0일 VOA에 “김정은이 전염병 격리를 강조하면서도 대규모 건설은 계속 진행하라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무턱대로 지원을 제의하기보다는 상황을 먼저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한에서 전염병 의사로 일하다 한국에서 다시 의사 면허증을 취득해 병원에 근무 중인 주모 씨도 “투명성과 감시 체계를 보장하지 않으면 먼저 관망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섣부른 지원은 북한주민에게 제대로 갈 수 없다”며 “북한은 발병이 나면 지역 전체를 봉쇄하고 주민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으며 보고 체계도 낙후돼 있어 거짓말 보고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주민들은 먹고 살 활로를 열어주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북 인도주의 사업에 정통한 미국의 한 단체 관계자는 VOA에 “수십만 명이 발열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볼 때 이번 사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인 국경봉쇄로 식량과 비료, 의약품, 생필품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도시 인력이 대거 농촌에 동원되는 모내기철이 다가오고 있어 코로나19 타격이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고 했다.

북한 청진의대 동의학부(한의학) 출신으로 한국에서 다시 한의대를 졸업한 뒤 한의사로 활동 중인 김지은 씨도 “김정은이 마스크를 쓴 것을 보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인다”며 “생명 존중 차원에서 백신과 냉동 보관 서비스, 주사기를 같이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당국의 코로나19 감염 인정은 복합적인 셈법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북한문제를 다뤘던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 프로그램 국장은 13일 VOA에 “북한당국이 최근 코로나 발병을 인정한 것은 북한에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며 “북한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로 심각한 인도적 위기와 보건 위기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테리 국장은 북한의 보건 체계가 세계 최악이며, 북한주민들의 40%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태가 잠재적으로 중대 인도주의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VOA에 “북한의 낮은 코로나 검사 비율 등을 감안하면 북한당국의 발표보다 감염률이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반주민들도 인지할 만큼 폭넓게 확산돼 북한당국도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다만 “북한당국이 이런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외부 지원 요청을 위한 사전 포석인지는 알 수 없다”며 “코로나가 널리 퍼졌다면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논리적이지만 북한은 2년 전에도 코로나 관련 ‘중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도 백신 지원은 물론 인도주의적 지원과 식량 지원 모두 거부했다”고 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AN)의 켄 고스 적성국 분석담당 국장은 북한정권이 국경봉쇄 등 지속되는 내부통제에 대해 주민들에게 명분을 제공해야하는 상황에 봉착했고 코로나 감염이 가장 쉬운 ‘핑계거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VOA는 전했다.

한편 북한은 코로나 비상시국과 무관하게 무력시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스 국장은 “코로나와 내부 통제, 경제 악화 등의 상황에서 정권의 정당성이 필요하며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핵무기 프로그램’”이라며 “앞으로 몇 달 간 핵실험 등 무력 도발 수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미 테리 국장도 북한이 코로나 감염을 발표한 날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며 코로나 발병이 ‘무력시위 휴지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테리 국장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복구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며 “북한은 전술핵무기를 포함해 새로운 무기 실험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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