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시행령 등에 대해 위헌, 위법을 확인하였을 때에도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을 뿐, 해당 내용을 직접 수정⋅변경하거나 이를 요구하지는 못한다. 이는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이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

1. 국회와 정부의 관계, 법률과 시행령의 관계

민주국가에서 삼권분립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삼권을 대표하는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는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입법부인 국회와 집행부인 정부가 대등한 위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비록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국회와 정부는 원칙적으로 대등하다.

국회와 정부는 입법기능과 집행기능의 담당자로서 각기 역할 분담을 하고 있으며, 각자의 영역에 대한 독자성이 인정된다. 국회는 법률의 제정을 통해 국가질서 형성의 기본방향을 결정하며,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구체적인 집행 사무의 처리를 담당한다. 여기서 법률의 우위, 즉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만 집행 사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나온다.

법률의 우위가 곧 국회의 정부에 대한 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 국가의 집행작용이 헌법과 법률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국가작용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의 우위에 기초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대통령령), 시행규칙(부령) 사이에 상하관계가 인정된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국회의 정부에 대한 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과 시행령 사이에도 그 담당 기관이 국회와 정부 사이의 역할 분담이 있다. 중요한 사항은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되, 경제환경의 변화 및 국제적 여건의 변화 등과 같은 현실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항, 법률로 세세하게 규정하기에 부적절한 사항에 대해서는 시행령에 위임하여 정부가 이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행령에 의해 법률이 빈껍데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 제75조에서는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행정입법이 법률의 위임을 받아 일정한 사항을 규율할 경우 그 실질적 기능은 법률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형식상 법률로 정하고 있지만 그 법률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행정입법에 위임할 경우에는 법률의 우위, 법률유보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실현구조 자체가 빈껍데기가 될 우려조차 있기 때문이다.

법률의 위임을 받아서 제정된 시행령이 그 법률, 즉 모법(母法)의 내용과 충돌하거나 포괄적 위임입법에 해당하는 경우, 전자는 위헌⋅위법한 명령이나 규칙으로서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통제의 대상이 되며, 후자는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된다.

2. 현행법상 국회의 시행령 통제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러한 사법적 통제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시행령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위해 다양한 대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회법 제98조의2를 들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정부는 시행령 등의 제정⋅개정⋅폐지에 대해 국회의 소관 상임위에 제출하여야 한다. 상임위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의 법률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여야 하며, 그 결과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검토의 경과와 처리 의견 등을 기재한 검토결과보고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국회의장은 제4항에 따라 제출된 검토결과보고서를 본회의에 보고하고, 국회는 본회의 의결로 이를 처리하고 정부에 송부한다. 정부는 이렇게 송부받은 검토결과에 대한 처리 여부를 검토하고 그 처리결과(송부받은 검토결과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 그 사유를 포함한다)를 국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상임위는 검토 결과 부령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으며, 이를 통보받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이러한 국회법 제98조의2 조항은 이미 국회가 시행령의 통제를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시행령 등이 위법하다는 국회의 판단에 정부가 법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일 경우에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거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 정부에 대한 압박이 강해질 것인데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시행령 등에 대한 수정⋅변경요구권을 갖고자 하는 것은 왜일까? 2015년에도 유승민 의원 등에 의하여 유사한 법안이 발의된 바 있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에 의해 무산된 바 있었다. 당시 헌법학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으며, 국회가 직접 수정⋅변경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3. 시행령 수정⋅변경요구권, 왜 특별한가?

선진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의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해 포괄적인 수정⋅변경요구권을 갖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원내각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의회주권이 인정되어 의회의 정부에 대한 폭넓은 관여가 인정되는 영국의 경우 의회의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도 다른 나라에 비해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영국에서 행정입법은 정부의 독자적 권한이라기보다는 의회의 권한위임에 기초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고, 이에 따라 행정입법에 대한 의회의 감시와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에서 행정입법에 대한 의회 통제의 수단으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의회에의 제출절차와 의회의 위원회에 의한 심사이다.

의회에의 제출절차(Laying before Parliament)란 행정입법의 초안 또는 행정입법 자체를 정해진 기간 내에 상⋅하 양원에 제출하여 그에 대한 승인을 얻도록 하는 절차로서 행정입법의 수권자인 의회가 집행부에 의한 행정입법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제출된 행정입법에 대해 위원회가 심도 있게 심사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영국의회의 경우 원칙적으로 정부가 제출한 행정입법을 폐지하거나 승인할 것인지만 결정할 수 있고,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조정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 엄격한 권력분립을 추구한다는 점으로 인해 행정입법에 대한 의회의 통제도 영국에 비해 조심스럽게 접근되었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는 행정입법의 통제를 위하여 기한부 수권제도, 사전승인제도 등을 도입하였지만, 가장 많은 논란을 낳은 것은 의회거부권제도(Legislative Veto)이다. 이는 의회에서 위임된 권한에 기초하여 행정기관 또는 행정위원회가 제정한 행정입법(규칙) 또는 그에 기초한 행정결정(Decision)을 의회가 폐지하는 것을 말한다. 의회거부권에 대한 일반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있을 경우에만 그 규정에 따라 의회거부권의 행사방식 및 절차가 정해진다.

그러나 의회거부권은 단지 행정입법을 통제할 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결정 자체를 취소하는 효과를 갖게 되면서 권력분립원칙과의 충돌이 문제되었으며, 결국 1983년 6월 23일 미국연방대법원의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 v. Chadha 사건 판결에서 의회거부권은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Chadha 판결 이후에도 -비록 의회거부권의 행사방식 및 내용에 적지 않은 수정이 가해졌지만- 의회거부권규정을 포함하는 다수의 법률들이 제정ㆍ공포되었으며, 의회거부권의 생명력(즉 이를 통한 행정입법 통제의 필요성)은 여전히 인정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경우는 물론 영국조차도 시행령의 폐지를 요구할지언정 의회가 요구하는 대로 그 내용을 수정⋅변경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며,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모든 행정입법에 대한 포괄적인 의회거부권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행정입법의 내용을 국회가 직접 수정⋅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권력분립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4. 국회의 시행령 수정⋅변경요구권은 위헌이다!

국내에서 시행령이 문제가 된 경우는 민주화 이후에도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법률로 정해야 할 사항을 시행령으로 정하는 이른바 시행령 정치가 문제가 된 적이 적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행령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인권침해 논란으로 이어진 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유아교육법 시행령, 최저임금법 시행령 등이 이른바 시행령 정치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여소야대의 형국 속에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개정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예컨대 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정부⋅여당은 강력히 반대했지만, 야당의 협조 없이는 이를 원점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검찰의 수사범위를 최대한 확대한다는 방침을 거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 시행령 정치를 문제삼으면서 국회의 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요구권을 입법화하겠다는 것은 권력분립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영국과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의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으나, 그 방식과 내용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의원내각제 국가가 아닌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회가 시행령의 내용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제왕적 국회를 꿈꾸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시행령 등에 대해 위헌, 위법을 확인하였을 때에도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을 뿐, 해당 내용을 직접 수정⋅변경하거나 이를 요구하지는 못한다. 이는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이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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