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음악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한 방탄소년단(BTS)의 문제는 단지 BTS만의 문제가 아니라, K팝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리더인 RM은 14일 오후 공개된 유튜브 채널 ‘방탄TV’에서 “사람을 숙성하게 돠두지 않는다”며 K팝 아이돌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사진=방탄TV 캡처]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사진=방탄TV 캡처]

성공한 아이돌이자 글로벌 아티스트로 인정받아온 BTS조차도 우리나라 K팝 아이돌 양성 시스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현재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가 되긴 했지만, 이 아이돌을 양성하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주제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경우, 소속사 하이브의 상장(2020년)과 회사 규모 확장에 즈음해 미국 진출이 맞물리면서 최고의 성과를 내야 했던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진출 이후 RM은 정체성 혼란,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과도한 스케줄과 남이 써준 가사 부르는 시스템이 독약

한국어 가사로 서사적 음악을 전개해 온 BTS가 미국에 진출할 때에는 펜을 놓고, 영국인 작사·작곡가가 만들어준 영어 디지털 싱글 ‘Dynamite’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로 큰 화제가 됐지만, 이후 ‘Butter’ 등 비슷한 댄스곡을 차례로 내면서 방탄소년단의 기존 컨셉과 맞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에서의 성공이 오히려 BTS에게는 독이 됐다는 분석이다. 'Dynamite', 'Life Goes On', 'Butter' 등의 성공 이후, BTS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RM은 "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되게 중요한 사람이고 제가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이나 가사를 주로 썼던 RM이 남이 써주는 가사를 단지 부르기만 했던 데 대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것으로 풀이되는 발언이다.

그러면서 RM은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되고 계속 뭔가를 해야하니까 인간으로서 성장할 시간이 없다"라며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RM의 이같은 발언은 기존의 주요 기획사들이 구축한 현재의 K팝 시스템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RM은 "10년을 방탄소년단을 하다 보니까 물리적인 스케줄을 하면서 숙성이 안되더라. 지금 우리가 최전성기를 맞은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에 기능을 해야할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제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악습에 대한 분노가 에너지 근원이라던 방시혁, BTS의 창의성보다 빌보드 실적에 집중

특히 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국내 음악 산업의 문제점을 줄곧 지적해 왔지만, 미국 진출과 함께 방 의장 스스로도 K팝 시스템으로 BTS를 옥죈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 의장은 2019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오늘날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은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분노”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진출과 함께 청춘의 고뇌와 방황을 가사에 담아온 BTS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대신, 빌보드만을 겨냥해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으면서 실적 쌓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RM은 "언젠가부터인지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되고, 영어 열심히 하면 내 역할은 이 팀에서 끝난 거고, 옆에 퍼포먼스 잘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적당히 묻어가고, 이런 식으로 살다보니까 내 일만하면 이 팀은 돌아가는데 제가 여기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거를 좀 떨쳐내고 내가 혼자 나를 가만히 두고 생각을 충분히 하고 돌아오고 싶은데 그렇게 놔두지를 않았다. 그래서 연장을 계속 했다"라며 그동안 고민해 온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슈가, “7,8년 전에는 할 말 있어도 스킬 부족...지금은 일상의 반복으로 할 말이 없어져”

슈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메시지를 떠올리기 아려웠다고 말했다. [사진=방탄TV 캡처]
슈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메시지를 떠올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진=방탄TV 캡처]

슈가 역시 "제일 힘든게 가사 쓰는 거다.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다. 그게 너무 괴로운데 일 자체가 그런 거다. 2013년 이후로 한번도 '너무 재미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해 본 적이 없다. 항상 괴로웠고 항상 써내는 데 힘들었고 쥐어짜냈다. 7, 8년 전에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스킬적으로 부족해서 힘들었다면,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겠다"라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메시지를 떠올리기 어려웠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RM의 입장에 동조했다.

최정상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BTS도 K팝 시스템 안에서 음악은 물론 외모, 안무, 비디오, 팬서비스 모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K팝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려면 10대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피나는 연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데뷔 후에도 기획사의 지시와 팬덤의 요구 사이에서 방송, 공연, 행사는 물론이고 사인회, 악수회 등 육체적·감정적 노동 부담을 져야 한다. 따라서 BTS 멤버들 사이에서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공유된 것으로 관측된다.

BTS의 ‘단체 음악 활동 잠정 중단’은 사실상 꽤 오래 전부터 준비돼온 것으로 분석된다. BTS가 최근 9주년을 맞춰 'Anthology'를 발매하면서 팬들을 중심으로 “왜 10주년도 아니고, 9주년에 Anthology(선집)을 발매했느냐?”는 궁금증이 공유된 바 있다. Anthology 발매 이전부터 단체 음악 활동 잠정 중단을 이미 준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NO 대본, NO 설정'이라며 '아미의, 아미에 의한, 아미를 위한 방탄소년단의 진심이 담겨있는 찐 방탄회식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 이 영상이 공개된 것은 14일이다. 하지만 촬영은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BTS는 휴식 모드 돌입...BTS 활동재개 ‘K팝 시스템’ 혁신 담아낼 듯

방탄소년단은 단체 음악 활동은 잠정 중단한다면서도, 'BTS 자체는 유지된다'며, 재충전 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방탄TV 캡처]
방탄소년단은 단체 음악 활동은 잠정 중단한다면서도, 'BTS 자체는 유지된다'며, 재충전 후 돌아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방탄TV 캡처]

하지만 BTS 멤버들은 ‘미뤄뒀던 각각의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앞으로 하고 싶다’면서도 ‘달려라 방탄’ 같은 자체 프로그램을 계속 한다고 했고, ‘BTS 자체는 유지된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뷔는 "이번에 개인으로 다 활동을 하고 다시 단체로 모였을 때에는 그 시너지는 남들과 다를 것이다"라고 제이홉과 나눴던 이야기를 밝혔다. BTS의 막내 정국은 "각자 시간을 가지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오면서 한 단계 성장해서 돌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일곱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걱정하지 말고 기대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어른스런 심경을 밝혔다.

따라서 BTS의 활동재개 방식은 ‘공장형’이라는 기존 K팝 시스템의 혁신을 담아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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