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야구사랑은 유명하다./사진=연합뉴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야구사랑은 유명하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두산그룹의 4대 적장자인 박정원 회장에 앞서 두산그룹을 이끌었던 사람은 삼촌, 박용만이었다. 박용만 회장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동안 대한상공회의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재벌 회장 답지않은 활발한 SNS 활동으로 요즘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같은 ‘소통왕’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문재인 정권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궤멸시키고 선택한 재계의 파트너였다.

문재인 정권 쪽 좌파인사들과도 어느정도 코드가 맞았던 그는 두산그룹의 가업(家業)이나 다름없는 원전산업 폐기라는 중대한 이적행위를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전회장이 최근 두문불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전언이다.

한국 원전산업의 대표주자인 두산그룹의 주력,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영은 박정원 회장의 동생 박지원 회장이 맡고 있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잃아야 했던 두산에너빌리티는 윤석열 정권 출범과 함께 공격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달 유럽의 국제표준 시험인증기관인 'TUV SUD'로부터 원자력 품질관리 표준인 'ISO 19443' 인증서를 따냄으로써 유럽 원전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 체코와 프랑스 등 다수의 유럽 국가 원전 운영사들은 원전 주기기 공급의 제 조건으로 이 인증서 취득을 요구하고 있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은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두산그룹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했다. 입사 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두산그룹 내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통’이다.

두산산업에 입사한 뒤, 동양맥주 과장, 이사, 두산상사BG 대표이사, 두산건설 부회장, 두산모터스 대표이사, 두산 부회장,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두산 베어스 구단주 등 그룹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두산그룹 관계자들은 박정원 회장이 과묵하고 소탈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두산가(家)의 장손이자, 4세들 가운데 맏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가 무거워져서 생긴 품성으로 보인다.

박 회장의 가장 중시하는 경영철학 중 하나가 ‘인재육성’인데, 그가 구단주로 있는 야구단 두산베어스에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두산베어스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화수분 야구’로 KBO 리그의 최고 명문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2015년 KBS가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등 재계 주요 그룹 뉴 리더 11명의 경영능력을 놓고 실시한 전문가 50명의 조사에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이어 2위로 평가받은 바 있다. 두산그룹의 기업 순위에 비해 총수의 경영능력은 ‘최상위권’이라는 것이다.

박정원 회장의 야구사랑은 유명하다. 고려대 재학 중 야구 동아리에서 2루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야구와 기업경영을 연결해서 “기업의 성과는 특정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경우가 많고 이런 팀플레이로 이룬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경영은 야구와 유사한 점이 많고 야구를 보면서 기업 경영의 시사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중공업 기업으로서의 ‘두산그룹’을 완성하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재계 안팎에서는 두산그룹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 유동성 문제 해결도 시급한 현안이다. 두산그룹의 유동성 악화는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창이던 3년전 이 무렵, 한국신용평가는 당시 두산중공업에 대해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도입 백지화, 노후화된 원전의 단계적 폐쇄 등 에너지믹스 변경 정책으로 수주잔고 감소세를 겪고 있다”면서 “대외적으로도 친환경에너지 정책 기조와 경기 불확실성 고조 등이 이어져 수익성이 둔화되는 경향”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두산그룹은 창업 120년이 넘은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이지만, 4대를 거치는 동안 그룹이 분할된 적은 사실상 한 번도 없었다.

창업 3, 4세대에 이르면서 삼성은 CJ, 신세계 등으로, 현대가는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등으로, LG는 GS, LS, LIG 등으로 분할됐다. 창업주의 형제나 자녀들의 독립, 분가(分家)에 따른 것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을 필두로 그의 부친이자 창업 3세인 박용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형제들, 즉 박 회장의 삼촌들과 그 자녀들, 4촌들에 의한 ‘대가족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했을 때, 재계에는 박용곤 회장 동생들의 ‘독립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정원 회장의 삼, 사촌 중 그 누구도 두산그룹에서 독립해서 나간 사람은 없었다.

박정원 회장에게는 두명의 동생이 있는데, 여동생 박혜원 오리콤 부회장, 남동생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이 주요 계열사 경영를 맡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아버지, 고(故) 박용곤 회장의 동생 여섯 명 중 자신을 비롯한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일정 기간 그룹 회장으로 경영을 총괄했다. 두산그룹의 이런 대가족 경영은 끈끈한 우애(友愛), 전통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자그마치 스무 명에 가까운 삼촌, 사촌들이 10여 개 남짓한 계열사의 고위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재계 안팎의 우려 또한 적지않다.

대표적인 것이 ‘배당잔치’ 논란이다. 두산그룹의 계열사가 2014년부터 유동성 위기로 몸집을 줄이고 희망퇴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반면, 오너 일가는 매년 수백억 원, 회사의 순이익보다 많은 배당을 받아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중에 “두산그룹의 가장 성공한 계열사는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두산베어스는 20세기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2000년대 최고의 명문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산베어스의 성공은 박정원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경영 스타일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두산베어스 야구단의 한 고위 임원은 “야구단의 성적은 야구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구단주가 선수단과 프런트의 영역을 철저하게 존중해주고 전폭적으로 응원해주었기에 영광을 맞을 수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두산그룹의 기업문화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팎에서 평가하는 두산그룹의 분위기는 “최고령, 장수(長壽)기업으로서 전통과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산이 창업 4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가치는 ‘인재의 소중함과 인화(人和)’ 등 사람을 존종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두산가(家)는 선대부터 박정원 회장의 삼촌들까지 모두 인품이 중후하고 경우가 바른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두산그룹 역시 LG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오랜 역사, 우직함과 성실함 등 전통적인 가치로 사람을 중시하는, 보수성이 기업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LG와 쌍벽을 이루는 두산그룹 특유의 보수적 기업문화가 박정원 회장이 내놓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첨단, 스마트한 두산문화의 재창조’는 ‘새 먹거리 창출’ 못지않게 중요한 박정원 회장의 과제로 꼽힌다.<펜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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