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까지 적폐청산"외치며 공영방송을 이념투쟁의 장으로 변질시켜

문화대혁명이란 말은 아주 오래전 발생한 집단광기의 한 형태처럼 들립니다. 중국에서 1966년 시작돼 10년간 이어졌으니 그리 먼 과거는 아니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 법치주의의 개념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현대인에게는 생소한 느낌입니다. 대한민국, 그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에서 홍위병의 난동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17년까지는 적어도 그랬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KBS 민노총 계열 노조의 움직임이 바빠집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장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장을 앉히기 위해 그들은 그동안 감춰왔던 면모를 드러냅니다. 사장과 이사의 집과 직장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사장의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업무를 방해합니다. 이사들과 경영진을 인격모독에 가까운 형태로 조롱하고 SNS와 노보 등을 통해 배포합니다.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누군가 뒷배를 봐준다는 믿음이 있는 것인지, 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당시 발생했던 홍위병 난동의 모습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국가기간방송이자 대표 공영방송인 KBS. 사람들이 최소한의 지성과 양심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KBS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겠지만, 객관적 기록은 그 같은 믿음을 산산조각 냅니다.

오늘은 KBS 보도본부 소속 한 촬영기자의 행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2017년 6월쯤부터 KBS 사내 게시판에서 선동적인 글을 올리던 A 기자. 8월 들어 한 편의 글을 게시판에 올립니다. 온갖 주관적인 편견을 드러내면서 경영진과 간부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합니다. 운동권 대자보나 홍위병 집회에서 들을만한 주장입니다. 객관적 근거는 하나도 없는 인신공격에 불과한 이 글에 아주 깊은 감명을 받은 걸로 보이는 단 한 사람이 KBS의 현 보도본부장입니다.

2017년 9월 3일 민노총 노조의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해당 노조의 관련 부서 중앙위원인 A 기자가 파업 선전의 시동을 겁니다. '적폐 청산'을 주장하고, 간부를 지목하면서 물러나라고 협박합니다.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듯 일사불란하게 "적폐 청산"을 댓글로 달면서 위압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한 노조원은 답글에서 간부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권력에 빌붙어 방을 왜곡되게 만들고 그 알량한 권력에 기대어 살아온 소수의 적폐는 반드시 혁파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A 기자는 9일 후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기자들을 두고 "가장 늦게 나온 자가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이자 "적폐의 주범"이라며 압박합니다.

다시 13일 후, A 기자는 이번에는 당시 부장 두 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권력남용과 부당노동행위로 부서를 파괴했다고 공격합니다. 이후 민노총 계열 노조 출신으로 회사의 경영진이 꽉 채워졌지만, 당시 A 기자가 거명한 부장들이 권력남용이나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기록은 없습니다. 주관적인 편견에 따른 공격이지만, 이들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 게시물에도 한 인물이 큰 공감을 표시하는데, 역시 KBS의 현 보도본부장입니다.

2017년 11월 28일 A 기자는 아예 본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당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주간, 부장, 팀장과 "무노조원으로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지목하면서 "한두 사람의 대표 부역자, 대표 광대를 정리하는 데 있지 않고 희극의 시대를 뿌리까지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온갖 험악한 죄명을 언급하면서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몰아갑니다. 여기에도 한 사람이 크게 공감하는 댓글을 다는데, 그는 이후 사장이 바뀐 다음 기술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합니다.

A 기자는 KBS의 민노총 계열 노조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압박해 강규형 이사를 해임하도록 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당시 노보가 그가 외친 구호를 전하는데, 인격말살에 가깝습니다. (강규형 이사의 해임은 이후 대법원에서 부당 해임으로 결론이 납니다.)

민노총 노조의 압력에 호응한 방송통신위원회가 강규형 이사를 해임하면서 KBS 이사회의 여-야 구도는 역전되고 당시 여권 이사들은 초스피드로 고대영 사장 해임을 밀어붙입니다. 이즈음 A 기자는 다시 게시물을 올리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간부들을 '적폐'로 몰아세웁니다. 간부들을 악마화하면서 “적폐의 최후”를 공언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오직 무관용, 비타협적 징계와 처벌, 철저한 청산뿐"이라고 선언합니다.

 

고대영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이후 A 기자는 점령군처럼 행동합니다. 당시 민노총 노조의 무리한 조직장악 시도에 대해 한 간부가 문제를 제기하자 곧바로 호통을 치며 제압합니다.

대한민국 국가기간방송 KBS의 사내 게시판이 누군가를 처단하는 인민재판식 구호들로 넘쳐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A 기자의 언행을 보면 당시 KBS가 사실상 법치주의가 실종되고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인권이나 무죄추정의 원칙, 생각의 다양성 등의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선동가들이 판을 치는 사회였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들어선 양승동 사장 체제가 헤아릴 수 없는 불공정 편파 방송으로 찌든 것은 당시 A 기자가 대표하는 선동가들의 발언과 행동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민노총 노조가 파업을 한 사례는 여럿 있지만, 2017년처럼 광기가 폭발한 적은 없습니다. 최순실 스캔들, 촛불집회, 탄핵 등 몇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정치적 이벤트가 사람들을 흥분하게 했을 수 있습니다. 특별다수제를 주장하다가 정권이 바뀐 뒤 입장을 바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방송장악플랜>을 작성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보도본부장과 기술본부장을 할 인물들이 노조원들을 부추긴 것도 그들이 멋대로 행동하도록 하는 자극이 됐을지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른바 ‘대한민국의 대표 공영방송’의 품격이 이 정도로 추락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비극입니다.

A 기자의 사례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2017-18년 공영방송 KBS에서 벌어진 시대착오적 광란의 기록을 지속적으로 공개할 것입니다. KBS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 홍위병의 난동은 정확히 기록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반면교사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이 기록이 공영방송에서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기고-KBS 직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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