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 환경주의 좌파 독일이 직면한 에너지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진실에 직면하는 시간 다가와
종교 방불하는 CO2 집착에서 벗어나 과학에 기초를

정규재 주필
정규재 주필

독일은 고도의 중앙 집중적 세계관을 갖는 비자유적, 그리고 조직사회론적 국가다. 2차 대전 이후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버트런트 러셀은 아예 <자유와 조직>이라는 책을 쓰면서 19세기의 대립 혼융되던 두 정신을 영국·미국과 독일로 상정하여 명징하게 비교했다. 헤겔 이후 독일 정신은 독일의 급속하게 진행된 후진국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렇게 히틀러로 귀착되었다. 오늘날 히틀러는 한낱 금기어에 지나지 않지만 독일에서 히틀러를 제외하면 그 엄숙주의 정신사가 제대로 설명될지도 미지수다. 아니 독일 정신의 정수가 바로 히틀러 아닌가 말이다. 루터의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 해법 즉, 절멸론까지 실천에 옮긴 그 사람.

국가주의적이며 통일성과 내적인 수렴성을 갖는, 그래서 갈수록 집중되는 구심력의 천연성이 사회를 규정하는 그런 독일이다. 독일은 히틀러 시기의 과격한 변종에도 불구하고 그 내적 정신 즉 위로부터 조직된 산업사회라는 강고한 특징을 유지하면서 21세기 들어서도 문명국가의 구조물을 굳건하게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를 관통했던 정치적 대혼돈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진국에서도 강자로서의 권위를 독일은 지금도 EU라는 상부 체제를 통해 잘 유지하고 있다. 

처음 “유럽 합중국”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낸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러나 지금 EU를 지탱하는 구심력은 독일의 리더쉽이다. 유럽연합 초기 회원국은 6개 불과했으나 점차 늘어나 지금은 28개에 달하는 거대한 유사 합중국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EU는 사실상 독일과 나머지 국가들이 상호 떠받히는 연합체다. 독일은 유럽 전체를 내부시장화하면서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남부의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국채를 매입해주면서 EU 체제를 경영한다. 자기순환체제를 갖춘 셈이다. EU라는 자기 완결적 경제체제는 독일이 없으면 지금처럼 단일 체제로서 원활하게 유지된다고 보기 어렵다. 독일인의 삶의 공간(레벤스라움)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나치의 언어와 구별하기 어렵다. 나치는 바로 그 게르만인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다.

EU는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치 ‘제3제국’이 그러기를 꿈꾸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전후 체제로 상상했던 그것처럼 EU라는 단일 통화와 국가 간에 거의 유사한 좌익적 이데올로기를 두바퀴로 하면서 형성 유지된다. 탈원전과 환경이데올로기는 독일이 전체 유럽에 대한 리더쉽을 유지하는 신묘한 이념적 구호다. 68문화혁명 이후 오늘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문화 좌파는 그 뿌리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맑시즘을 소위 ‘비판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오늘날 반자본주의적 좌파 문화이론이 확산되는 기초를 닦았다.

맑시즘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자들은 환경 이데올로기에서 자본주의 종말에 대한 교의를 만들어 냈다. 역사이론에서 문화이론으로, 산업비판으로, 다시 자연이론으로 전환해온 종착역이 바로 환경주의 종말론이다. 환경 이데올로기는 과다 소비, 환경 파괴, 문화 파괴, 생물다양성의 파괴, 독극물에 비견되는 이산화탄소 증가 등으로 구성된 유사종말론이요 그래서 인간에게 지금의 삶의 존재 형식을 포기하기를(회개하기를) 요구하는 유사 기독교 신앙체계다.

