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전 조달청장
김상규 전 조달청장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나 순례자들이 안심하고 여행하기에는 여전히 위험했다. 이에 1119년, 프랑스의 기사 위그 드 파앵이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도회 설립을 제안했고, 예루살렘왕이 왕궁의 한 개 동을 내주고 수도회 본부로 삼게 했다. 수도회 이름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전사들"로서 그 수도사들을 "성전기사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망토를 걸친 성전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 측의 가장 숙련된 전투병력이었다. 창설 당시 기사단은 대단히 궁핍했다. 기사 두 명이 말 한 마리에 타고 있는 성전기사단 인장은 이들의 빈궁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난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당시 존경받던 프랑스의 성 베르나르(시토 수도회의 설립자)의 도움으로 성전기사단이 교회의 공식 승인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얼마 후 인노켄티우스 2세 교황은 각국의 세속 법률에 대한 복종의무까지 면제해 주었다. 그리하여 국경과 세금을 초월하고, 모든 속세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황직속의 수도회이자 군대가 탄생했다. 성전기사단은 기부 등으로 모인 돈을 창의적인 금융기법으로 증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1150년부터 성지순례자들을 위한 신용장을 발행했다. 순례자들은 출발 전에 고향 지역의 성전기사단에 귀중품을 맡기면 그 물건의 가치를 증빙하는 문서(신용장)를 받았고, 성지에 가서 이 문서를 제시하면 등가의 재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자리이타의 금융기법을 통해 순례자들은 도적들로부터 더욱 안전해질 수 있었고, 성전기사단은 더욱 부유해졌다. 
강력한 무장 집단이자, 청빈 서약을 한 성전기사단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왕들과 귀족들이 귀한 보물이나 돈을 기사단의 지부에 보관하기 시작했고, 그 자산을 활용해서 대출업무도 수행했다. 왕과 귀족들은 토지나 특정 지역의 징세권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기독교 교리에 따라 이자는 받지 않았지만, 상환할 때 누구나 기부를 했고 이것이 사실상 이자였다.
성전기사단의 신뢰가 높아지자 담보로 받은 징세권의 가치를 평가·매각하여 사실상 채권시장을 열었고, 어린 자녀를 위한 토지와 자금을 기사단이 맡아서 운영하는 신탁업무까지 수행했다. 효율적인 부동산 관리와 징세기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실은 재무와 회계 분야를 맡기기도 했다. 
이러한 금융 사업을 통해 성전기사단은 부유해졌고, 한때는 키프로스 섬 전체를 소유하고 독자적인 함대까지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부유해지면 시기 질투하는 자가 늘어나기 마련인데, 성전기사단에 기부가 몰리자 지역의 주교들이나 다른 수도회들은 질시를 하게 되었고,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상인이나 제조업자들의 불만이 커가고 있었다. 
  
한편 예루살렘이 무너지자 성전기사단의 군사적 중요성은 떨어졌다. 그러나 독자적인 상비군, 세금 면제, 자유로운 국경출입 등 특권은 유지되었고 유럽사람들은 대출 송금 등 성전기사단의 각종 금융 인프라를 계속 이용했다. 성전기사단은 세속 정부의 간섭이 없는 "국가 안의 다른 국가"가 되어 유럽의 왕들을 긴장시켰다. 특히 독일기사단이 프로이센에서, 구호기사단이 로도스 섬에서 자기들만의 사실상 국가를 만들었듯이 성전기사단이 프랑스 남부로 본부를 옮겨와서 자기들만의 국가를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어쨌든 독립된 군대, 재력 및 종교적 권위까지 있는 성전기사단은 프랑스 왕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게다가 총장 자크 드 몰레는 승산이 없는데도 대규모 십자군 원정을 주장하고, 기사단에 대한 왕의 간섭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성전기사단에 대한 불만과 우려는 각종 루머를 낳았다. 이단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었는데, 중동 지역에서 유대인, 이슬람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십자군 전쟁 등의 모순을 깨닫게 되고, 그런 태도가 은연중에 표출되면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또한 성전기사단의 간부가 이단으로 탄압받았던 프랑스 남부의 카타리파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 카타리파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 그들만의 국가와 종교를 세우려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필립4세는 이러한 뜬소문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 같다. 더욱이 필립4세는 할아버지 루이9세의 십자군 전비와 잉글랜드와의 전쟁 경비로 성전 기사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성전기사단의 재산이 탐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필립 4세는 십자군 전쟁이 사실상 끝났으므로 성전 기사단과 구호(성 요한)기사단을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전기사단의 단장 자크 드 몰레가 그 제안을 일축하자, 필립4세는 아예 성전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제거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바로 익명의 증언을 채택할 수 있는 이단 심문 방식이다. 이단 심문은 교황청의 인가가 필요했지만 말 잘 듣는 클레멘스 5세가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황은 1307년 11월 22일 모든 기독교 군주들에게 모든 성전사들을 체포하고 그들의 자산을 차지하라는 내용의 칙서를, 1312년 빈 공의회에서는 성전기사단을 해산하고, 자산을 구호기사단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칙서를 반포했다.

