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염원이 김일성 왕조 무너지고 조국 통일 맞이하는 일...북녘땅 보이는 전방 어느 고지에 백골로 남겠다"유언

진행자: 전두환 대통령 마지막 떠나보낼 때 어떠셨나요.

"내가 당신 기억못하면 요양병원보내라"...몸 불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순자 여사에게 요청

이 여사: 근데 사실은요. 어... 내가 볼때는 이 양반이 나도 이제는 나이도 들고 했는데 제가 어딜 가는걸 싫어하시고 옆에 있기를 좋아하시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게 좀 미안하게 생각하셨나봐요. 그래서 이러셔요. 당신도 이제 늙고 힘들텐데, 나 수발하느라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기억이 있고 당신이란 존재를 기억하는 동안만 당신이 수고 좀 더 해라. 내가 만약에 기억 못하면 요양병원에 보내라 그렇게 이야길 하셔요. 아이고 당신이 내가 모를때까지만 사세요. 글쎄 내가 생각할 때도 내가 나를 잊어버리면 잊었지 당신을 잊어버리겠어 농담으로... (웃음) 그래서 마지막에는 자기도 인제 병원에 가서 혈액암이라고 판정을 받고 그러니까 병원 입원 안하시겠대요. 가족들 품에서 그냥 나는 가겠다 그 말씀대로 그 입원이 마지막이고 두 번째 입원도 안하시고 그냥 일어나시다가 이제 일어나셔서 제가 부축을 해 드렸어요. 뭐 잘 다리가 많이 부어요. 혈액암이라.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고 많이 부어서 일어날때 제가 부축해드렸는데, 갑자기 두 발자국 걷다가 저한테 체중이 완전히 실려가지고 제가 주저앉으면서 같이 쓰러지면서 이 팔(오른쪽)에서 두 번 숨쉬고 그냥 가셨어요. 그래서 고통없이, 병원에 갔으면 또 고생하셨을 텐데 고통없이 가셔서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복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자: 장례 지난지 8개월인데 유골함이 자택에 그냥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마지막 유언이 전방 사단에서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통일을 바라시면서 전방지역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하셨다는데.

이 여사: 내 가슴 속에 평생을 지녀온 염원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었음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날이 가까워 왔음을 느낀다. 그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전방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기어이 그 날을 맞고 싶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진행자: 이미 2017년 회고록에...

"평생 군에 바쳤으니 전방에 유골 묻고 그 위에 통일 염원하는 비석 하나 세우고 싶어"

이 여사: 네. 회고록에 이렇게 말씀 올리셨어요. 그래서 그 말씀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통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돋보이는 유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돌아가실 당시에는 전방 고지는 군 관할 지역이고 코로나로 인해 민간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장지는 시간을 갖고 찾기로 하고, 잠정적으로 집에 모시면서 유지를 잘 받드는 길을 모색해봐야되겠다 해서 모시게 된 거거든요. 날씨도 춥고 이제 해동을 했으니까 알맞은 장소를 물색해서 모시되, 아직 정부하고 협조도 거쳐야 되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덤을 본인이 검소하게 하라 그래서 가족장도 했고 이랬는데, 무덤을 근사하게 하는것보다는 제 생각엔 유골함을 밑에 묻고 위에다가 통일 염원 비석을 하나 전방 이북을 바라보이는 곳에 놓게 해서 지금 너무 말하자면 안보에 대한 의식이 해이해졌잖아요. 그래도 군대에서 평생을 군에 바쳐서 대통령을 끝냈어도 아직 군인정신이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이 통일을 염원하는 비석을 하나 전방에 자기가 말씀하신 것에 적합한 곳에 한다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해봤기 때문에 의논을 거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자: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께서 연희동 예방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오셔서 유골함 보셨나요?

이 여사: 네. 보시고 참배하시고 사진도 찍고 가시고...

진행자: 전직대통령 장지를 8개월이 되도록 못구해서 자택에다가 모신다는게 어떤 면에서 보면 참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여사: 하여튼 이 양반은 특별한 분인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처음에 이리로 모시고 올 때는 사실 뭐 그런 비슷한 맘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8개월동안 모셔놓고 같이 아침이고 점심이고 시도때도 없이 와서 그렇게 하니까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끔 마음이 많이 변하더라고요.

진행자: 전 대통령께서 화장을 하시기로 한건 언제 어느분이 결정하신 건가요?

"죽으면 화장하라,늘 말씀하셔"

이 여사: 항상 그러셨어요. 나는 죽으면 화장해라. 그리고 장례는 요란하게 하지 마라. 늘 이렇게 말씀해오셨거든요. 근데 이제 대통령이 되시니까 국립묘지에 가시는건 기정사실이잖아요. 그건 불가능할 일이잖아요. 근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렇게 현실로 돼서 집에 모시게 되니까. 야 말이 씨가 된단 말이 있더니 무섭다 섬뜩한 맘이 들더라고요.

사실 이 양반은 대통령 되고나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수도없이 약속했던 것 같아요. 첫째 단임(제) 약속 그담에 한자리 물가, 외채상환하겠다. 올림픽 유치. 올림픽 유치까진 괜찮아 거기다 선진조국 창조. 다니면서 가는데마다 아이고 저 말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그랬거든. 지금 우리가 뭐 이제 G7에 들어가니 마느니 그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것까지 다 자기말대로 됐고 결국은 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기 말대로 됐잖아요. 제 생각에는 저승에 가서도 뭐 좀 생각이 좀 남다를 것 같아요. 

진행자: "나의 애인, 신랑, 남편이었던 그분, 자식들의 아버지 손자 손녀들의 할아버지 대한민국의 11대 12대 대통령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분께 이 책을 바치고 싶다" 회고록에 이렇게 적고 계신데, 전두환 대통령이 이순자 여사님께는 어떤 분이셨나요.

이 여사: 글쎄요. 제가요 장문의 글을 써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사람이 2만장이 넘는.

진행자: 원고지에다가 쓰셨더라고요.

이 여사:원고지보다 원래는 노트에다 써서 원고지에 옮기고 그걸 또 수정해서 똑같은 내용의 원고지가 한 세 번을 걸쳐 쓴게 있어요. 그렇게 2만장이 훨씬 넘는 원고지를 써가지고, 그걸 또 자서전을 만들어가지고, 그걸 귀하게 만든 자서전을 남편에게 바치고 싶다는 걸 보면 남편을 어지간히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글을 쓰기 위해서 남편에 관한 기록들을 다 살펴보면서 이 양반은 아무래도 제 삶이라는건 14살에 이 양반을 알게돼서 21살에 결혼했으니까 제 삶을 쓰면 전부 이 양반에 관한 거지, 저에 관한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자서전을 쓰면서 남편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아 자서전을 반드시 써야되겠다 하는 다짐을 가지게 된것 같고요. 또 퇴임하고 난 다음에 끊임없이 가해지는 박해들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동지애도 좀 느끼게 된 것 같고, 또 50년 넘는 긴 세월을 함께 살았고 또 30년 넘께 글을 쓰며 남편에 대한 행적을 대하다 보니까 부지불식간에 광팬이 된건 아닐까.

진행자: 아 광팬이요? 팬이세요?

이 여사: 예. 그러니깐 남편한테 책 바치면 됐지 뭐 남편이며.

진행자: 아이들의 아버지고 손녀..

이 여사: 그러니까 요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다 괜찮은가보죠.<계속>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