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자성]대한민국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주저하지 마라
[기고/이자성]대한민국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주저하지 마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아는 것으로 육사(육군사관학교 줄임말)만 해도 생도대장 육군 소령 오일균, 교수부장 소령 조병건, 중대장 소령 김학림 등 모두가 남로당원이거나 그의 끄나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직위를 이용하여 공산분자를 육사에 입학시키는데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육사 생도의 상당수가 공산주의자였으며 여순반란 사건의 괴수 김지회가 그들의 부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지회뿐 아니라 홍순석, 박호산, 이무연 등 남로당의 정예분자들이 그들 간부 밑에서 자라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군 내부의 숙청은 필연 이상의 필연이었다. ​- 숙명의 하이라루, p107-

​초창기 대한민국은 건국은 했지만 공산주의라는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말기암 환자였다. 그런 나라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할 수 있었던 비결과 처방을 잊었다. 다시 암세포가 준동한다. 오만과 무지의 결과다. 대한민국,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김창룡 특무대장은 관동군 특무부대 일원으로 소만(소련, 만주) 국경 일대에서 소련과 중국의 간첩 색출과 검거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는 타고난 반공주의자였다. 혹자는 말한다. 김창룡은 관동군에서 활약했기에 친일파라고 한다. 외형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했지만 진실로 중요한 것이 있다. 일본제국주의는 철저한 반공국가였다. 당시 일본제국주의는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지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소련은 소비에트 혁명 수출과 만주의 이권을 두고 일본과 대립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소련은 명백한 적이었다. 따라서 일본제국주의가 반공체제였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만주에서 관동군의 표적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과 모택동의 중공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였다. 일부 조선인들이 소련과 중공 편에 가담해 일본에 맞섰다. 그들은 관동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관동군, 만주군 출신이었던 김창룡,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등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 소련의 공산주의자, 그리고 그 하수인들과 싸웠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일본제국주의가 훈련시키고 활용했던 조선인 출신의 군인, 헌병, 경찰, 밀정은 대한민국이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2차 대전 이전부터 한반도와 만주는 소련의 공산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변형인 일본제국주의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곳이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펼쳐놓은 반공전선은 서구민주주의 추종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그리고 일본제국주의 시절 최일선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던 만주군, 관동군, 국내 치안유지를 담당했던 경찰 등 일본제국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떠맡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공산주의자면 어떤가, 그들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던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의 반일은 독립운동과 계급혁명의 양면성을 갖는다. 당시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철저하게 소련에 예속된 상태에서 일방적인 지령을 수행하는 차원이었기에 그들의 활동을 진정한 의미의 독립운동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들에게 독립은 계급혁명을 위해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그들의 뜻대로 되었다면 한반도는 동유럽이나 소련에 흡수된 여타의 나라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조선왕조가 일본에 병합되지 않고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더라면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사람(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조선왕조 타도에 나섰을 것이다. 구체제라는 이유로, 혹은 계급혁명을 위해서 말이다. 당시 공산주의 혁명은 봉건체제 전복, 지배계급 타파, 서구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의 건설이 최종 목적이다. 이동휘, 김원봉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냉정하게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후예는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오늘도 암약하고 있다.

다음 대화는 백범일지에 나오는 김구와 당시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이면서 임정의 군무총장(軍務總長)을 지낸 이동휘와의 대화다.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독립운동의 이름으로 포장된 공산주의자들의 속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독립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중국공산당, 소비에트와 연대한 공산국가 건설이었다.

이동휘는 호가 성재(誠齎)인데 블라디보스토크(海蔘尉)에서 이름을 바꾸어 '대자유'라 행세하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총리가 나에게 공원 산보를 청하기에 동반하였더니, 조용히 자기를 도와 달라고 말하였다. 나는 좀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제가 경무국장으로 총리를 보호하는 터에 직책상 무슨 잘못된 일이 있습니까?" 대답하니, 이씨는 손을 저으면서 답변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요. 대저 혁명이란 유혈사업으로 어느 민족에게나 대사인데, 현재 우리의 독립운동은 민주주의혁명에 불과하오. 따라서 이대로 독립을 한 후 또다시 공산혁명을 하게 되니, 두 번 유혈은 우리 민족에게도 큰 불행이오. 그러니 적은이(김구)도 나와 같이 공산혁명을 하는 것이 어떠하오?"

나는 반문하였다. "우리가 공산혁명을 하는데 제3국제당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공산혁명을 할 수 있습니까?" 이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불가능하오."

