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서울시의회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가 개원하자마자, 현재의 TBS 조례를 2023년 7월 1일자로 폐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TBS 조례 폐지 조례안’을 소속의원 76명 전원의 공동명의로 발의했다. 이 조례안이 통과된다면 서울시가 연간 300억원이 넘는 TBS의 운영재원을 지원할 근거가 없어져, TBS는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의 ‘TBS 교육방송 전환’ 발언에 대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방송법 위반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TBS 구성원들은 이참에 ‘독립경영’도 하라는 서울시의회의 움직임에 허를 찔린 듯하다.

조례폐지안에 허 찔린 TBS 구성원들

이강택 TBS 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타겟이라며, ‘현대판 분서갱유’이자 ‘시보완박’(시사 보도 완전 박탈)이라고 반발하고 나섰고, 민주당 국회의원 77명은 ‘정치 권력의 공영미디어 길들이기를 즉각 중단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TBS의 양대 노조는 2023년 2월까지가 임기인 이강택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공무원노조의 후신인 ‘1노조’ 조합원들의 80% 가까이가 사퇴를 요구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노조 TBS지부 조합원들의 60% 이상이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강택 대표 사퇴요구에 동참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만큼 이번 ‘TBS 조례’ 폐지안이 TBS 구성원들의 급소를 찔렀다는 의미일 게다.

TBS 조례 이전인 ‘교통방송’ 시절에는 방송사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이 교통방송 사장이 아닌 서울시장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은 이미 3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교통방송 사업자로서의 권한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던 박 시장으로서는 교통방송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 시켜서 대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2018년 10월 교통방송 사장에 임명된 이강택 사장으로서는 박원순 시장 이후를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이런 두 사람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조례안 제출 당시 비용 추계서를 보면, 서울시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에만 무려 1,689억원을 TBS에 출연하는 것으로 계상하고 있다. 단순히 정치권의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교통방송을 독립시키기 위해 ‘TBS 조례’를 만들었다고 하기엔, 출연금 규모가 과다했다.

TBS조례로 무소불위의 대표 탄생 

2020년 2월부터 ‘TBS 조례’가 시행되면서, 이강택 사장은 TBS 대표로 새로이 3년 임기를 부여받았다. TBS 조례를 살펴보면 혹시 서울시장이 바뀌더라도 TBS 재단 출범 당시의 체제를 이어가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서울시장의 영향력을 대폭 줄여버렸다. 반면 대표이사에 대한 견제 기능을 유명무실화했다.

최고 의결기구로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뒀는데, 서울시 공무원이 2명, TBS 직원 중에서 뽑는 노동자 이사 2명, 방통위원장 추천 2명이어서, 후임 서울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11분의 2로 대폭 줄었다. 대표이사만 유일한 상근이사이고 이사장 포함 다른 이사들은 비상근이기 때문에, 대표이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이사회는 이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소집이 되고, KBS나 방문진 이사회에 부여된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에 대한 심의·의결 기능은 없으므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편파방송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이사회에서 문제가 됐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유선영 TBS 이사장은 얼마 전 이사회에서, 박정희 정권이 언론장악을 위해 불편부당성·균형·중립성 등을 판단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 ‘공정성’이 절대기준으로 부상한 계기라면서, ‘공정성’은 언론의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다는 독특한(?)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편파방송을 거리낌 없이 계속할 수 있었던 배경이 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도 혹시나 이사회의 권한이 너무 커질까 하는 우려에선지, 임원은 이사회가 아닌 임원추천위원회에서 2배수로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시장이 임명하도록 했다. 서울시장이 추천하는 2인, 서울시의회가 추천하는 3인, 재단 이사회가 추천하는 2인으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서울시 공무원인 당연직 이사 2명은 임원추천위를 선정하는 이사회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 혹시 서울시장이 바뀌더라도 시의회 선거에서만 이기면, 박원순 시장 당시 임명된 이사들과 손잡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구도이다.

TBS 조례로 자기네 진영의 영구 장악길 터놓아

TBS 조례를 제정한 것이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TBS측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민주사회 조직운영의 기본원칙인 ‘견제와 균형’을 무시하고 대표이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기네 진영들이 TBS를 계속 장악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꼬아놓았다. 이런 정성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청래 국회 과방위원장이 지난 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사장을 뽑는 구조를 6:3 이런 식으로 하지 않고, 25명, 50명, 100명 이런 식으로 만들면 아무래도 민주적으로 선출되면 그 뽑힌 사장이 공정방송을 하지 않겠느냐?” 지난 4월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던 ‘25인 운영위원회’안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필자가 지난 4월 16일字 펜앤마이크에 기고한 <누구를 위한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안’인가>에서 분석한 것처럼, 민주당의 ‘25인 운영위원회’案은 TBS 조례처럼 자기네 진영이 공영방송의 사장 자리를 계속 장악할 수 있게 하고, 사장에 대한 견제장치는 무력화시키는 법안이다. 자기 진영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클 때는 아무런 얘기도 없다가, 상대 진영의 영향력이 더 커지니까 인제 와서 못 받아들이겠다는 ‘내로남불’ 법안이다. 독일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본령은 버리고, 껍데기만 일부 빌려와서 국민을 현혹하려는 법안이다.

편파방송의 대명사 되어버린 공영방송,국민들은 잊지못해

국민은 지난 대선에서 마치 특정 진영의 선수처럼 편파방송을 일삼던 공영방송의 행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동료들을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무더기 징계하던 보복경영의 실상도 전해 듣고 있다. 최소한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내고 나서, 방송독립을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대선 때는 방송이 독립되지 않아서 편파방송을 했다는 말인가? 언론노조 핵심세력들끼리 논공행상을 하느라 ‘요즘 공영방송에 볼 게 없다’는 불만을 듣고 있으면, 여기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즉 지배구조는 공영방송에 부과된 공적 임무를 공영방송이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감독하는 구조와 과정을 의미한다. 지금 다른 나라 공영방송 감독기구들은 수신료 납부자에 대한 책무성 차원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수신료에 해당하는 공적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납부자에게 수신료를 부과할 명분이 약해지고, 나아가 공영방송 자체의 존재 이유도 상실되기 때문이다. 수신료를 받지 않는 공영방송이라고 해서 무풍지대는 아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내각은 2021년에 광고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 채널4를 민영화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공영방송은 왜 존재하는가

공영방송은 왜 존재하는가? 민영방송과 차별되는 공영방송의 책무는 무엇인가?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공적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가? 공영방송 이사회가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단체협약 등을 통해 언론노조에 공정방송의 감별사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옳은가?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한 개선책은 도외시한 채,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자기네 진영에서 사장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은 결코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공영방송이 왜 필요하냐며, 정치 권력의 영향력을 공영방송에서 배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영화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번 ‘TBS 조례 폐지안’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에 던지는 교훈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