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바이든 대통령 방한은 경사였다. 양국이 군사동맹을 넘어 장래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 관계 등 다양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로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모든 방어역량을 동원한 확장억지 공약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끝내고 핵 선제사용을 위협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대통령실은 정상 차원에서 핵을 확장억제 수단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처음이라 자평(自評)하지만, 2017년 6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이미 언급된 내용이다. 확장억제 구체화를 위한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도 2016년 10월 출범했던 기구여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하고 있는데 한미 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극히 제한돼 있다. 한·미가 북한의 도발을 엄중히 규탄하고 미국 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전개돼도 북한은 끄떡도 않는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등 ‘금지선’을 위반해도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제재도 할 수 없다. 기존 제재도 중국이 국경 밀무역을 방치하고 있어 효과가 적다. 김정은에게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지난 13일 양미 양국 외교장관이 워싱턴DC 회담 후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연합되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북한이 그게 겁나 핵실험을 취소할리도 없다. 대북정책에서 ‘조정되고 실용적 접근’을 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재판(再版)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이젠 우리가 나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간에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에피소드 Ⅰ: 미국의 쿠바 봉쇄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는 것이 U2정찰기에 포착됐다. 미국은 묵인, 외교적 압력, 카스트로 비밀접근, 전면공격, 공습, 봉쇄 등 6가지 대안 중에서 봉쇄(격리)를 택했다. ①전쟁위험이 적지만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고, ②공(선택의 고뇌)을 후르시초프에게 넘길 수 있고, ③군사충돌 시 미측에 유리하고, ④핵 대결에 이르기 전에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미측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봉쇄과정에서 봉쇄선을 어디에 설정할지가 논의대상이 됐다. 맥나라라 국방장관 등 군 관계자들은 쿠바 발진 미그21기와 IL-28 폭격기의 작전반경 밖인 쿠바로부터 반경 800마일 지점에 봉쇄선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올스비 고어 주미 영국대사의 조언에 따라 미그21기의 작전반경 밖이지만 IL-28의 작전반경 내인 500마일 지점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흐루시초프로 하여금 핵전쟁을 할 것이냐, 아니냐는 피 말리는 결정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결국 흐루시초프는 미국 근해에서의 군사적 대결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해 미국의 쿠바 불가침 약속과 소련의 쿠바 미사일 철수 약속을 교환하는 제안을 해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결됐다. 미국이 터키 주둔 핵미사일 철거를 약속한 것도 도움이 됐다. 공을 넘겨받은 흐루히초프의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도 대결 해소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 비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고뇌에 찬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어야 할 김정일, 김정은을 엔돌핀이 나오도록 너무 편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에피소드 Ⅱ: 나토의 이중결정

소련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중거리 미사일 SS-20 미사일과 백파이어 폭격기 등 570여 기를 동유럽에 배치했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극심한 반핵운동 때문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결국 서독 슈미트 총리 주도로 1979년 1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들이 두 가지 결정(NATO Double-Track Decision)을 내렸다. 소련과 중거리 핵미사일 전면 금지를 목표로 협상을 제안하되, 1983년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서방측도 퍼싱Ⅱ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1981년 11월 시작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채 3년이 경과하자 서독 하원이 국내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퍼싱Ⅱ미사일 배치를 결정했고, 1983년 미국이 총 570여 기의 미사일을 배치했다. 1985년 소련에서 개혁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집권하자 미·소 간에 협상이 재개되어 1987년 12월 워싱턴DC에서 중거리 핵미사일 폐기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이 조인되어 유럽 배치 중거리 미사일이 전면 폐기됐다.

이 과정에서 서방측이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강력히 대응의지를 표시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도 북한으로 하여금 무모한 도발이 절대 이득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토록 해 놓을 필요가 있다.

에피소드 Ⅲ: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미국 방문

1987년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소련 서기장으로서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중거리미사일폐기조약(INF) 체결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고르바초프를 백화점으로 안내한 미국 관리들은 경악하게 됐다. 개혁파로 알려진 고르바초프가 “이 많은 물자를 어떻게 조달하느냐”고 묻는 등 서방세계를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후 미국 관리들은 소련 고위층이 미국 사정에 어둡고 사고방식이 서방측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군축협상 등에서 감축 규모에 신경 쓰기보다는 일정규모 이상의 핵무기는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시키는데 중점을 뒀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91년 7월 전략무기감축조약Ⅰ(STARTⅠ)과 1993년 1월 전략무기감축조약Ⅱ가 타결될 수 있었다.

