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 '연패', 호남에게 거대한 충격일 수밖에
호남의 민주당 지지는 아예 반성의 소재조차 될 수가 없는가?
호남은 민주당의 정치적 가두리 양식장
호남 내부의 기득권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 반드시 있어야
반근대 반대한민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호남
호남이 혐오와 소외 극복하려면 호남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요즘 광주와 전남 등에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평가 작업이 한창이다. 평가 작업의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왜 패배했는가, 어떻게 해야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고 다음번 선거에 승리해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20년 집권 아니 50년 집권론까지 나올 만큼 자신만만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10년 집권 정도는 당연하게 여겼던 터라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패는 호남에게 거대한 충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아한 게 있다. 저 질문 즉 왜 패배했는가, 어떻게 해야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장에서 빠진 게 있기 때문이다. 즉, 주어가 없는 것이다. 누가 패배했고, 누가 다음번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가의 주어가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 질문의 주어는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이다. 다만, 광주와 전남 전북 등 호남에서는 저런 질문의 주어를 따질 필요가 없다. 호남에서는 당연하게 민주당이 우리(호남)이고, 그래서 대선과 지방선거의 평가에서도 굳이 주어를 따질 필요도 없이 어떻게 해야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다시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지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게 과연 옳은가, 이게 과연 정상인가, 이대로 가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다. 호남은 당연히 민주당이어야 하는가? 지난 대선 패배와 이어진 지방선거 패배를 반성할 때 호남의 민주당 지지는 아예 반성의 소재조차 될 수가 없는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호남과 민주당의 이런 관계를 다시 조명할 수 있는 증언이 나왔다.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가 전한 얘기다. 이대준 씨 피살 일주일 만에 민주당 황희·김철민 의원 등이 찾아와 “호남이니 같은 편 아니냐” “월북을 인정하면 기금 조성해서 보상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호남이니 같은 편 아니냐.’ 이 말에는 무시무시한 함의가 담겨 있다.

황희, 김철민 두 의원은 모두 고향이 호남이다. 황희 의원은 전남 목포, 김철민 의원은 전북 진안이다. 호남 출신인 두 의원이 자발적으로 이래진 씨를 달래려고 나섰는데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의 고향이 일치했던 걸까? 대한민국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믿을 사람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또는 문재인 청와대가 이대준 씨와 이래진 씨의 고향이 목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고향이 목포인 황희 의원을 달래기 사절로 골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향이 전북 진안인 김철민 의원은 거기에 따라붙는 형태였을 것이고.

상황이 달랐다고 가정을 해보자. 가령 이대준 이래진 씨 형제의 고향이 전남 목포가 아니고 경남 진주나 경북 안동 또는 충청도나 강원도 혹은 수도권 어디였다고 해도 민주당 지도부가 이래진 씨를 달래기 위해 그와 고향이 같은 정치인을 콕 찝어서 달래기 사절로 파견했을까? 그랬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어느 나라고 대부분의 정당은 고유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다. 미국만 해도 동·서부 해안 지역은 진보 벨트로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중·남부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주를 적색주(red states),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주를 청색주(blue states)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지역별 정치색도 외국의 이런 관계에 대입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정치 현상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떠났다가 40여년만에 다시 돌아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으로 2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필자가 본 광주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범하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정상이 아니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호남을 정치적 가두리 양식장으로 가두어놓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그 안의 물고기(?)들을 낚아서 요리할 수 있는 구조이다. 5.18의 핏값을 상징자산으로 활용한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분이 거기에 동원된다. 가스라이팅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고 그 구조가 점점 강고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무마하려고 호남 출신 정치인들을 동원한 사례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의 일단이 드러난 셈이다.

광주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반성의 지점부터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최소한 그 반성에 금기와 성역은 없어야 한다. 지난 1980년 5월 이후 광주와 호남을 정치적 볼모로 삼아왔던 민주당과 좌파 그리고 민주당과 호남의 결착에서 매개체 역할을 했던 호남 내부의 기득권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 빠져서는 제대로 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광주에는 금기(taboo)가 많다. 5.18을 비판하는 것은 절대 금기고, 민주당 아닌 다른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종북세력이나 북한, 중국을 비판하는 것도 금기다.

얼마 전 우파 시민들이 광주의 중공 음악가 정율성 기념행사 등을 비판하자 지역언론이 여기에 대해 예민하게 반박한 것이 그런 사례이다. 이승만 박정희를 옹호하는 것도, 기업 활동을 옹호하는 것도 금기이다. 복합 쇼핑몰 부재도 기업 활동에 대한 금기의식의 결과이다. 이런 금기의 총체적인 귀결이 반대한민국 정서이다.

