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언론이 언제나 진실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사진=연합뉴스TV)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언론이 언제나 진실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사진=연합뉴스TV)

국제정치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크게 ‘하드 파워(hard power)’와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나뉘어진다. 하드 파워란 전통적으로 국력을 상징해왔던 군사력이나 경제력처럼 가시적인 힘을 의미하고, 소프트 파워는 문화·이념·외교정책 같은 설득과 동의를 통해 얻어지는 힘을 말한다. 소프트 파워 개념은 2004년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가 처음 만든 용어다. 그는 세계를 지배해왔던 미국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제사회 리더로 군림할 수 있는 힘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같은 소프트 파워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대중문화와 민주 정치, 인권 정책 등이 20세기 후반 소련과 공산 진영을 붕괴시키고, 독재·반민주 국가들에 대한 압박이나 폭력적 개입을 정당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미국이 완벽한 도덕 국가인가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소프트 파워가 상대적 개념이고 객관적 사실보다 인지된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프트 파워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정치에 이 개념들을 적용해보면 이렇다. 한국의 보수 진영은 전형적인 하드 파워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 집권해왔다.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된 경제적 고도성장과 자주국방 정책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집권하기 전까지 보수 정당을 뒷받침해 온 막강한 자원이었다. 지금도 윤석렬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현 정권을 지탱하는 지지기반이 기도 하다.

1970~80년대 강한 민주화 열망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가 되지 않은 원인도 민주화 세력이 보수 정권이 가지고 있던 하드 파워를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들을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만든 것은 바로 소프트 파워였다. 민주, 평등, 인권, 통일 같은 도덕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들을 선점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한국 사회에서 소프트 파워 세력이 하드 파워를 이긴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후 좌파 진영은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통일과 관련된 모든 아젠다들을 전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을 수구골통, 적폐 같은 반민주적·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하였다. 심지어 자신들의 부도덕성과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하기라도 하면 ‘감히 너희들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정도다.

그러면 이른바 ‘민주당 3기 정권’이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들 역시 인권, 통일, 소통 같은 소프트 파워를 내세워 대통령 탄핵과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실제는 이상적 용어들과 아주 거리가 먼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었다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또한 조국, 윤미향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신들이 내세운 소프트 파워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마지막까지 40%를 유지할 정도로 굳건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심지어 악재가 터질 때마다 지지율이 반등하는 기이한 현상이 만성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문재인 정권이 소프트 파워가 아니라 ‘샤프 파워(sharp power)’에 기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프 파워란 비밀리에 상대방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힘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음성자금이나 스파이 활동 같은 것들도 있지만, 주된 방법은 인터넷 등을 활용하는 사이버전과 사이버심리전이다. 이를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서방국가와 소프트 파워 경쟁에서 밀린 중국과 러시아다.

샤프 파워는 교란과 조작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는 인터넷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의미기반 공격’과 정보를 조작해 현실지각 능력을 왜곡시키는 ‘인지기반 공격’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러시아는 대대적인 샤프 파워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국영방송 ‘러시아 투데이’(지금은 러시아방송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냥 RT로 이름을 바꾸었다)와 단파방송 ‘스푸트니크’에서 침략을 정당화하는 방송을 하고 이를 가짜뉴스로 만들어 서방진영에 확산시키고 있다. 즉, 나치의 선전·선동을 인터넷과 인공지능 같은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접목시킨 형태다.

문재인 정권 역시 전형적인 샤프 파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국민들은 정부의 거짓 발표와 관제 언론보도로만 알 수 있었던 ‘해수부 공무원 월북 조작’ ‘북한 어부 강제 북송’ 사건 등은 지난 정권의 샤프 파워 전략이 얼마나 치밀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론노조를 통해 장악한 이른바 공영방송들과 교통방송 같은 정권 친위 매체들이 생산한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확산시켜 여론을 왜곡·조작해 정권을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 포털과 구글 등을 압박해 국민들의 인지 기반을 통제하려 애를 쓴 사례들도 적지 않다. 아마 이 역시 진실이 밝혀져야만 할 것이다.

샤프 파워는 반민주적이고 권위적인 폐쇄 국가들의 전유물이다.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민주국가 즉,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갖춘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 정권이 만들어 놓았던 샤프 파워 장치들을 시급히 정상화해야만 한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편파적인 허위, 가짜뉴스들을 지속적으로 생산·공급하면서 여론을 왜곡시키는 언론지형을 새롭게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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