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축소에 대응해 석탄 의존도를 높이는 시대퇴행적인 에너지 긴급조치 시행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을 폐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 국가로 이어지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됐다. 

AFP·dpa 통신 등의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이날 에너지 수요 충당을 위해 석탄 사용을 늘리는 방안을 포함한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예비전력원으로 남겨뒀던 석탄화력발전소들을 재가동하고 기업에 가스를 판매하는 것도 경매 시스템으로 바꿔 천연가스 소비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몇 주 안으로 이날 발표된 방안들이 법제화될 것이라면서 올해 겨울을 대비해 천연가스를 최대한 비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 생산에 가스가 덜 사용돼야 한다"며 "대신 석탄화력발전소가 더 많이 사용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석탄 사용을 늘리는 일은 가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취하는 일시적인 조치라고 강조한 하베크 부총리는 "(석탄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는 건) 씁쓸하지만, 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호소했다.

러시아는 지난 15일 독일로 이어지는 발트해 관통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의 가스공급량을 60% 줄인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은 캐나다에서 수리한 가스송출설비가 대러 제재 때문에 독일 지멘스로 오지 않고 있어서라고 해명하지만 유럽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조치라고 간주한다. 하베크 부총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분열시키고, (에너지) 가격을 올리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현재 독일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총 저장능력의 56% 수준이며 겨울철 난방비 급등을 예방하기 위해 10월까지 최소 80%, 11월까지는 90%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같은날 오스트리아 정부도 폐쇄한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재가동 대상은 남부도시 멜라흐에 있는 발전소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재생에너지 정책에 따라 2020년 초 폐쇄한 것으로 오스트리아에 마지막 남은 석탄화력발전소다.

그동안 환경문제를 이유로 석탄 발전을 35%까지 줄인 네덜란드도 2024년까지는 석탄발전소를 다시 최대한 가동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가스위기 1단계를 선포했으며 석탄발전소 재가동으로 아낀 가스를 겨울용으로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서유럽 주요 국가들의 선거 일정 직전에 가스 밸브를 잠그며 '에너지 무기'를 휘둘렀다. 각국 정부여당은 에너지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쏟아내며 대응에 나서지만 지지층 붙잡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연립정당 '앙상블'은 이번 총선 결선에서 패배했다. 지난 4월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과반 확보 달성에 실패한 채 다른 정당들의 대약진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프랑스 파리의 외곽 지역에 사는 한 시민은 WSJ에 "사람들이 극한까지 버티고 있다. 언젠간 터질 것이다. 그땐 초대형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브뤼겔은 프랑스·독일이 에너지가 상승 대책에 투입하는 재정이 자국 전체 경제규모의 1%를 넘는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2% 이상, 그리스는 3% 이상이었다. 

시모네 타글리아피에트라 브뤼겔 수석연구원은 "이런 지출은 당연히 지속불가능하지만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며 "독일 등 유럽 국가는 값싼 러시아산 가스를 바탕으로 경제력을 구축했으나 이런 모델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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