나는 강경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다. "우리 독립운동이 우리 한민족의 독자성을 떠나서 어느 제3자의 지도, 명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존성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입니다. 선생은 우리 임시정부 헌장에 위배되는 말을 하심이 크게 옳지 못하니, 제(弟)는 선생의 지도를 따를 수 없으며 선생의 자중을 권고합니다." 그러자, 이씨는 불만스러운 낯빛으로 나와 헤어졌다. -백범일지, 김구 청문회1-

대한민국의 건국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2차 대전 후 급팽창하는 소비에트 혁명(공산주의) 전파는 한반도의 38선에서 멈췄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은 공산국가, 유엔군이 점령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했다. 이념이 서로 다른 두 체제는 전쟁까지 치렀지만 통일국가 수립에 실패하고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유럽, 아시아를 휩쓴 붉은 무리는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이지 못했다. 우리의 선조들이 온몸으로 막아냈고, 국제사회가 나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다.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점이라고 해야 할 대한민국, 붉은 사상의 거대한 쓰나미를 이 작은 나라가 막아낸 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와 최전선에서 싸웠던 반공투사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잊혀진 존재다. 우리는 붉은 무리를 온몸으로 막아낸 해방전후의 반공투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번영은 자유민주주의 질서 위에 건국했기에 가능했다. 자유야말로 풍요와 번영의 토대다. 자유의 힘은 인류 역사가 보증하고 대한민국이 증명했다. 반공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문명사적 투쟁이었다. 인류문명의 파괴자 공산주의에 맞선 반공투사는 자유의 수호신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장 감사해야 하고 기려야 할 은혜로운 영웅들이다. 대한민국은 건국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방향을 잘 설정한 덕에 여기까지 왔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공산당은 호열자(콜레라)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는 공산주의 사상이 사회주의, 민주화, 노동, 정의, 평등, 환경의 이름으로 위장해 사회 곳곳에 깊숙히 침투해왔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자유민주 질서를 중시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원리도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우리 주변의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할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건국정신으로 돌아가 공산주의와 전면전을 벌일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이념은 자유여야 한다.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체제가 근간이어야 한다. 달콤한 환상의 드라마였던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결국은 자유가 말살된 전체주의의 지옥문을 열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100% 자유를 보장해주는 제도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수 대중에 의한 지배가 가능한 사회다. 대중의 전제(全制)는 계급입법과 반대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판치는 인민민주주의를 불러들인다. 현재 우리는 자유민주주와 인민민주주의의 중간 쯤에 서 있다. 어쩌면 인민민주주의 쪽으로 더 기울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의 길을 가야 한다. 자유의 햇살이 고루 퍼지는 땅에는 만물이 소생한다. 인류문명의 근간은 더 많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몸무림이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자유의 근간이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도그마에 눌린 1987년 이후 지속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획일적 평등과 분배의 가치 추구에 몰두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은 확연히 사회주의, 전체주의, 인민민주주의 사회로 기울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는 3개의 선택지가 있다. 자유를 포기하고 획일적 통제가 횡횡하는 사회주의, 전체주의 체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해방정국에서 건국세력이 선택했듯 반공, 반전체주의 이념으로 돌아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강화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제3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역사의 교훈에서 길을 찾는 것이다. 문명과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소비에트의 70년으로 족하다. 더 이상 비극은 필요 없다.

공산주의자와 타협을 불허했던 보수 지도자들이 철저하고 잔인하게 무너지는 것에 겁을 먹고 민주화 이후 국정의 책임자들이 헌법에 명기된 책무를 방기하고 자유의 적 공산주의자들과 정면대결을 회피하며 뒷걸음쳐 온 것이 현실이다. 자유를 지키고 공산주의라는 호열자를 다루는데 움추리고 주저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내부의 적부터 근멸(根滅)해야 한다. 그들은 건국 이후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 획책했던 남노당의 후예들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엘 지블랫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한 국가의 국론분열은 이웃한 적성국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듯 대한민국 주변의 적성국에 대한 경계도 강화해야 한다. 대구 10월 폭동의 주동자 이재복이 김창룡의 특무대에 검거됐을 때 그가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잡혔으니 남한은 이제부터 잠잠해질 거요". 대한민국의 분열과 혼란 한 가운데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더 주저하면 모두 죽는다. 나라가 죽고, 국민이 죽고, 자유와 문명이 죽는다. 공산주의는 인류문명에 저항하는 바이러스다. 극복하지 못하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공산주의자 색출을 위해 자진하여 공산당의 소굴에 들어가기도 했다. 거지 행세를 하고 풍찬노숙하며 공산당을 근절시켰다. 자유를 지키는 일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신뢰와 미래 세대에 무한 책임을 갖고 나서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은 제 2의 김창룡을 기다리고 있다./ 이자성 자유민주시민(ljscam@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