교황의 칙서가 나오기 직전인 1307년 10월 13일, 필립 4세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모든 성전 기사단을 아무 예고도 없이 체포했다. 우상숭배, 동성애, 금융부패, 위조행위 등 죄명을 덮어씌운 뒤, 죄를 ‘자백’할 때까지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 특히 성전기사단 총장 자크 드 몰레는 자백을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1314년 3월 18일 파리 시내에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드 몰레는 불길 속에서 클레멘스 교황과 필립 왕에게 “신께서는 누가 틀리고 누가 죄지었는지 아신다. 우리에게 죽음을 언도한 자들에게 횡액이 곧 닥치리라.” 며 저주했다고 한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28일 뒤에 죽었고, 필립 4세도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하여 8개월을 못 넘기고 죽었다.

2001년 9월 바티칸 비밀문서고에서 1308년에 작성된 ‘시농 양피지’ 가 발견되었는데, 성전기사단의 이단 혐의가 무죄임을 클레멘스 5세가 해산결정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공인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결정을 한 것은 쉽게 말해서 ‘고의’다 그런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곡 지옥편에서 단테는 2번째로 깊숙한 8환의 지옥에서 클레멘스 5세 교황이 곧 여기에 떨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성전기사단은 억울하게 화형을 당하고 해체되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를 보호하고 초기에는 십자군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3차 십자군 전쟁부터는 방관적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마 오래 중동지역에 살다보니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십자군 전쟁의 무익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전쟁보다는 자신들의 특권을 이용해서 경제활동에 더 주력했는지 모른다. 창의적인 금융기법을 개발해서 오늘날의 금융기관을 탄생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금융재벌로 발전해서 전사로서의 임무에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고, 부자이면서 베풀지 못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구호기사단과 달리 병원운영, 학교건립, 빈민구제 등은 하지 않아 돈놀이나 하는 집단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했을 까? 십자군 전쟁을 계속할 전비로 모아뒀을까. 아니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을까. 교황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적극 지지하지도 못했고, 정치적 방패막이인 교황권이 내려앉자 성전기사단도 몰락하였다. 

필립4세는 몰수한 재산을 다 차지하지 못했다. 구호기사단으로 상당 부분의 돈을 넘겼는데 합병의 명분을 살리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때 이른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 돈을 다 차지하기도 전에 필립4세가 죽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크 드 몰레가 화형당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죽었으니..... 
  
어쨌든 자크 드 몰레의 저주가 그대로 적중되는 것을 보면서 섬뜩한 느낌이 든다. 신의 징벌은 반드시 있고, 특히 공인의 죄는 더욱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 같다. 필립4세는 본인의 죽음도 맞았지만 아들들도 일찍 죽고 자손이 끊기게 된다. 카페 가문이 막을 내린 것이다. 가혹한 정치적 보복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멸망시켰다. 우리나라도 정치보복이 심해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수사하는 것이 관행화되었다. 그 업보를 어찌할 것인가?

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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