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가끔 글감이 떨어져 난감할 때가 있다. 시의성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칼럼을 쓸 때 더 그렇다. 사건은 알아서 때 맞춰 터지지 않고 뒷북처럼 시시한 글도 없다. 믿는 게 있다. 국힘당 관련 뉴스를 들춰보면 쓸 게 반드시, 꼭 한 두 개는 나온다. 그것도 대부분 코믹한 내용이어서 쓰면서도 독자들과 재미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매우 즐겁다. 항상 웃긴 것은 아니다. 가끔 그 당 의원들은 끔찍한 발언을 하신다.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따위가 그런 건데 아이 씨 만지긴 어딜 만져!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냥 댁의 몸이나 만지시라. 초심으로 돌아가, 뭐 이런 표현도 가끔 하신다. 무릎을 치며 웃게 된다. 초심이 없는데 돌아가긴 어디로 돌아가. 하여간 다양하게 각양각색으로 재미있는 당이다. 이 당이 또 고마운 건 가끔 특집 버라이어티쇼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대본 없이 우발적으로 진행되는 리얼리티 예능이다. 올 상반기에 시작해 현재 시즌 2를 열고 있는 이 쇼의 주인공은 당대표다. 어쨌든 서로 간 예의는 갖추자는 한 최고위원의 악수를 뿌리치는 장면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앗, 실례, 이것은 초등학생 비하 발언). 하여간 그렇게 티격태격하더니 윤리위원회 징계가 떨어졌고 이참에 아예 당대표를 쳐내자는 세력과 죽어도 그 꼴은 안 당하겠다는 세력 사이에 내전이 시작됐다. 당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이 새끼, 저 새끼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웃음을 주더니(아, 공식 석상에서 저런 정도의 표현을 해도 되는구나) 친親 대통령 세력들을 아랫목에서 끌어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직 반격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아마 만만찮을 것으로 확신한다. 솔직히 이런 드라마틱한 이벤트와 상상 초월의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데 한국 드라마가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이다. 모쪼록 몸 아끼지 말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신나게 싸워 국민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사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아참, 그런데 비웃어도 복이 오나?

국힘당은 한국 보수의 바로미터

당대표 6개월 당원 자격 정지 때부터 내전은 예정되어 있었다. 분란이 벌어질 주변 환경을 아주 풍성하게 조성해 준 꼴이다. 아예 쳐내거나 아니면 징계 사유 없음으로 갔어야 이런 일이 안 생긴다. 윤리위원장은 야비했고 야합했다. 양쪽에서 욕을 덜 먹겠다는 그 미지근한 눈치 보기 판결은 국힘당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매사 적당히. 결단력 부족, 박력 결핍이다. 그 부족과 결핍 때문에 이번 내전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해서 펼쳐질 것이다. 주변을 보면 아직도 국힘당의 행태에 욕하거나 분노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슬프다. 싫어죽겠는데, 그 싫은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능력도 있는데, 얼마든지 갈아치우고 새로운 세력을 올릴 수도 있는데 화만 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데 왜 정작 국민은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국힘당은 현실과 떨어져 별도로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다. 국힘당은 한국 보수가 만들어 낸, 딱 한국 보수 수준의 정당이다. 보수가 좀 더 똑똑하고 냉철하고 결단력이 있었다면 이런 정당은 살아남지 못한다. 해서 보수가 국힘당을 욕하는 것은 어쩌면 누워서 침 뱉기다. 소생이 국힘당을 내내 조롱으로 일관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이 떨어질까 고개를 돌리는 치사한 처세다. 극단적인 예지만 선거를 보이콧하면 한 명도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들이 정신을 차린다면 4년 간 여당 멋대로 정치를 풀어나가 발생하는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겨우 이들을 정신 차리라고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다. 보수의 결단력은 보수 자체를 변화 시킨다. 변화는 보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힘당의 변화는 거기 딸려 나오는 부록이다. 한국 보수는 자신을 바꿀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

용산은 국힘당을 닮아가는 중인가

국힘당의 결단력 부족과 박력 결핍의 모습이 용산에서도 보이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는데 뭔가 시작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뭐를 끝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충격이었다. 핵폭탄을 수류탄으로 만드셨다. 그것도 불발 수류탄으로 아주 고철을 만들어버렸다. 보수를 결집시키고 권력을 타당하고 무섭게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순간 용산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뭐야 센 척 하더니 별 거 아니네? 그 때 얻은 학습효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화물 연대의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는 목표가 뚜렷해서 좋았다. 미운 놈, 싫은 놈 감옥 보내기와 나라 망치기다. 용산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왜 하필 절대 닮지 말아야 할 국힘당을 흉내 내고 있는가. 마키아벨리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그 길을 용산은 지금 가고 있다. 용산을 빈정대고 조롱하는 글을 쓰게 될까봐 벌써부터 심란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