에피소드 Ⅳ: 레이건 대통령의 소련 붕괴 작전

냉전 시절 미국은 대소 군사우위 유지보다는 경제전, 외교전, 군사전에서 승리하는데 노력했다. 경제적으로는 소련으로의 달러 유입 방지를 위해 사우디로 하여금 석유를 증산토록 해 원유가를 폭락시켰고 가짜 기술을 소련에 집어넣어 기술개발을 지연시켰다. 외교적으로는 폴란드 자유노조를 지원해 동유럽 자유화를 부추겼다.

군사적으로는 아프간 반군 무자헤딘을 지원해 소련이 아프간 수렁에 빠지도록 했고,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던 전략방어구상(SDI)을 추진해 결국 소련이 군비경쟁을 포기하고 핵 감축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소련의 경제·기술·심리적 취약점을 공격해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을 가능케 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소련 붕괴 작전은 윌리엄 케이시 CIA 부장이 뒷받침했다. 총체적 대응이 거둔 성과라 볼 수 있다.

북한 핵 대책에의 시사점 및 대책

위의 4가지 에피소드는 우리의 북한 핵 대책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 도발을 일삼는 김정은을 마음 편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도발을 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 필요가 있다. 많은 비용 들여 전략자산을 전개하기보다는 미국이 포착한 김정은의 이동영상을 은밀히 노출시키는 방법 등으로 김정은도 2020년 1월 드론으로 살해된 이란군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김정은이 절대무기로 생각하고 있는 핵무기가 절대무용지물이라는 점과 북한 핵이 특히 미국에 대항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핵개발이 김일성 이래의 유훈인데 북한 군 간부들이 북한 핵무기의 효용성의 한계를 김정은에게 올바로 인식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북한 ICBM은 미국 본토에 한 개도 도달할 수 없다는 점, 북한 잠수함은 공해 진입 즉시 탐지된다는 점, 지하벙커는 쉽게 김정은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김정은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 우리 군은 북한 핵 공격 시 서울이 입을 피해만 추정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 사용 시 북한 전체가 몇 분 내에 어떻게 파괴될 것인지를 김정은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한·미 양국이 상황별 핵 대책 로드맵을 작성하고 북한과 중국에도 알려야 한다. 나토의 이중결정 방식을 원용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핵 위협 수준에 따라 미국 전략자산 전개→ 핵 공유 협정 체결→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 한국 또는 한·일 양국의 공동 핵 개발 등의 로드맵을 작성해 북·중이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도록 경고해야 한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핵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우선 학계 수준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 문제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한 핵 대책은 비군사적 대책을 포함한 모든 대책을 망라해 작성돼야 한다. 이에는 정보기관의 비밀공작도 중요한 요소로 활용돼야 한다. 비밀공작(covert action)은 외교로도 해결 안 되고 전쟁을 할 수도 없는 경우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외정책 수단이다. 우리가 이스라엘 모사드를 본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밀공작이다.

전략적으로 재조정된 북한 핵 대책 필요

전략이란 흔히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기본목표 달성을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기 위해 설계된 통일되고 포괄적이고 통합된 계획”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가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통합된 계획’을 추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미국의 확장억제와 유엔제재에만 의존해 왔고 특히 문재인 정부는 드러내 놓고 이 두 가지 대책마저도 무력화 시키는데 열중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시킨 ‘고위급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2018년 제2차 회의 개최 후 중단시켜 버렸고,‘ 9·19 군사합의와 북한에 대한 굴종적 저자세로 미국의 무력시위의 위하력(威嚇力)을 앞장서 소멸시켜 버렸다.

유엔·미국의 제재 부과와 이행 강화에 노력한 적도 없고, 앞장서 제재 완화와 해제를 주장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빈축을 받아가면서도 유엔연설과 프랑스·영국·독일 등 정상들과의 회담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 제재완화를 요청했다. 또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거듭 요청하면서 우리 기업의 대북거래를 모른척 했다.

그러는 가운데 김정은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마음 놓고 핵·미사일 실험 등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윤석열 정부가 북한 핵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통합된 대책을 추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염돈재 객원 칼럼니스트(전 국정원 1차장,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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