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IRA)’이 본격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의 희비는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이 법은 온실가스의 대대적 감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자동차 산업 등에 3690억달러(482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제외된 현대기아차는 당분간 가격 경쟁력 상실
IRA가 발표됨에 따라 현대기아차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업체와 원자력 업체에는 수혜가 예상된다.
현대기아차의 피해는 바이든 대통령이 IRA에 서명하기 전부터 이미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로 한정되면서다. 미국시장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전기차인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는 모두 국내생산이다.
미국에 약 14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현대차그룹은 2025년에야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3년 동안은 한 푼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북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셈이다.
633조 중 80%를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한화솔루션은 연 2687억원 세액공제 혜택 예상
반면 테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업체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관련 인프라에 향후 10년 동안 4850억달러(약 633조41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할 방침이다. 예산의 80% 정도가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된다. IRA의 주요 내용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관련 제품 부품 조달 등은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공급망 재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POLITICO)는 8월 20일 미국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중국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됐다고 분석하며, “지구는 건전한 경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IRA로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이 외국 기업 중 주된 수혜자가 됐다고 23일 보도했다.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조지아주에 1.7GW(기가와트) 규모 모듈 공장을 운영 중인 한화솔루션 측은 블룸버그에 "내년부터 매년 2억달러(약 2천687억원) 이상의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원자력 발전사업도 세금 혜택 받게 돼, 두산에너빌리티가 수혜자 부상
IRA에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외에 ‘원자력 발전산업에도 세금 혜택을 주기로 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국내 기업의 기대감도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아 원전이 덜 부각된 측면이 있지만, IRA에 원전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국내 기업 중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의 수혜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은 과거 34년 동안 원전 건설을 하지 않아 시공 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 허가를 받은 원전은 모두 한국 기업이 참여했기 때문에, 현지 신규 원전 건설이 증가하면 한국 기업의 수혜가 예상되고 있다.
28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IRA에는 2024~2032년 동안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에 메가와트시(MWh) 당 15달러 상당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규 원전을 건설할 경우 설비투자 금액의 30%에 대한 투자 세액 공제도 받을 수 있다. 기존 석탄발전소 부지에 원전을 건설하면 추가 10% 세액 공제를 받는다. 미국 원자력협회(NEI·Nuclear Energy Institute)는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 1MWh당 최대 44달러의 세제 혜택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34년간 새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이후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독자적 건설 능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향후 미국에서 신규 원전 발주가 진행될 경우, ‘미국 기업 설계-한국 기업 시공’의 협업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미 공조로 추진하는 해외 원전 수출 전략과 같은 모델인 셈이다. 미국은 원전 시공 능력이 없는 만큼, 한국 기업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미국 노후 원전의 수명이 연장되면, 현지에 부품을 납품했던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대거 참여한 미국 SMR 프로젝트도 주목된다. SMR은 전기 출력 300㎿급 이하 차세대 원자로를 의미한다. 1000~1400㎿급인 기존 대형 원전보다 출력이 작지만, 원자로와 냉각재를 하나의 용기에 설치하기 때문에 건설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발전 효율과 안전성이 기존 원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IRA에는 2026년까지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연료의 연구개발에 7억달러(한화 약 9350억원) 지원이 포함돼 있다. HALEU는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SMR의 원료로 사용된다. SMR이 건설되면 기존 원전과 마찬가지로 IRA에 따른 세액 공제를 받게 된다.
SK그룹이 투자한 테라파워가 IRA 원자력 부문 최대 수혜기업 될 듯
SK그룹이 투자한 테라파워는 이번 IRA 원자력 부문에서 최대 수혜 기업이 될 전망이다. SK그룹은 최근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했다. 테라파워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가 설립한 차세대 원자로(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기업이다. 미국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는 이번 IRA 최대 수혜자로 테라파워를 선정했다.
두산에너빌리티, GS그룹, 삼성물산 등이 참여한 뉴스케일파워의 SMR 프로젝트도 주목받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투자사들과 함께 뉴스케일파워에 1억380만달러(한화 약 1740억원)의 지분을 투자하며, 수조원 규모의 기자재 공급권을 확보한 바 있다. 2019년에 뉴스케일파워로부터 SMR 제작성 검토 용역을 수주 받아, 지난해 1월 완료했다. 삼성물산 역시 뉴스케일파워사에 7000만달러(약 930억원)를 투자했다. 양사는 2029년 아이다호주(州)에서 상업 운전 예정인 SMR 프로젝트 등에서 협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