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으셨죠. 저 앞에 전화기가 있는데, 우리나라 통신을 아주 세계 최첨단으로 올려놓으셨고, 반도체 하여간 곳곳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손길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 여사: 여기 보시면은 이것이 계실 때 이뤄놓으신 업적들이라고 해서 2월 25일 나오셨는데 24일에 하얏트에서 리셉션을 했는데 그때 각 부처에서 (전화기는) 최신부에서, 우리나라 전화 자동화시켰다고 그날 줬고요. 이건 우리나라 IT 오늘날의 20년 후의 우리나라 먹거리를 뭐든지 20년은 과일나무도 그렇고 그렇잖아요. 정보통신부에서 준 겁니다. 이건 취임식 사진, 이건 취임사고, 저쪽은 대통령이 되면은 외국에 가면 드레스코드할 때 훈장하고 오라고 하면 해야되는 무궁화 대훈장이에요. 왼쪽건 흑자경제의 사과나무라 하는 걸 달성했다 그래서 경제 단체장들이 준 거에요. 저건 88올림픽을 유치해서 준비하고 6개월 전에 그만두셨잖아요. 그때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사마란치 위원장 이런 사람들이 각하한테, 전 대통령 각하를 보고 올림픽을 분단된 국가에 줬는데, 그냥 물러나면 어떻게 되느냐...

진행자: 혹시 올림픽에 지장을 줄까봐 이렇게 생각했겠죠.

이 여사: 야당하고 협조하면 충분히 된다. 올림픽만 하고 나가라. 그렇게 이야길 했죠.

진행자: 임기를 조금 더 연장해서?

"올림픽 유치보다 더 중요한게 단임제다"

이 여사: 네. 야당하고 합의를 해서 6개월만 연장해서 올림픽을 치르고 나가라. 그렇게 이야길 했어요. 그랬더니 이 양반 대답이 뭐냐면 우리나라에 내가 대통령 될 때, 내가 육군 소장하다가 대통령 잘한다고 누가 생각했겠냐, 잘 하지 않았냐. 우리나라엔 인재들이 꽉 찼다.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가 단임제가 안됐다. 올림픽 유치보다 더 중요한게 단임제를 해서 우리 민주주의의 초석을 쌓는 일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내용이 조금 전에 서가에 꽂힌 정상 어록에 우리 김 실장이 속기록을 해놨거든요. 그걸 이제 제가 자서전 쓰려고 읽었어요. 거기에 그런 대목이 다 나오더라고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래서 결국 다 해놓고 6개월 전에 나오고 노 대통령이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했잖아요.

진행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을 이양하고 나오셨는데 퇴임 후에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을 하셨나요?

"상상할수 없는 변수로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할까봐 걱정했다"

"친구라도 평화로운 대접 기대할수 없다.평화적 정권교체는 처음하는 것이라 불확실한 상황"

이 여사: 예상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7년 반 재임 기간 동안에는 조금 걱정했어요. 왜냐하면 전임 대통령들이 평화적 정부 이양을 못한 건 그분들이 제 남편보다 못나서 그런것도 아니고 덜 훌륭해서 그런것도 아니지만 그걸 못하신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는 어떤 상상할 수 없는 변수가 나와서 이 양반이 더 있으면 어떡하나, 못 나가면 어떡하나 항상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어쨌든 후임자가 정해지고 그 후임자가 또 가장 40년 동안이나 친구였고, 정치적으로 동지였고 이런 사람이 나하고 부인도 친하고, 얼마나 마음이 기뻐요. 그래서 제가 너무 신나가지고 우리 집도 이제 준비하고 이삿짐도 싸고 옮기고 신났죠. 그랬더니 이제 내가 당신에게 해줄 말이 있다. 당신이 지금 신나서 그런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꼭 이야기해야되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가면 처음 있는 일이라서, 아주 불확실한 상황이다. 아무리 내 친구가 대통령이 되어도, 꼭 우리가 아주 평화로운, 대접받는 생활이 보장된다고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처음 가는 길이라 전직 대통령이 나가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이건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진행자: 전례가 없으니까.

"권력의 갑옷을 벗고 황야로...단단히 각오하시오"

이 여사: 전례가 없는 실험적 상황이다. 확실한 건 이제부터 우리 둘은 권력의 갑옷을 벗고 황야로 나가야 되는 거다. 단단히 각오하시오. 이렇게 이야길 하더라고요. 이걸 내가 회고록에 쓸 때는 정제해서 썼지만 정확한 내용은 이겁니다.

진행자: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살아야지 이런.

이 여사: 저는 들떠 있었죠, 신나서. 신났죠.

진행자: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어느정도 예상하신 건지.

이 여사: 예상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모르겠지만, 이 양반은 항상 만약의 상태를 언제나 대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당할 건 다 당하고 그러는데 뭐.

진행자: 올림픽에 초청도 못받으셨잖아요. 그걸 옆에서 보시면서는.

"올림픽 초청 못받고는 쇼크를 받은 듯"

이 여사: 아이고. 근데 그렇게 대범한 사람도 그때도 쇼크를 받았던지, 일기장에서 정확하게 써 놓으셨더라고. 그것도 자기 회고록에 써 놓으셨더라고. 

(전두화 회고록 내용)"5공 청산 정국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국회 출석 증언이 불가피하다는 야당 측의 끈질긴 요구로 정국이 시끄러운 가운데 88서울올림픽 개최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개회식은 9월 17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1980년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1988년의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일본의 나고야와 치열하게 경합했던 유치운동을 진두지휘했던 나, 유치에 성공한 후 정부의 모든 정책을 올림픽 준비 사업과 연결시켰다고 할 만큼 그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나는 그 개회식만큼은 꼭 직접 보고 싶었다.

