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서 비롯된 잘못된 전제들
항상 냉정한 정보판단 기초로 정책환경 변화 추구해야
이것이 바로 현명한 국가지도자가 필요한 이유

염돈재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가 먼저 화해·협력을 추진하면서 군비축소와 경제지원을 하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서 북한의 각종 도발에도 인내로 일관하면서 굴종적 양보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굴복을 통한 평화’는 일시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했고 북한으로부터 핵 선제사용 위협과 ‘삶은 소대가리’, ‘특등머저리’, ‘태생적 바보’라는 조롱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서 비롯된 잘못된 전제나 착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첫째,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흔히 사람들은 ①북한은 미국의 핵우산 때문에 핵 사용이 불가능하고, ②‘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유훈이고, ③경제회생을 위해서도 북한이 결국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알만한 저명 학자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도 이런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북한 핵은 ①김일성 이후 80여 년의 소망이고, ②3대 세습정권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며, ③한·미의 군사공격을 억지하고 한국의 경제지원을 우려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고 ④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 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어서 김일성 세습정권이 존속하는 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이러한 자기중심적 국가이익 추구는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의 한국의 가치는 한미동맹의 강도(强度)에 비례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호주의 대중국 정책이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셋째,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간 중국은 대북제재가 북핵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유엔의 대북제재에 수동적·소극적 자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①북한 핵이 장래 중국에 안보위협이 될 수 있고, ②핵 사고 발생 시 환경적·보건적 위협이 되며, ③미·중관계 및 국제적 핵확산 방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므로 궁극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 앞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북한을 유익한 자산(資産)으로 생각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금년 1월 베이징 소재 카네기·칭화 글로벌정치센터 북한문제 전문가 자오 통(Tong Zhao)은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을 자산으로 보기 시작하고 있으며, 중국은 7차 핵실험 등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해도 유엔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년 3월 이후 의회에서도 유엔제재를 위반한 중국 은행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대두되고 있다. 이젠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의원들이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북한이 한반도 적화 야욕을 포기했다는 착각이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북한이 한국과의 국력격차 때문에 한반도 적화노선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됐고, 특히 작년 1월 노동당 규약개정 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한다”는 조항을 삭제하자 일부 좌파인사들이 적화혁명 포기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적화혁명’ 목표는 김일성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의 근거이므로 포기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노동당 규약 서문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청산한다”는 구절이 삽입돼 있어 ‘선거를 통한 적화 혁명’을 적화통일의 한 방식으로 추가했을 뿐 적화통일 포기는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섯째, 북한 붕괴 가능성이 없다는 착각이다. 북한은 ①공포·억압 통치가 최악의 상태이고, ② 외부정보 유포를 엄중히 단속하고 있고, ③북한주민은 민주 경험이 없고, ④교통·통신 수단 불비로 민중봉기나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이 적은 것 등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①인터넷이 확산되고, ②핸드폰 보급대수가 600만 대를 넘어서고 있고, ③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다수 유포되고 있어 북한의 변화 여건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변화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대북전단 살포나 대북방송 등을 꾸준히 지속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대북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착각이다. ①북한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고, ②북한주민들이 ‘고난’에 익숙해져 있고, ③중국이 국경 밀무역을 방치하고 있어 대북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주장들이 많다. 하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계기로 그해 9월 안보리 제재 결의안 2270호가 발효된 후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석탄, 철광석, 농수산물의 수출, 정제유 수입, 인력송출이 금지되어 국내총생산(GDP)이 3.5% 이하로 급락하고 무역도 40% 이상 감소되어 북한경제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북한이 2018년 미국과의 싱가포르 회담과 유엔 등에서 대북제재 해제 문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도 그간의 대북제재가 효과가 컸다는 반증이라 볼 수 있다.

일곱째, 주한미군은 절대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한국은 ①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고, ②한국경제가 세계 10위권이고, ③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이고, ④가장 적합한 실전적 군사 훈련장이고, ⑤경제 등 분야에서 협력관계가 많아 한국이 나가라고 해도 미국이 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2021년 8월 미군은 20년 만에 9조원의 군사장비를 남겨둔 채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 회고록에 의하면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를 지시했다. 따라서 우리는 동맹의 가치가 훼손될 경우 주한미군 철수도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일곱 가지 사항은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상충이 많은 쟁점사항들이며, 정책환경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항상 냉정한 정보판단을 기초로 정책환경 변화를 추구해 나갈 때 우리의 안보·통일 정책은 성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국가지도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염돈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국정원 1차장,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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