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에 대하여
[강동완 칼럼]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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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다.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라 호칭하는것이 정녕 부끄럽지 아니한가. 대체 왜 희대의 독재자 이름을 존칭어까지 붙여가며 불러주어야 하는가.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재자를 위원장이라 부르면 진짜 위원장처럼 보인다.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말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기 남북정상회담 '쇼'는 한마디로 극적인 연출이었다. 사상 최악의 독재자인 김정은은 평화의 전령사로 포장되었다. 위원장과 여사라는 호칭 앞에 그들의 악랄한 독재의 가면은 가려졌다. 심지어 공영방송인 EBS의 자회사인 EBS미디어는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 ‘한반도 평화시대를 여는 지도자’라는 표현을 달고 교재를 발간한 정도였다. ‘평화가 경제다’라고 외친 이면에는 평화가 곧 '표'라는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평화쇼를 위해 무대에서 적절히 연기해 줄 주인공도 필요했으리라. 그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은 절묘한 한 수였다. 마치 정상국가의 스마트한 지도자 인양 이미지는 철저하게 연출되었다.

당시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호칭에 대한 지침까지 내릴 정도였다. 자신들이 그리도 비난하던 군부독재 시절의 언론통제와 다를 바 무엇인가. 언론은 '위원장'과 '여사'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불렀고, 급기야 일부 방송에서는 그 호칭을 부르지 않으면 패널들의 출연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필자는 최소한의 양심상 차마 위원장과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방송 출연을 요청받으면 위원장과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못 박았다. 결국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다.

지금도 언론에서는 '전두환 씨', '박근혜 씨'라는 호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518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서 ‘살인마 전두환’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직 대통령도 “씨”라는 존칭어로 경멸되는 시대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지금도 정치범수용소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김정은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수 백만 명의 주민을 굶겨 죽이고 인권을 말살하는 김정은을 위원장이라 불러준 것이야말로, 그들이 말한 평화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정상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은 바로 김정은과 리설주에 대한 호칭이다. 독재자 김정은이라 부르지는 못할망정 제발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로는 부르지 말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독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가? 호칭을 고민하기 전에 여전히 김정은을 위원장님이라 불러줘야 하는 그런 비굴적인 정상회담이라면 애당초 개최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위장평화쇼는 지난 한 번으로 족하다.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을 듣는 내내 통탄하며 가슴을 움켜쥐었을 수많은 애국 시민들의 절규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독재자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그를 더 이상 꽃으로 포장하지는 말자.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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