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그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해외로 망명을 해라,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백담사로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백담사로 정해진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결심을 하신건가요.

"쓰러져 아프다고 하고 외국 나가라" 노태우측에서 요구

이 여사: 네.본인이 결정한 거죠.해외로 망명기사도 나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우리 안현태 경호실장님이 박세직씨하고 만나서, 안 실장님한테, 쓰러져 아프다고 한 후 외국으로 나가라고 그랬다는 그런 이야기를 직접 안 실장이 듣고 와서 보고하는 거니까, 그건 뭐 거짓말이 없겠죠. 그렇지만 지금도 그 말을 그렇게 믿고 싶진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어쨌든 근데 그날 안 총장님이 나갔다 오셔서 보고를 들으시고는 이제 노 대통령 측에서 보호해주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오늘날까지 밀려왔구나 믿었었는데 그게 아니구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서울을 떠나서 내가 걸그적거리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본인이, 노대통령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이렇게 감을,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날 우리 떠나자, 그럼 이왕이면 아주 멀고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가자, 이래가지고 떠나기로 한 곳이 11월 23일날 떠났는데, 바로 전날 결심을 하셨어요.

진행자: 그럼 백담사하고는 아무런 인연도 없으셨지요.

이 여사: 백담사라고는 간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죠.

진행자: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여사: 몰랐죠. 절 형편이나 사정이나 아무것도 몰랐죠.

진행자: 그럼 백담사를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이 여사: 백담사는 조계종의 총무원장님한테 사람을 보냈죠. 그래서 사람 가기 힘든 저 첩첩산골에 있는 절에 가고 싶다, 그랬더니 거기 가라고 추천을.

진행자: 추천해주신 건가요. 가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이 여사: 백담사는요. 우리 그날 아침에 이제 몇시에 떠났나. 떠나고 나서 요쪽에 그때는 창문이 있었어요. 이렇게 서서 이제 사과성명을 하고, 국내를 떠나라는 게 아니면 내가 무슨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담화문을 여기서 발표하시고 떠나서 자동차로 갔는데, 38선이라는 표지를 지나서도 한참을 북쪽으로 가요. 그리고 절 입구에서부터도 또 옆에는 낭떠러지고 요런 좁은 외길로 한참 가요. 한참 가는데 길이 그때 비에 떠내려가고 이래가지고 우리가 차에서 내려서 밀고 간 구간도 있었어요.

진행자: 여사님께서 내리셔서.

이 여사: 우리도 다 내렸죠. 사람이 타면 차가 못 움직여서 내려서 밀어가지고 지나간 구간도 있었어요, 내 기억엔. 그래가지고 또 가니깐 개울이 넓어요. 개울 건너편에 11월이니까 물이 별로 없잖아요. 그 앞에 물이 있는데 거기에 이제 통나무 엮어서 대나무다리가 있고 그 뒤로 조그만 절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진행자: 그때 전깃불도 안들어오고, 어떠셨나요. 도착하시니까.

"백담사 첫날,너무 추워서 군불을 땠는데 구들이 내려앉았는지 연기가 자욱해서 밖으로 나오니 기자들이 달려들어..."

"촛불하나 켜서 둘이 마주않아 위로를 하든지,원망을 하든지 해야되는데,말이 없더라고요"

이 여사: 낮이니까 전기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체크는 안했고, 일단은 이제 11월 23일인가 그때 영하 15도에요. 엄청 추워요. 추우니까 일단 방에 구들에, 방이 이렇게 길면 이쪽에 창호지문 하나 있고, 뒤에 창호지문 하나 있고. 옆에 툇마루 있고 뒤에 툇마루 있고 절이 그렇게 생겼어요. 툇마루 밑에 구멍이 있어서 그걸로 군불을 때는데, 군불을 때니까 백담사라는 데는 유명한 건, 설악산 올라갈 때 거기 들러서 주먹밥 하나 얻어가거나 중간에 힘든 사람들 하루씩 쉬고. 여름에나 쉬지 겨울에는 쉬는 사람이 없나 봐요. 그러니까 이제 추워서. 스님들도 겨울에는 도시로 좀 나갔다 오시고 그러시는거 같더라고요.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일단 너무 추우니까 그 뒤안에 군불을 먼저 땠어요. 그랬더니 구들이 벌써 내려앉았는지 연기가 그냥 방안에 자욱해서 못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밖으로 나오니까 기자들이 달려들어가지고, 조금 있다가 들어왔어요. 들어오니까 연기는 좀 빠졌는데, 너무 춥잖아요. 그래서 이제 담요에다가 옆에 끈을 달아서 문을 봉하고. 그러니까 껌껌해지잖아요. 그래 보니까 이제 전기도 원래는 88올림픽 때문에 절에 전기 놔주고 다리 놔주고 예산 내려가 있었어요. 그런데 가 보니까 말단까지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촛불을 하나 켜서 둘이 마주앉아가지고 위로를 하든지 원망을 하든지 해야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말을 해가지고 거기까지 나와서 앉아서 계신 분 심정이 오죽할 거며, 거기다 대고 뭐 더 보태겠어요. 빼겠어요.

진행자: 가실 때 말씀도 없으셨고요.

이 여사: 갈 때 뭐, 차 안에 그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안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거기까지 갈 때까지 몇날며칠 속이 어땠겠어요. 그러니까 멀미가 심해가지고 밥도 못먹겠고 그렇게 갔거든요. 저녁을 지금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날 가서 저녁을 뭘 먹었는지 먹기나 했는지 아무 기억이 없어요. 그 부분은 비어 있어요. 그러고는 일단 어쨌든 촛불 켜놓고 앉아 있었던 기억 나고, 일찌감치 요 펴고 춥기도 하니까 누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절간 조용하다고 하잖아요. 거짓말이에요. 절에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 풍경 소리 잠 못자요. 시끄러워서.

