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 마다 역사적 사건벌어져"

"청와대 경비단장때,박격포 처음 설치...김신조 잡게돼"

이 여사: 가는 데마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었어요. 왜냐하면 30 경비단장 할때, 1·21사태 나서 했잖아요. 그것도 청와대 뒷산으로 청와대 앞에 바로 70미터까지 이북의 무장 공비가 온다,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죠.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인데 이 양반은 30사단에 가더니 경내를 돌아보더니 청와대 뒷산이 위험하다 이거에요. 그래가지고 그걸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면서 거기다가 박격포를 그쪽으로 조명탄을 쏘는 걸, 근데 그걸 잘못하면 큰일나는거 아니에요. 근데 박 대통령께 보고드리니까 '야 이걸 왜 진작 안했냐' '포병출신이라서'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다' 허락을 하셔가지고 그래서 박격포를, 뭐 말씀 들어보니까 무슨 이렇게 다 두꺼운 걸 싸서 놔둔거래요. 일 났을 때 그걸 뜯으면 늦는대요. 그걸 다 뜯어서 (바로 쓸 수 있게), 그리고 장병들이 옷을 갖다가 밤에 잠을 자다가도 팬티만 입고 일단 가서 딱 놓고 옷은 나중에 입게 그렇게 했대요. 그래서 김신조 나왔을 때 바로.

진행자: 조명탄 쏴가지고

이 여사: 근데 그 조명탄이 너무 오래돼가지고 그게 잘못해서 김신조 있는 앞에 떨어져서 그게...운도 좋아야돼요. 그래서 혼비백산 달아나서 그 공로로 5·16 무슨 훈장하고 5·16 민족상까지 받아가지고 그래서 이제 그 정신문화연구원 저도 한복 하나 차려 입고 육여사 돌아가시고 박근혜 양이 퍼스트레이디 할 땐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그랬죠. 그담에...

1사단장 할 때 제3땅굴 발견했죠. 그것도 전임자가 있을 때 이북에서 공사하던 사람이 건너와서 '여기 땅굴 있다'고 이야길 해서, 전임자가 4년동안이나.

진행자: 근데 못 찾았죠.

"땅굴 찾으면 1년 휴가,간첩 잡으면 고향에 헬기 태워 보내주고...부하들 동기부여를 잘 했어요"

이 여사: 이 양반이 가셔서 (찾았죠). 그걸 찾는게 쉽지 않은게요. 땅굴이 이렇게 있으면 그 위에서 시추공을 이제 이렇게 뚫어서 거기에 뚫어져야 공기가 올라와야 된다는 모양인데, 이렇게 내려오다가 뭐 바윗돌 지나면서 비뚤어지고, 땅굴이 이렇게 있는데 요렇게 지나가고 요렇게 지나가고(비껴 지나갔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이 양반이 계실 때 발견할 때는 요 끄트머리로 공기가 살짝 나왔는데 그때 장병이 안 자고 (발견한 거죠), 근무를 아주 잘 한거죠.

근데 이 양반이, 자기 1년치 월급 주고 또 저기 그.

진행자: 포상한다고 예

이 여사: 간첩잡는 사람은 자기 고향에 헬기 태워서 보내주고, 1년 휴가 보내주고 하여튼 뭐 포상을 거셨나봐요. 그건 이제 땅굴 이런걸 생각하고 한건 아니고, 자기가 생각할땐 어린 애들이, 장병들이 어리잖아요. GOP에서 근무하는 애들이. 이 친구들이 간첩이 온다 그러면 무섭잖아요. 그러면 저쪽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 자기 있는 데로 오지 마라고 일부러 헛기침을 한대요. 그런데 이제 그런걸 해 놓으면 휴가가면 좋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이제 잡으려고 하는 것과 자세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내걸었는데, 하여튼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동기부여가 되긴 됐나봐요. 왜냐하면 하루는 이제 제가 전방에 갔는데, 뭘 좀 해서 들어가잖아요.

진행자: 음식도 많이 해서 나르셨다고 자서전에 나와 있잖습니까.

이 여사: 들어갔는데 마침 거기서 중대장 한 사람이 딴 데로 명령이 났대요. 그래서 이제 저를 면회하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부인을 면회하는 사람은 이상하네' 물어보니까 '어떻게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보래요. 그래서 들어봤더니 이 양반이 뭐라하냐 하면, 자기가 지금 부하들을 훈련을 잘 시켜놔서 간첩이 오기만 하면 잡게 해놨는데 명령이 나버렸다 이거에요. 더 있게 해달라고, GOP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럴 정도로 그게 효과가 있긴 있었어요.

