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숭이두창이 유럽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 22일 우리나라에서도 첫 감염자가 발생했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30대 남성이 공항 내에서 자발적으로 질병관리청 콜센터 1339에 의심 증상이 있다고 신고함에 따라 최종 확인됐다.

원숭이두창 유행 안내문이 게시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모습.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원숭이두창 유행 안내문이 게시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모습.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독일에서 귀국한 내국인 A씨, 전신증상 및 피부병변 보여 자발적으로 신고

질병관리청은 22일 브리핑에서 전날(21일) 오후 4시쯤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의심 증상을 신고한 내국인 A씨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실시한 결과 원숭이두창 양성을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A씨는 독일에서 귀국한 30대 내국인으로, 입국 전인 지난 18일 두통 증상을 겪었으며, 입국 당시 미열(37도)과 인후통, 무력증(허약감), 피로 등 전신증상 및 피부병변을 보였다. 입국 직후 질병관리청에 의심사례를 자발적으로 신고했다. 이후 공항 검역소와 중앙역학조사관에 의해 의사환자로 분류됐으며, 인천의료원(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국내 최초 원숭이두창 환자 발생 소식에, 시민들은 “도대체 독일에서 뭘하다 온 거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숭이두창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가 ‘동성애자들 간의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열린 두 차례 대규모 파티에서 벌어진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남성간의 성관계에서 비롯됐다는 특정 감염경로가 부각되면서다. 

성관계를 통해서만 전파되는 것 아냐...감염자의 체액, 딱지, 상처 등과 접촉시 전파돼

하지만 원숭이두창이 반드시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우리나라 질병관리청 등에서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질과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람 간에는 감염자의 체액이나 딱지, 상처 등에 밀접하게 접촉했을 때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환자의 체액·병변이 묻은 의복이나 침구류 등의 접촉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호흡기 전파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청은 "호흡기 전파도 가능하나 코로나19처럼 단순 접촉으로 감염되지는 않는다"며 "바이러스가 포함된 미세 에어로졸을 통한 공기 전파는 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천보다 쇠나 목재 같은 딱딱한 표면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는데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워낙 소수이고 드러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그런 연구까지는 안 돼 있는 것 같다"며 "공기 전파가 흔한 상황이 아닌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숭이두창 잠복기는 21일로 길어, ‘개인 양심’ 속이면 발병 사실 파악 어려워

방역당국은 현재 국내에 A씨와 관련한 고위험 접촉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가 입국 직후 의심사례를 신고해, 즉각적인 검사와 격리 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만약 A씨가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검역 시스템 하에서 ‘과연 원숭이두창 감염바이러스 유입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숭이두창 환자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A씨는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확진자로 판정되었으며 현재 인천의료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A씨는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원숭이두창 확진자로 판정되었으며 현재 인천의료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은 인천의료원 국가지정 음압치료 병상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이동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국내 원숭이두창 의심환자는 지난 20일 입국한 외국인 1명(B씨)이 더 있었으나, 원숭이두창이 아닌 '수두'에 감염된 것으로 최종 판정됐다. B씨는 지난 19일 이미 전신증상과 피부병변이 일어났지만 건강상태 질문서에 '증상 없음'으로 기재해 제출했으며, 발열체크에도 정상체온으로 기록됐다.

피부 병변이 일어났지만 검역관들은 의심환자로 분류해내지 못했다. B씨는 진단검사 결과 원숭이두창이 아닌 수두 환자로 판명났지만, 발병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숨기려고 했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원숭이두창 특성상 잠복기가 21일로 길다는 점에서, 건강진단 질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의심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발병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실상 개인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코로나19는 입국 전후 검사...원숭이두창은 본인이 의심증상을 써내야 보건당국이 파악 가능

현재 코로나19는 입국 전후로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검역 단계에서 걸러지기 쉬운 상황이다. 그러나 원숭이두창은 발열이나 수포형 발진이 있는지, 본인이 답변을 써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걸러지기가 어렵다. 이 경우 가족 등 지역사회 전파 우려가 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22일 브리핑을 통해 "발생국가를 방문한 후에 의심증상이 있는 이들의 자발적인 신고와 검사가 있어야 추후 확산 차단 조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B씨처럼 방역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숨긴다면, 찾아낼 방도가 없다는 고백인 셈이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2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원숭이두창 국내 환자 발생 상황과 검사 결과, 대응조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2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원숭이두창 국내 환자 발생 상황과 검사 결과, 대응조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 입국자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원숭이두창의 치명률(3~6%)은 높지만 전파력 떨어져 2급 감염병으로 분류

하지만 ‘원숭이두창은 (사람간) 직접접촉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유행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고, 소규모 유행이 예상돼 겁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특히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원숭이두창의 최근 치명률은 3~6% 수준으로, 코로나19의 최근 국내 치명률(0.13%)에 비해 크게 높다는 점은 주목된다. 방역당국은 "치명률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보인다. 감염병에서 치명률이 1%만 넘어도 높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신생아, 어린이, 면역저하자 등에게는 더 위험하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방역당국은 현재 국내 활용 가능한 치료제(시도포비어, 백시니아면역글로불린, 총 100명 분)를 의료기관에 필요시 배포하여 사용하도록 하는 한편, 치료제인 테코비리마트(경구) 500명분은 7월 중 국내 도입할 예정이다.

원숭이두창은 중·서부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 지역에서 주로 발생해 온 인수공통감염병이다. 1958년 덴마크의 한 연구소 원숭이에서 사람 두창(천연두)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 '원숭이두창'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원숭이두창은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 사는 9개월 소년을 통해, 처음 사람에게서 발견됐다.

이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가봉, 코트디부아르 등에서 보고돼 아프리카 지역에서 풍토병으로 자리잡았으나, 지난 5월 7일 영국에서 첫 발병 보고가 있고 난 뒤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22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기존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한 단계 높여 발령했다. 원숭이두창은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2급 감염병'이다. 1급 감염병처럼 음압 격리 등 엄격한 수준까지 요구되지는 않지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격리 자체는 필요한 감염병에 해당한다.

질병관리청은 유럽과 북미 등 원숭이두창 빈발 27개국을 검역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입국자에게 건강상태질문서, 예방접종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에는 입출국 금지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