호남 문제를 대개 지역 문제라고 판단한다. 지역감정, 지역갈등 등이 그 일반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호남의 문제는 지역이라는 외피 아래 숨어있는 전근대성과 좌파 이념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즉, 호남은 산업화 등 근대화 과정에서의 소외를 연원으로 하는, 반근대 반대한민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대준 씨 유족을 달래려고 호남 출신 국회의원을 파견한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호남은 광주 등 대도시에서도 형님 동생 따지는 지연 혈연 학연의 전근대적 질서가 강하다. 광주의 경우 시민들 사이의 계모임이 무척 활발하다. 광주시민들이 이런저런 정치적 발언을 할 때 강한 자기검열이 작동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사실상 소규모 농촌부락을 연상시키는 공동체 규율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경험했다.

2020년 총선이 끝난 뒤 서울에서 필자와 함께 활동하던 지인들이 광주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선거에서 고생한 것을 위로할 겸 이런저런 논의를 하자는 취지였다.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기는 어려웠다. 평범한 광주시민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허심탄회하게 술과 음식을 나누고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필자는 그런 공간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해봤다. 주로 공공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시설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었다. 우리 모임은 저녁 시간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저녁 9시까지 운영한다는 곳을 발견하고 전화 연락을 해봤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곳은 그 시설 담당자가 아니라 상급 지자체 즉 구청이었다. 구청 담당자는 시설을 빌려준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전화는 서너번씩 담당자를 찾아 이리저리 돌려졌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필자는 그 시설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연락처가 아니라 진짜 전화번호였다.

그 번호로 전화를 해봤더니 어떤 여성이 전화를 받아 “코로나 때문에 빌려드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했다. 고생한 것 치고는 싱거운 결말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전화를 끊은 뒤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여분이 지난 뒤 필자의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라도 사투리의 늙은 남성이었다.

“아까 우리 시설 이용할라고 전화했소?”

“네, 그렇습니다.”

“뭐할라고 우리 시설 이용할라고 그라요?”

안 빌려주면 그만이지 왜 이런 것까지 묻나 싶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했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오는데 좀 편하게 대화도 하고 회의를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무슨 회의를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라고 그런다요?”

“공부하는 사람들인데 공부 얘기도 하고 기타 이런저런 얘기도 하는 거죠.”

“그라요? 근디 우리도 시설은 안 빌려주요.”

시설을 빌려줄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런 전화를 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고향 광주의 사투리가 그렇게 소름끼치게 들린 것도 처음이었다. 이 전화에서 받은 불쾌한 느낌은 두고두고 남았다. 광주란 도시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타이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의 속살을 갖고 있다는 의문을 품게 된 계기였다.

광주는 어마어마한 자체 감시망 그것도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에 근거한 감시망을 운영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 배경이 바로 근대적 대도시라는 외형 뒤에 감추어진,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농촌공동체의 숨막히는 지연 혈연 학연의 질서 아닐까?

좌파들은 첨단 기계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생활을 소외와 인간성 상실의 현장처럼 묘사하고, 호남의 농촌공동체적 특성을 끈끈한 이웃의 정 따위로 묘사하지만, 내가 광주에서 실감한 것은 소름끼치는 감시의 눈초리였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단순히 전근대적 유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농촌공동체의 유산에 좌파 특유의 전체주의적 질서가 결합한 결과라고 본다.

광주와 호남도 민주당과 좌파의 정치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40% 정도의 불만 세력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40%가 선거에서 직접적인 표심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파 정당에는 표를 줄 수 없다’는 금기 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금기는 사실 반대한민국 의식에 다름 아니다.

광주와 호남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민주당과 좌파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그 대안으로 우파 정당만은 지지할 수 없다는 호남의 고민이 시도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정치적 실험이었다. 하지만 그 정치적 실험은 비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그리고 호남은 다시 민주당과 좌파에게 돌아갔고 문재인 정권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정권의 탄생은 표면적으로 호남 정치의 성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호남 정치의 비참한 실패이고 일종의 정치적 항복 선언이었다. 그 열매는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의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국정 파탄과 거기에 이은 대한민국의 위기이다. 호남은 여기에 대해 심각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호남의 소외, 호남의 한, 호남의 분노, 호남의 희생, 호남의 민주화 이런 상징자산으로 호남의 모든 행위와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시기는 진작에 끝났다. 호남의 정치적 선택은 앞으로 더욱 냉엄한 역사적 평가와 비판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호남은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낡은 전근대적 농촌공동체의 습속에서 벗어나 근대의 규칙과 가치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과 계약, 기업과 시장, 법치와 질서, 이승만과 박정희,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근대화를 위한 선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필자는 호남 혐오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남들이 활동을 그만둘 나이에 새롭게 현실 참여와 발언에 나섰다. 현재의 의견과 생각은 그런 고민의 연장선이다. 호남이 혐오와 소외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호남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호남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에서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이것이라고 믿는다. 호남은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어떤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호남은 최종적인 역사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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