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서울시 교육감 후보 단일화 문제로 보수 진영이 소란스럽다. 특정 후보 지지로 갈려있는 상황에서 선거 패배에 대한 우려는 후보들에게 대의를 위해서 양보하여 단일화할 것을 요구한다. 교육감 선거가 정치 진영간의 선거로 전개되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정치화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다.

적합한 사람이 선출되어야 하므로 후보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이지만, 의욕이 있는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것이 선거다. 선거는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 당시에 입수 가능한 정보에 의해서 판단하여 선택할 수 밖에는 없다. 정치에 대해서 각종 견제 장치를 갖추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보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권면하기 전에 정치 세력은 자신의 진영에 속하는 후보의 욕구를 조정하고 방향을 제시해서 진영 전체의 합의의 장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가 정치진영으로서의 단일성과 통합성을 표방한다면 그러한 진영의 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권위가 없으면 질서는 형성될 수 없다.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력이 당대의 편향된 정치이념을 그대로 간직한채 정치권에 진입하여 정치 주류세력이 된 것이 오늘의 정치를 망치게 된 원인이라고 한탄을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이 편향된 이념으로 학습되고 형성된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정치에 나섰을 때 누군가라도 이를 제지하고 문제를 제기하였는지 의문이다. 주대환 제3의길 발행인은 운동권 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우려하는 문제를 여러차례 제기하였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귀 기울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의 정치 문제는 그 세대가 성장하여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등장하게된 세대 교체로 인한 것이기도 한데, 당대의 이념적 편향 문제를 그때에 바로 지적해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사회변화에 따른 시대에 맞는 이념 지향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내 자식이니까, 동향이고, 친척이며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까라면서 방치한 지난 세월이 강남 좌파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문제의 정치 세력을 탄생시켰다.

탄핵 사태 이후에 2019년 가을 조국 사태로 진보진영의 이념적 지형이 무너질 때에 광화문에서 열린 10월 1일과 9일의 집회를 돌아보게 된다. 탄핵 때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까지도 참석했을 정도로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가 컸지만 집회를 주도한 보수 진영은 국민의 정치적 요청을 수용하지 못했고, 정치적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채 그날의 집회로 마무리 하였다. 2019년 10월의 광화문 광장은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정치적 열기를 정치의 복원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그날 진보의 몰락과 동시에 보수의 몰락을 보았다.

다음해의 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그런 상황의 반영이다. 과반수 이상을 얻은 쪽이나 그렇지 못한 쪽이나 국민의 요청을 온전하게 수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를 돌아보면 정치 세력이 국민적 요구를 온전히 수용하는 변화를 만들지 못하면서 정치가 진행되어온 것 같다.

이념의 몰락 이후에 정치 세력은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강경파가 등장하는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다. 각종 가짜뉴스로 도배되는 유튜브 콘텐츠에 경도되어 잘못된 방향을 고집하는 보수 세력이나, 온갖 실패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수용않고 자기 길을 그대로 가고자 하는 진보 세력에서 이러한 상황을 보게 된다. 권위의 복원이 실패한 곳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하여 혼란으로 이끌고, 그 혼란은 오히려 그들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든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탄핵으로 보수가 몰락하고, 조국 사태로 진보가 몰락한 이후의 혼란의 상황은 새로운 요구를 등장시켰지만, 시간과 자원의 부족은 어느 한편의 승리라고 할 수 없는 방향을 선택하게 하였다. 보수는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지만 단지 과거로의 복원은 아닌 듯하며, 윤석열 정부는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당은 국회위원 숫자를 내세워서 다수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권위를 상실한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력으로서 보수를 재정립하고, 변화된 진보를 만들려면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70년대 산업화 이야기와 80년대 민주화 이야기를 자랑하면서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현실에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온갖 옛날 이야기로 무장한 강경파에게 우리와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과거 자랑질의 반복에 싫증이 나서 짜증내는 사람을 중도라고 부른다. 많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진영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이념을 점검해야 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60-70년대의 역사를 현재를 위해서 적용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으로서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를 넘지 못하고 산업화도 넘지 못하면서 아직도 건국과 전쟁 시기에서 싸우며, 아직도 해방 이전의 시기에서 다투는 그런 정치는 그들만의 정치이고 우리의 정치가 아니다.

정치 세력의 정치적 자리 매김은 그 정치세력이 내세우는 정치 자산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공화국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자산은 공화국의 권위다. 그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세력이 새 시대의 정치 세력이 될 것이며, 공화국의 질서를 만들 것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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