"남편은 사단장 발령받으면 일단 중대장들 이름 다 외워요"

그러고 난 다음에 땅굴 발견했잖아요. 이 양반은 보면 정이 많고 이러니까 전방에도 일단은 중대장들 이름을 다 외워요. 사단장 보직을 받으면 100일을 집에 안와요. 제가 들어가서 보면 사단장실에 이렇게 동상제막하는 것처럼 이렇게 생긴거 위에다 뭘 해놨어요. 이게 뭐에요 물어보면 그 안에 사람 얼굴 사진 다 놓고 이름하고 놓고 계속 외워요. 그리고 저쪽에서 만약에 적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냐면, 다리 이건 수심이 얼마고 비가 많이 올 땐 얼마고 이건 무슨무슨 화기가 지나갈 수 있고 이런 걸 다 이렇게 도면을 해 놓고 두 개를 헝겊으로 덮어놔서 자기가 외우는 거에요. 그렇게 중대장 이름을 다 외워서, 비가 오면 아무개 중대장 무섭지 전화하고, 좀 근무하는 게 별나긴 별났어요.

그리고 제가 들어가면 육개장 같은 걸 해서, 우리는 연대장, 참모, 대대장, 중대장 다 사단장 집에 와서 먹고 갔어요. 대대장, 연대장, 참모님들은 자주 오셨지만 중대장까지 사단장 집에 와서 밥 먹는다는건.

진행자: 사단이면 중대장만 해도 60명이 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데

이 여사: 돌아가면서, 그리고 한 중대에서 몽땅 오면 안되니까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이렇게 해 가지고, 그 때 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진수성찬은 못해줘도, 그래도 김치도 집에서 하고 육개장 같은 거 하고 불고기도 많이 하면 비싸잖아요. 불고기에다 야채같은 거 많이 넣어서 튀긴다든지.

진행자: 직접하신건가요

이 여사: 직접 하죠. 그 때는 사람 두고 이런 거 못할 때잖아요. 하여튼 그 당시에는 우리 어머님도 많이 편찮으셨고, 우리 큰아들, 애가 넷이잖아요. 큰아들이 이제 대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었고, 사실 서울에서 일이 많아요. 거기서 또 (남편을) 보지도 못하고 잘하겠다고 그러고 계신데, (도우미를) 요구하면 되겠어요?

진행자: 그러셨군요. 자서전을 쓰시게 된 시작이 가장 힘드신 시기에 썼다고 들었습니다. 백담사에 가셨을 때 시작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아까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글을 길게 쓰신적도 없고, 2만장에 달하는 원고를 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이 여사: 그리고 저는 요. 회고록을 쓴다, 자서전을 쓴다 그러면 아주 대단한 문필가가 쓰는 건줄 알았지, 제가 자서전을 직접 쓴다? 상상도 못했어요.

진행자: 계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여사: 그런데 거기 가서 일단은 내가 이제 완성본을 쓴다기보다는, 요리를 만든다고 하면 재료가 있어야 되잖아요. 재료를 해 놓으면 마지막에 요리사가 와서 하듯이, 내가 재료라도 해 놔야 되겠다. 왜냐하면 실제 상황, 그건 남이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때그때 느끼는 것을 스프링 옆에 달린 노트에다 그냥 여기서 떠날 때부터 도착한 날부터 그때 그때 심정을 이렇게 적어놓았던 거에요.

진행자: 일기를 쓰신 건가요?

"백담사에 관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너무 엉터리로,소설 쓰는 거죠...그래서 제가 직접 글을 쓰게 됐어요"

이 여사: 학교 다닐 때처럼 쓴 일기는 아니고, 그때 그때 나의 느낌을 적어 놓고 시간 같은 거 정확하게 적어놓고 이랬는데 거기 백담사에 가서 너무 속상하면 그냥 나한테 하소연이나 쓰고 그랬어요. 이제 백담사에 관한 이야기를 바깥에 신문에 나는 걸 보면 너무 엉터리로 쓰는거에요.

진행자: 어떤 점이 제일?

이 여사: 그러니까 요새 그냥 쓰는 것처럼 소설 쓰는 거죠. 좋은 뜻으로는 아니고 나쁜 뜻으로 쓴건데, 아이고 그런데 이제 불교 신문에서 제가 백담사에서 산 수기를 하나 불교신문에 냈으면 좋겠다 하고 왔어요. 우연한 기회에. 그러면 백담사에 와서 신세도 지는데 한 번 써볼까? 그래서 제가 이제 87쪽 원고지 분량에 백담사에서 두 해를 맞으며 썼어요, 하나. 그랬더니 그걸 인제 경향신문사, 조선일보에서 먼저 냈어요. 신문이 이렇게 큰 면이 있으면 반쪽 면을 이틀에 걸쳐서. 한번 나가니까 경향신문에서 그 다음날 양 면을 다 내겠다고, 그래서 경향신문에 내게 됐어요, 내 수기가. 그러니까 내가 써볼까?

그냥 하여튼, 이담에 어떻게 되든 그냥 써볼까, 써서 이제 또 누군가 잘 쓰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든, 내가 써볼까. 그래서 이렇게 쓰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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