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자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1.6.29(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자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1.6.29(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100일이 흘러갔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이 지나간 것이다. 허니문 기간이란 용어는 새로 집권한 정부와 선거에서 패배한 야당이 자리 잡을 때까지 정쟁을 최소화하겠다는 일종의 휴전 기간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부에게 허니문은 아예 없었다.

집권한 정부는 국민들에게 확실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허둥거렸고, 여당은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맞나 싶게 자중지란에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야당이 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온갖 비리와 불법 의혹을 받고있는 이재명 후보 살리기와 윤석열 정부 트집 잡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퇴행적 한국 정치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관용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신사도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지역 패권주의와 대중영합적 정치행태로 생존해온 B급 정치인들에게 거창한 국가관은 고사하고 정책적 고민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을 만큼 추악한 저질 정치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급락하는 지지율 때문에 패닉에 빠진 윤석열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인사 개편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하는 것 같다. 여당은 ‘녹슨 전가의 보도’처럼 되어버린 비상대책위원회를 또다시 출범시켰지만 내홍의 여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반면에 야당은 말 그대로 ‘더불어 재명당’으로 일사불란한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전열이 정비되고 나면 첫 전장터는 9월 말 국정감사가 될 듯싶다. 어차피 비전도 정책도 없는 두 정파가 충돌하는 국정감사는 막장 싸움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국정감사는 여야가 정략적으로 유리한 증인들을 불러내 마구 호통치는 자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니 많은 국민들은 ‘3M’ ‘이모’ ‘술주정 논란’보다 더 재미있는 코미디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국정감사가 이전투구식 개그콘서트 무대로 희화되면 여야 모두가 국민들의 질타를 받겠지만, 집권 여당이 더 치명적으로 타격을 입게 마련이다. 더구나 이미 기대치가 바닥 수준에 있는 야당 의원들은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지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기대치는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 국정감사는 야당의 공간이다. 특히 이번에는 야당의 공세가 더욱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정부·여당이 수세적으로 방어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을 넘어 포기할 단계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런 비관적 전망을 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이른바 ‘빅 픽쳐’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분야에서 명확한 목표 없이 산발적으로 발표한 정책들이 정권에 대한 신뢰를 크게 추락시킨 바 있다. 수많은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태에서 즉흥적이고 단발적인 정책들은 도리어 엄청난 갈등과 저항만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정책목표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획득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이든 벽에 부딪치게 되고 국정동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주요 분야별 정책목표와 지향점을 확실히 재설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미디어 영역은 더 답답하다. 현 정부 들어 미디어 정책의 지향점이나 방향이 발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냥 여권 혹은 주변 인사들이 언론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방송을 되찾아야 한다는 희망사항인지 요구인지 모를 주장들만 제기되었을 뿐이다. 정부의 어떤 책임있는 사람도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 정책의 목표는 이겁니다”라는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야당에게 과방위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주었다. 심지어 초강성 야당 중진 위원이 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들이 추진했던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 법안’ 즉, 공방영장(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렇게 장악한 KBS수신료도 인상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인지 위협인지 모른 말도 덧붙였다. 서울시의 TBS 정책도 문제삼겠다고 한다. 말 그대로 폭풍질주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과연 여당은 이에 어떤 대처방안이 있을까? 솔직히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번에도 이전처럼 개별 의원들이 백병전으로 각개전투하듯 방어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비는 아무리 잘해도 이길 수는 없다. 특히 여당은 비기는 것이 곧 지는 것이다. 그러니 최선의 수비는 공격 밖에 없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미디어 정책 방향에 대한 ‘빅 픽처’를 설정하고 세부 정책적 대안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난 정권이 정치적 득실에 따라 왜곡시킨 미디어 구도와 잘못된 정책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급락하는 지지율 반전을 위해 인사 개편을 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존재감조차 알 수 없었던 홍보라인도 바꾼다고 한다. 아마도 대통령과 정권이 언론에 잘 보이게 만들 인사를 선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처럼 극도로 기울어진 언론구도에서 그런 기능적 인사는 백약이 무효일 게 분명하다. 결국 답은 왜곡된 언론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인사 개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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