독일은 그 주된 확성기였고 이는 신재생에너지와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현대 독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 것이다. 환경이데올로기는 결코 그 최종적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까지라도 적절한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도덕과 종교적 구호의 체계다. 독일이 유독 CO2를 유독 가스화하면서 디젤차에서의 산업적 우위를 유지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기발한 프로파간다라고 하겠지만 탈원전은 신재생 산업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독일의 긴 계획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실제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독일의 유럽 환경위원회라고 불러도 좋다 할 정도로 온통 환경 탈레반을 방불하는 캠페인으로 유럽 정책을 채우고 있다. 그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비로 석탄으로, 가스로, 탈원전의 취소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것이 무엇인지, 이번에도 독일을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은 러시아다. 독일은 북해 해저에 깔려 있는 ‘노르트스트림’이라는 가스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 가스를 수입하고 있고 지금은 ‘노르트스트림2’를 건설하면서 소위 탈원전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신재생 자체도 실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던 터였다. 신재생은 해가 구름에 가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등의 문제로 필연적으로 이를 보충하는 백본이 필요하고 역설적이게도 신재생을 할수록 화석을 백본으로 해야 하는 이중의 위선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서 이런 구조적 허구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이 줄어들면서 독일은 아예 석탄과 나무 땔감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신재생 전력원이라는 망상 속에서 한 달 1백만원의 전기료를 받아든 독일 가정들이 많다. 지금 독일의 신재생은 국내 전력생산의 45%를 차지한다. 이제 더는 유지 불가능한 수준이다.

다시 원전회귀다. 독일은 올해 종료하기로 한 3기 원전의 가동을 연장했고 프랑스는 추가로 25기를 짓기로 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스타일 완전히 구기는 상황이다. 좌익적 환경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 환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택소노미는 원전을 다시 안방으로 들여다 놓았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2030년까지의 ‘탈석탄’을 목표로 움직여왔다.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2022년 말까지 전면 폐쇄하기로 한 것은 메르켈 정권이었다. 그동안 모두 14기의 원전이 폐쇄되었다. 독일이 내건 슬로건이 소위 “에너지 전환”이었다. 

독일의 ‘에너지 구상 2010’은 러시아가 사실상 폐기해준 상황이 되었다. 독일은 이런 구상으로 그동안 유럽을 이끌어왔고 탈원전 이니셔티브는 유럽을 넘어 한국의 문재인 정권에까지 영감과 용기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언제나 독일을 꺾는 것은 러시아인 모양이다. 러시아는 이미 2021년 말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틀어막아 가스값 폭등 사태를 유발했다. 미국이 부랴부랴 유럽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늘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독일 정부는 바로 지난달인 2022년 6월 19일(현지 시각) 그동안 멈춰 서있던 석탄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내용의 긴급 법안을 승인했다. 때 마침 러시아는 이미 가스프롬이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공급량의 60% 줄이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2030년 화력 발전 전면 폐쇄’라는 강력한 탄소 중립을 추진해왔던 독일의 구상은 러시아의 가스 수출이라는 ‘고양이 생선가게’에 맡겨놓은 꼴이었다. 독일은 가스 수입의 3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린드너 재무장관은 EU(유럽연합)로 하여금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려는 계획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위선은 이렇게 폭로되고 있다.

독일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프랑스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국이 가는 길은 크게 달라졌다. 2016년의 브렉시트는 마침 불과 몇 년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망외의 보상을 받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린스키를 힘껏 격려하는 자는 보리스 존슨밖에 없다. 다른 지도자들은 무언가 마뜩 찮은 얼굴들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입은 부어 있다. 영국이 EU 수뇌부를 장악한 환경주의 좌파 때문에 브렉시트를 감행한 것은 아니지만 환경규제야말로 영국을 유럽에서 탈출하도록 만든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자유의 영국이 조직의 독일이 장악하고 있는 EU에서 얼쩡대면서 이중대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국이 망할 것이라는 한국 좌파들의 브렉시트 저주와는 아랑곳없이 그 영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오히려 기세를 한껏 올리는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환경주의 좌파에 젖어 있던 유럽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경제 봉쇄라는 것이 갖는 양날의 칼이라는 사실은 칸트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돌려놓는다고 하겠지만 좌익적 환경 켐페인이 만들어 왔던 반CO2 종교에 대한, 작지만 값비싼 교훈과 자각이라는 면도 생각해 볼 때다.

jeongkyujae@gmail.com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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