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의원 워크숍 이후 분당론까지 제기한 김민석 의원이 28일 급기야 이재명 의원을 향해 당대표 불출마까지 종용했다. “주연급 배우가 모든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다”며 이 의원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며, 본인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자신이 ‘돌아온 신상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28일 CBS라디오에 출연, 이재명 의원의 당권 불출마를 종용하며, 자신의 출마 의사를 시사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28일 CBS라디오에 출연, 이재명 의원의 당권 불출마를 종용하며, 자신의 출마 의사를 시사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분당론 제기한 김민석, ‘돌아온 신상품’이라며 당 대표 출마 시사

김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은 문제의 본질은 누가 준비된 강력한 대안인가 아니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총선에 필요한 임무를 누가 잘 할 수 있는가를 놓고 일단 한번 현재까지의 흐름을 끊고 그런 관성에서 벗어나서 총선을 치를 수 있는 당의 대표를 뽑는 거니까 그 대안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의원도 본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경쟁하면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저는 그 국면에 있어서는 총선을 치르는 데 있어서는 제가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자신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과거에 계파나 선거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에 있어서 경쟁을 하겠다는 마음이 선 것"이라며 "내가 돌아온 신상품 아니냐"고 말했다.

김민석의 흑역사,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버리고 정몽준 캠프로 이적

민주당 내 86그룹 용퇴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86운동권 그룹의 원조 중에서도 ‘상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 의원의 ‘돌아온 신상품’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 내 ‘인물부재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에게 김 의원은 ‘당대표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02년 대선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당사자이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10월 17일 갑자기 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캠프로 이적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김 의원의 이적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7%,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은 23%,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33%를 보이고 있었다.

김 의원의 탈당 이후 폭락하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급반등했다. 그동안 관망하던 개혁성향의 유권자들이 노무현에 대한 동정심리로 재결집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면초가의 노무현 캠프는 활기를 찾았고, 이후 정몽준과 후보단일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반등한 지지율 덕분에, 여론조사로 붙어도 정몽준을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김 의원은 "가출했던 아들이 집에 돌아온 심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국민통합21을 탈당한 뒤 2003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했다. 하지만 이후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이 계속됐고, 그로 인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관측된다.

김민석 의원은 지난 2016년 10월 7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2002년 대선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적극 해명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김민석 의원은 지난 2016년 10월 7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2002년 대선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적극 해명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그 후 김 의원은 2016년 10월 김어준의 ‘파파이스 115화’에 출연해 당시 상황에 대해 굴욕적인 인터뷰를 했다. 김 의원은 김씨로부터 “왜 정몽준에게 갔느냐”라는 노골적인 질문을 들어야 했고, 김 의원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후보단일화가 필요했다”며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를 만들어내고 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성명을 냈다”고 답했다.

탈당 이후 김 의원은 정몽준 캠프에 합류했고, 실제 정 후보를 설득해 여론조사 단일화를 성사시켰다고 강조했다. 당시 당내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실제로 이를 위해 움직인 사람이 본인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단일화를 통해 이회창 후보에 대해 승세를 굳혔으나 유세 마지막 날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 파동 때문에, 대선 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해명했다.

‘노무현을 버린 정치인’ 낙인 찍혀 18년간 정치 낭인으로 지내

그러면서 김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자기를 평가한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이 "김민석의 행동은 충격이었고, 단일화를 위한 합리적 충정이었을 수 있으나 본인은 아주 어렵게 되었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단일화를 위한 충정’을 강조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입장은 ‘김민석의 행동은 충격’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단일화 이후에는 왜 돌아오지 않았느냐?"는 김어준의 송곳 질문에 김 의원은 “당시 단일화 이후에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대선이 다 끝나고 돌아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선이 끝나면 어차피 정치적 상처가 생겼으니, 잠시 정치를 떠나 유학할 의사를 주변에 피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김 의원은 ‘노무현을 버리고 정몽준에게 간 정치인’으로 각인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27세의 나이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던 화려한 경력은 묻히고 말았다. 당시 김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민주자유당 나웅배 후보에게 불과 260표차로 안타깝게 낙선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제14대와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신한국당 최영한(최불암) 의원을 꺾고 31세의 나이에 초선의원이 되었다. 현재의 86그룹이 2000년을 전후로 정치에 입문한 것과 비교하면, 김 의원은 86그룹의 원조 중에 원조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김 의원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낭인으로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5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이명박 후보에게 10%가 넘는 큰 차이로 패배했다. 당시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을 계기로 승승장구해 대통령까지 올랐던 것과 달리, 김 의원은 이때를 기점으로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16대 국회의원을 사퇴한 영등포 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권영세 후보가 당선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김민석도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아

2020년 국회의원으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선거 결과, 김 의원의 지역구인 영등포구 을에서는 재임 중이던 더불어민주당 구청장과 시의원이 모조리 낙선하고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됐다. 민주당 내에서 제기되는 ‘선거 패배에 책임 있는 자는 당대표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조건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28일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보다 앞선 26일 김 의원은 ‘당대표 출마’를 위한 포석을 깔았다. 지난 23~24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이 끝난 직후인 26일 “이대로 가면 (당이) 깨지지 않나”고 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원 워크숍 후 고민이 깊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워크숍 기간 동안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를 두고 갈등이 분출된 사정을 두고, 김 의원은 분당론까지 거론한 것이다. 김 의원이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 의원은 “상대만 지목하는 책임론과 내용과 결기 없는 세대교체론이 혁신의 대안이 될지 의문”이라며 “시대의 변화를 통찰하고 체화해 교체와 변화의 길을 여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저는 오래전부터 당이 어려울 때면 ‘판메이커’로 통합·혁신·미래·승리의 새 판을 만들곤 했다”며 “당과 국가를 위한 사명감으로 전당대회에서 제 소임의 깃발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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