그런데다가 우리 막내가 이제 위에 형들하고 나이 터울이 많아요. 막내가 이제 청와대 있었을 때 국민학교 3학년이었고 나왔을 때는 고2였어요.

진행자: 그러면 입시준비한다고 바쁠텐데

이 여사: 네. 그리고 걔는 특수하잖아요. 왜냐하면 형들은 국민학교 중학교를 일반인 생활을 했잖아요. 밖에서 자기들끼리 버스타고 학교 가고, 또 친구들하고 보통 생활을 했기 때문에, 걔네들은 사회에 돌아와도 보통 생활을 그냥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영국에 가서도 이야기 들어보면 자녀들 걱정을 많이 하는거에요. 근데 영국의 왕자들은 왕자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왕자로 살 거잖아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일반인으로 살다가 청와대 가서 특수하게 살다가 일반으로 금방 나오잖아요. 적응할 때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요.

진행자: 그런데 그걸 못해주신 것 아닙니까.

이 여사: 근데 얘는 국민학교 3학년 때 들어가서 나왔는데 내버려두고 백담사에 갔으니까

진행자: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안되고.

이 여사: 근데 어떡해, 거기서 어떡해. 대학교 들어가야 되는데. 근데 나는 무슨 법적으로 나까지 거기에 갖다놨는지 모르겠어요. 들어가고 나니까 밖에 지켜가지고 2년 1개월 8일동안 못나왔잖아요 바깥으로.

진행자: 그동안에 그러면

이 여사: 무슨 법적으로. 그 다음에 95년도에 5·18 특별법으로 형무소 가시고, 나는 밖에서 애들 돌보고 있고 그랬는데. 그게 최고의 형벌, 형무소가 그런건데, 백담사에 보내놓고 왜 나까지 무슨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어. 그건 한 때 혼자 보내기 싫어서 따라간 거지만.

내가 혼자밖에 없어서, 마침 사위가 병역 의무 때문에 나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딸이 사돈 집에 있었어요. 그래서 누나 집에 가 있어라 그러고 갔죠.

진행자: 거의 2년 넘게 계셨잖아요.

이 여사: 노태우 대통령이 표현을 이렇게 했어요. "제사 지낼 사람 하나 없이 다 잡아 넣었는데 나보고 뭘 더 하란 말이냐" 신문에도 났을 걸요. 내 기억엔. 그렇게 이조 500년 사화가 대단했다 그래도 글쎄, 글쎄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2년 1개월 8일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어요. 아니 7년 반 동안 나라의 통치자, 대통령직을 맡았던 사람이 그 첩첩산골 산사에 위리안치된, 위리안치죠 그게.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이 양반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무슨 말로 보탬이 될까 하고, 덜 불편하게 해드려야하잖아요. 그러니까 애쓰니깐 이러셔요. 아휴 나는 저 당신한테 미국 유학 간다고 하고 갔어도 저 산골에 들어가서 유격훈련 받는다고 뱀 잡아먹고 그러다가 6개월만에 돈 모아가지고 선물사서 왔지. 난 여기서 놀러 어디 가잖아요. 그러면 저 산골에 어디 우리 훈련, 매 훈련한 이야기만 해요. 난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건 식은죽 먹기다. 그러면서 나를 도로 위로해주려고 그런거에요.

진행자: 서로를 위로를 하신거네요.

"월남가서 배운 담배, 백담사에서 내가 기침하니까 끊어"

이 여사: 네. 그러니까 담배를 평생 안피우다가 이제 월남가서 전투 벌어지고 아래 부하가 생명을, 실전이잖아요. 거기서 담배를 배워가지고 청와대 있을 때 담배를 태웠어요. 청와대에서 보고를 1시간동안 틀어놓고 보고하고 졸립잖아요. 그러면 이제 담배를 피우시고 그랬나봐. 백담사에서 담배 끊었잖아. 왜냐하면 그 조그마한 방에 담배는 또 자다 피워야 맛인가봐. 주무시다 일어나서 피우는거야. 그러면 내가 담배좀 피우지 말아요 말을 안해도, 돌아누워 있으면 기침이 많이 나와요. 담배연기가 고 좁은 방에 추우니까 문도 못 열잖아요.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가다가 나한테, 기침을 막 하니까, 이렇게 막 보다가 끊었더라고.

진행자: 새벽에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시는 걸 보니까 참 심정을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여사: 그렇죠. 왜냐하면 뭐 자기가 이꼴이 됐고, 하여튼 뭐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겠죠. 그런데 이제 백일기도를 이름은 국태민안으로 했어요. 끝나고 나서 일단 갔으니까, 밤새워서 불경을, 부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나 나무도 패고, 눈도 치우고, 어디가든 적응을 잘 하세요. 유격훈련을 배워서 그런지 몰라도. (웃음)

진행자: 화장실 사진이 있는데, 이건 정말 아내를 위한 배려라고 해 놓으셨어요.

전 대통령,아내 위해 간이 화장실 직접 만들어

이 여사: 맞아요. 왜냐하면 절에서는 일주문이라고 절 들어가면 입구에 있는 문, 그 옆에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아주 밑에서부터 높아요. 거기밖에 없어요 화장실이. 그럼 거기를 가야되면 자기 볼일 보려고 가야되지, 내가 볼일 보러 갈때도 따라 가줘야 되지, 살쾡이 나오고 무섭잖아요. 그래서 뒤에 텃밭에다가 그 앞에 도로 공사할 때 인부들 옷 갈아입는 게 하나 있었어요. 그걸 거기다 옮겨놓고, 드럼통 반 자른걸 묻어서, 간이 화장실을.직접 만들었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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