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주년 맞았지만 중국의 위협은 실재해
한미동맹, 미국 동맹국들과의 '합종'으로 중국의 '연횡'에 맞서야
대한민국은 1992년 8월 21일 대만의 중화민국에 단교 문서를 전달, 24일엔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중국(One-China)'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중국과 수교할 수 없어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이제 24일로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한국의 경제·안보 측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중국이니만큼 한중수교 30주년 관련해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소원해진 한중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미중 패권 경쟁'의 과정 속에서 한국이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등장한다. '이데올로기 중심보다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라는, 한국 외교를 거론할 때 늘 등장해 다소 진부하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해법이 어김없이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한국이 자국의 능력 및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국제 정세에 대한 시야를 넓혀 한중관계를 냉철히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일단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균형자·중재자를 할 수 있단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또한 미·중 사이에서 취해왔던 '안미경중'의 기조가 앞으로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서 버림받을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아울러 한국이 현재 지나치게 중국을 염려하여 '합종'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이 한국에 취하고 있는 제스처가 그를 막기 위한 '연횡'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에서 균형자, 중재자란 듣기엔 좋아보이지만 결국 한쪽 진영에서 보면 회색분자이자 믿을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군사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이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근대 외교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란 지적이다. 이는 마치 양쪽이 균형을 이루던 양팔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다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위로 떠오른 쪽에 추가로 놓게 되는 여분의 추와도 같다. 한국이 균형자,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동아시아 역내에서 힘의 균형이 미·일 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중국 쪽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단 것이다.
균형자는 한미동맹으로 미국 쪽에 묶여 있는 한국과는 맞지 않고, 강력한 국력을 가진 '중립국'임을 선언했을 때 가능하단 지적이다. 중립국의 전형은 19세기 후반 프랑스·러시아 동맹과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동맹 사이에서 우리말로 '영광스러운 고립' 또는 '화려한 고립(Splendid Isolation)'으로 번역되는 중립국 기조를 유지했던 대영제국이다. 당대 대영제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이렇듯 중립국이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힘이 강한 나라여야 가능한 것이고, 일시적으로 어느 한 편을 들었을 때 그 편의 우세를 확실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보유해야 한단 분석이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란 것.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동안 미·중 사이에서 취해왔던 '안미경중'의 애매한 태도를 바꿔야 한단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구축한 세계무역체제의 단꿀을 빨아먹으며 성장해 온 중국이 미국에 협력하거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체제를 변경하기는커녕 도련선을 그어 미국과 태평양을 반분하고 대만을 무력 침공할 준비를 하는 등 기존의 국제질서를 바꾸려 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로 인해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했으며 동맹국들을 다시 규합하고 있다. 이를 명징하는 것이 8월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아시아 순방이었다. 거기에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및 '칩4' 동맹을 맺어 경제적으로도 중국을 적극 견제하려 하고 있다. 결국 한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계속 참여하려 한다면, 미국이 제안하는 국제기구 가입에 적극 동참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또한 한국이 역내 미국 동맹들과 '합종(合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주변국과 비교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영토·인구가 큰 '대국'이지만 중화사상·패권의식을 바탕으로 이웃국들에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이에 대응해 중국의 위협을 느끼는 다른 나라들과 연합을 추구하는 외교 정책이 한국에 적극 요구된단 것이다. 역사적으로 어느 한 나라가 지나치게 커지면 그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주변의 다른 나라들이 뭉쳐 그 나라를 적극 견제하는 현상이 유럽에서 일반적이었고, 이는 근현대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란 평가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 동맹국들 중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한국은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으므로 중국에 자국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어려운 입장. 또한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국으로 경제적 의존도도 상당하다. 중국은 이를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드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의 '3불정책' 더 나아가서는 '3불1한'까지 내세우며 한국의 안보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문화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은 2017년부터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제되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며 '연횡책(蓮橫策)'이란 평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역시 외교적 지렛대가 필요하단 분석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한국의 외교 역량은 주로 대미·대북·대중 관계에 국한된 실정. 이제는 시야를 넓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대만·호주 등의 나라들과 적극적인 '합종책'을 추진해야 한단 지적이 한국 사회 저변에 더욱 널리 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이 근대 외교를 시작한 지 7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외교의 백년 대계, '세계 전략'을 수립할 때 가능하단 평가다. 거대 제국을 운영해본 중국,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세계를 거시적으로 보고 독자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한미안보동맹'을 통해 자국 방어에만 힘쓰고, 북한문제에만 몰두하며, 중국과 협력해 경제적 이득만 취하려 하고, 반일적 국민정서에 기대 대(對)일본 외교엔 소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이 외교안보전략의 초점을 중국에 맞춰 군사적·경제적으로 포위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얼마나 미국에 협력하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 소원해진 한미관계의 복원을 공언했으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군사안보동맹을 넘어 경제안보·산업안보·기술안보를 추구하는 동시에 한국이 공급망 재편에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한국 정부의 태도는 '안미경중'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애매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한미군사훈련은 실시하지만 칩4 동맹 참여에 주저하고 있을 뿐더러 지난 3일 펠로시 의장이 방한했을 때 의전 및 패싱 논란이 일어났기 때문. 거기에 윤 대통령과의 만남도 불발됐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의회 신문 더힐에선 사설을 통해 미국이 한국을 믿을 수 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공격적 현실주의를 주창하는 국제정치학자인 미국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무정부적 국제질서 하에서, 각 국가는 스스로의 안전을 최우선적 이익으로 추구하며, 그를 위해 패권국이 되는 길을 추구한다"는 지론을 내세운다. 이에 따르면 국제질서에 도덕을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중국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뿐이며, 한국은 한국의 안전을 위해 힘쓸 따름이란 것이다. 결국 한국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의 '합종'을 통해 안보를 확실하게 추구하는 것은 그 어떤 나라로부터도 침해받을 수 없는 한국의 주권이자 권리란 결론이 나온다. 24일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비즈니스포럼'에서 나온 한·중간 '동반자 관계', '상호존중', '공동이익 확대'란 미사여구가 허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한국이 미국의 동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단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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