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4데. 왼쪽부터 창업주 박승직, 할아버지 박두병 전 회장, 아버지 박용곤 전 회장, 박정원 현 회장 /사진=두산, 연합뉴스
두산그룹 4데. 왼쪽부터 창업주 박승직, 할아버지 박두병 전 회장, 아버지 박용곤 전 회장, 박정원 현 회장 /사진=두산, 연합뉴스

두산그룹은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재계 서열 16위 기업집단이다.

과거 20여년간 꾸준히 재계순위 10위권대 초반을 유지해왔지만 채무조정을 위해 2020년 주력기업 중 하나인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면서 자산규모가 줄어 16위까지 하락했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그룹의 핵심이자 원전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재계의 대표적 진보기업인 카카오가 금융산업에 진출하는 등 몸집을 키워 15위로 올라섰다.

두산은 1987년 설립된 동화약품, 조흥은행(신한은행)과 더불어 창업한 지 120년이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동학농민운동 2년 뒤인 1896년, 고종 임금이 궁궐을 떠나 러시아 대사관으로 도피했던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 8월, 창업주 박승직(朴承稷.1864 ~1950)이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두산그룹의 시초다.

오랜 역사를 반영하듯, 2016년 3월부터 창업 4세인 박정원 회장(60)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두산은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창업주였던 박승직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포목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여 박승직상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반응이 좋자 1916년 공장을 만들어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을 생산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로인해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은 일제로부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46년 박승직의 아들이자 박정원 회장의 할아버지인 박두병(朴斗秉.1910~1973)이 두산상회를 세워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 동양맥주, 약자(略字)로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1978년까지 는 두산그룹의 이름도 OB그룹이었다.

두산그룹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위주였다.

OB맥주를 비롯,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두산백화, 두산경월,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같은 의류에 월풀의 세탁기까지 수입했다. 유가공사업(두산유업)과 즉석김치(두산종합식품)까지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하고, 1985년에는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다.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유독성 화학물질인 페놀을 유출, 낙동강을 상수원으로 하는 대구·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큰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두산그룹의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는 물론, 부동의 맥주시장 1위였던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 사건으로 창업 3세 장자이자 박정원 회장의 부친인 박용곤 회장이 물러나고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1995년 적자규모 9000억 원, 부채비율 625%로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996년 두산가(家) 3세들은 그룹의 미래를 건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룹의 뿌리인 식품 등 소비재 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큰형이던 박용곤, 둘째 박용오는 소비재 산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안의 뿌리나 다름없는 OB를 버리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셋째 박용성, 막내 박용만 등은 "다 죽게 생겼는데 가업(家業)이 무슨 소용이냐"며 되받아쳤다고 한다.

형제 간의 갈등이 그룹 전체로 번지면서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차남 박용오를 회장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혐의로 고발하는 등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형제 간의 싸움은 "지금 상태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다. OB맥주의 매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미국 컨설팅 업체 맥켄지사의 경고로 마무리됐다.

마침내 창업 3세대의 장자인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0년대에 들어 두산그룹은 인수합병과 사업매각을 통해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변신했다.

2000년대 초 10년 남짓한 기간 두산그룹의 행보는 공격적이었다.

돈이 되는 주력 기업들,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가집 김치까지 몽땅 팔아넘겨 실탄을 장전한 뒤, 2001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을 인수함으로써,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3년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두산은 해외에서도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두산중공업을 모태로 글로벌 건설중기, 해수담수화, 발전플랜트 시장 등 글로벌 ISB(인프라 지원산업) 분야로 회사의 모습을 바꿨다.

한때 채권단이 야구단 두산베어스의 매각을 권유했을 정도로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 두산그룹의 자금난은 두산건설의 아파트 분양실패에 두산그룹의 계열사들이 잇단 지급보증을 하면서 비롯됐다.

여기에 문재인 정권의 느닷없는 탈원전 정책이 두산그룹을 고사직전의 위기까지 내몰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두산의 주력기업이자 한국 원전산업의 대표선수 두산에너빌리티의 실적이 반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올 상반기 원자잿값 상승 등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에도 연결 기준 매출 6조8390억원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45.6% 뛴 수치다. 영업익도 같은 기간 11.3% 증가한 5198억 원을 기록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영업익은 3283억원으로 1년 전보다 45.9% 급증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회사 전반을 이끌 신성장동력으로 ▲차세대 원전(SMR·소형모듈원전) ▲가스터빈 ▲수소 ▲해상풍력을 내세웠다. 4대 성장사업의 올해 수주 목표액은 3조2000억원, 2026년까지 연평균 5조3000억원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4대 신성장동력 중에서도 '차세대 원전(SMR)' 사업은 윤 정부의 '친원전' 정책으로 수익을 확대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상태다.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생산업체로서 원전정책의 대표적인 수혜자로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우선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사업 재개가 큰 호재다. 신한울 3·4호기는 지난 2017년 두산에너빌리티가 수주했지만 지난 정부 시절 탈원전 기조로 공사가 잠정 중단됐다. 현 정부는 신한울 원전 건설 착공 시기를 오는 2024년으로 앞당겨 속도를 내기로 했다.

지난 4월에는 뉴스케일파워와 SMR 제작에 착수하는 협약을 맺기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 하반기 SMR 제작에 사용되는 대형 주단 소재 제작을 시작하고 2023년 하반기 중 본격적으로 SMR 본제품 제작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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