나의 올림픽 유치 결심이 옳았던 것인지, 그 동안의 준비 작업이 제대로 된 것인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직접 내 눈으로 보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희망은 누가 봐도 무리 없는 바람이었다.

올림픽 유치와 준비 과정에 공헌했다는 사실을 접어둔다 하더라도, 나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연히 개회식에 초청을 받을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6공 청와대에서는 나의 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었다. 개회식을 한 달 남짓 앞둔 8월 20일 경, 신문에 여권 소식통을 인용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올림픽 개회식에 불참키로 한 것으로 안다'는 기사를 보도했던 것이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알아보지도 않고 나의 의사를 제멋대로 단정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모토 아래 평화와 우정의 한마당 축제로 열리는 개회식인데, 혹시라도 나의 참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란이라도 피우면 축제 분위기를 망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울 것이라는 그 어떤 기미조차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러한 언론플레이는 아마도 나의 참석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를 유도하는 여론 조작임이 분명했다.

그런 보도가 나오자 김대중 씨는 평민당 대변인을 통해 나의 올림픽 개회식 참석 문제애 대해 '우리가 그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해주는 것이 도리인데...'라고 논평했다.

그래서일까. 개회식을 일주일 앞둔 9월 10일 박세직 올림픽조직위원장이 초청장을 가지고 왔다. 정중한 말로 개회식에 참석해달라고 공식 초청한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가 당면한 국가적 지상 과제이고 국민적 여망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내가 대회 현장을 직접 참관하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로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나는 개회식 참석 요청을 정중히 사양한다.

박세직 위원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하지 못한 것일 터였다.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박 위원장을 빨리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쁜 일이 많을 텐데 어서 가라'고 했다.

응접실을 나온 박 위원장은 비서실에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 갔다고 했다. 그날 오후 노태우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다.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고 했다.

9월 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되었다. 나는 집에서 TV를 통해 개회식 광경을 지켜봤다. 단상 로열박스에는 노태우 대통령은 물론 서울올림픽을 히틀러의 베를린올림픽에 빗대며 빈정거렸던 김영삼 씨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당연히 개회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고 수행하려고 했던 몇몇 나의 측근들은 속이 상해 TV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진행자: 일설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하실 때 연세가 58세셨잖아요. 아직 우리 나이로 치면 환갑도 안될 상황이니까

이 여사: 백담사 갔다와서 백양사인가 어디 절에서 환갑이라고 신도들이 멋있게 해줬어요. 합창도 해주고, 아주 멋있었어요.

진행자: 아직도 건강하시기도 하고,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서 통치해본 경험도 있으시고 그러니까 노태우 정부나 이런 쪽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혹시라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을까 노파심에서 이런 백담사 행이라든지 이런게 이루어진건 아닐까.

"단임제로 끝나면 다 털어버리고 자연인으로 돌아와야 하는데...다 버리지 못하고 국가원로로서 해보려고 하다가"

이 여사: 그랬을 것도 같아요. 왜냐하면 바둑 다 뜨고 나서 복기를 해보면 다 알수 있는 일도 바둑 둘 땐 모르잖아요. 사람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내가 평생 좋아하고 사랑했던 남편의 성격대로였다면 내가 대통령 단임제로 끝나고 나오면 다 털어버리고 자연인으로 돌아와서 살겠다, 이렇게 장한 결심을 했어야 되는데 이 양반 성격이라면 그랬어야 하는데, 대통령 벌써 7년 반 했고, 나올 때 겨우 58세니까, 다 버리지 못하고, 국가원로로서 해보려고 하다가.

진행자: 그래서 일해재단 이런 게..

이 여사: 그런 것들이 다 버리고 나오기가,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아닌가. 평소에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도 좋아했으면서, 그렇게 살려고 생각할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진행자: 권력이라는 게 그런것 같아요.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혼자가 아니잖습니까. 전 대통령을 보필해서 5공화국을 만들고 전 대통령의 인맥이라고 하는 분들이니, 퇴임 후에 자기들 삶을 위해서라도 전 대통령을 계속 그쪽으로 이렇게 유도했던건 아닌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 인맥이 겹치는 것도 불행"

이 여사: 가장 큰 불행은 이 양반의, 내 인맥이 전부 다 노 대통령의 인맥과 겹쳐서, 그런 점도. 이 양반은 떠나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밥을 줬던 사람이고, 노 대통령은 새로 줄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의 거취가 상당히 어렵지 않았을까.

"권력이라는게 붙고 싶은 사람이 우리를 욕함으로써 충성심을 보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어쨌든 권력이라는 게 주변에서, 그쪽에 붙고 싶은 사람은 우리를 욕함으로써 충성심을 보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쪽에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아닌 척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경험을 해 보니까 그런 점이 있는 것 같고, 또 제일 문제는 2인자 컴플렉스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진급도 한 발 살짝 늦었고. 그때는 몰랐어요. 지나고 보니까 그랬고 계속 그동안 이 양반이 했던 자리를 계속 물려 주니까 전임자-후임자들이 대체로 보면 안좋잖아요.

진행자: 그래서 2인자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여사: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진행자: 견디기 어려운 과정을 잘 또.

이 여사: 이 양반 성격이 워낙 밝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다 잊어버려도, 잊지 못할 일도 있을 수 있었겠죠 옛날에. 나는 다 잘했고 너는 다 못했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진행자: 오늘은 주로 퇴임 후에 백담사 시절 이야기, 전두환 대통령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과정에 대해 중점 질문을 드렸고. 다음번엔 정치적 격변기가 왔을 때 전 대통령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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