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광역시장과 도지사들이 관사 대신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공관 반납 의지를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 김영환 충북지사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반면, 관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당선인에 대해서는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일부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장으로 더 중요한 덕목은 ‘관사냐 자택’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만큼 지자체를 잘 이끌어가느냐는 ‘행정 능력’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사용했던 종로구 가회동 관사 모습. 오세훈 시장은 이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사용했던 종로구 가회동 관사 모습. 오세훈 시장은 이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 시장의 ‘관사 포기’, 지자체장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오세훈 시장이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전임 박원순 시장이 사용하던 서울시장 관사에 입주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말 행정안전부는 단체장에게 제공하는 ‘1급 관사’ 조례를 삭제하도록 하는 ‘관사 운영 개선 권고안’을 전국 자치단체에 보냈다. 이런 가운데 6·1지방선거 이후 새롭게 출범한 자치단체장 사이에서는 자발적으로 관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움직임이 확산된 것이다.

김영환 충북지사 당선인, 김태흠 충남지사 당선인, 박완수 경남지사 당선인 등은 선거 과정에서 관사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관선 시대의 유물이자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표현하며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도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시장과 도지사가 부임하는 경우 생활할 공간이 필요해서 마련한 것이 관사라는 입장에서다. 단체장이 지역에 주거를 두고 있는 현재에는 ‘예산 낭비’라는 지적과 함께, 일부 단체장들은 관사에 입주하면서 생긴 여윳돈을 부동산 투자에 쓰는 등 물의를 빚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관사 입주는 구태이고 자택 사용은 혁신?

반면 ‘관사는 구태’ ‘자택은 혁신’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로 이 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광역시장과 도지사 중에서도 지역에 주거지를 마련할 상황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환 충북지사 당선인은 "작은 예산이라도 아껴서 젊은이들에 투자하고, 소중한 세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관사에 입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당선인은 '내 집'에서 출퇴근하기 위해, 청주 호미지구의 한 아파트를 반전세로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 출퇴근’을 당연시하는 잣대를 의식, 지역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 ‘반전세’까지 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장, 총리, 경찰청장 등을 비롯해, 심지어 지방으로 전출가는 군인에게도 관사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불공정 논란’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광역시장과 도지사에게 너무 과도한 윤리 기준으로 ‘청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의 ‘관사 입주’에 일부 언론이 비판 보도

또한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의 경우, 세금낭비를 막겠다며 일회성 행사 등을 구조조정하는 반면, 관사는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 당선인은 지난 23일 오전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예산 중 170여 개 단체 총 261건의 사업에 971억원의 도비가 투입됐다”며 “다수가 타당성이 의문스럽고 목적·내용·효과도 불투명해 보인다. 문제가 아주 명확한 사업을 대상으로 당장 지원을 중단해도 971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당선인은 대표적인 사례로 ‘2018평창기념재단의 평창평화포럼’과 ‘춘천 호수나라 물빛축제’ 등을 꼽았다. 일회성 행사 폐지의 본보기로 도지사 취임식을 생략하고, 7월 8일 도민의날 행사에 취임식을 흡수 개최하겠다는 뜻도 아울러 밝혔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24일 오후 강원 춘천시 스카이컨벤션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 대회 및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진태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24일 오후 강원 춘천시 스카이컨벤션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 대회 및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도지사 관사에 대해 모 일간지는 ‘(김 당선인이) 사실상 관사에 입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비난하는 투의 보도를 했다. 강원도지사 관사가 광역단체장 관사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점을 거론하며, 관사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마치 부정한 일인양 보도한 것이다.

김진태 당선인, 본지와의 통화에서 “도정 능력보다 자택 입주가 최고의 평가기준 돼서는 안돼”

이와 관련 펜앤드마이크는 27일 김 당선인과 통화해 직접 의견을 확인했다. “당선인의 사정에 따라 현지에 자택을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당선인은 “그렇다”면서, “도정을 펼치는 능력보다 ‘자택 입주’가 최고의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당선인의 경우, 일회성 행사를 폐지함으로써 세금 낭비를 줄인다면서도 관사 입주 의사를 밝힌 것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회성 행사를 폐지하려는 김 당선인의 도정 업무와 관사 업무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2년 간 민주당 출신 도지사들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불합리한 행사 등을 정리하는 등 도정 업무에서의 탁월함이 도지사에게는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지적이다.

지자체장 ‘관사 포기’ 유행이지만, 유권자의 평가는 ‘행정 능력’이 좌우할 듯

강원도 외에 경북, 대구, 전북도 관사가 유지된다. 경상북도는 이철우 지사가 연임에 성공하면서 기존 관사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대구시는 홍준표 신임 시장이 현 권영진 시장이 사용하는 관사를 매각하고, 남구 봉덕동의 아파트를 새로 매입해 입주하는 쪽으로 추진 중이다. 김관영 전북지사 역시 관사 폐지보다는 ‘유지’하면서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 폭을 넒히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든 도지사와 광역시장의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자택’ 입주를 정당화하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현재 지자체장 당선인들의 취임 이후,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결국 ‘행정 능력’이라는 결과물에 의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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