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에 속한 업체들에게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확대를 요구하는 압력이 커지면서, ‘RE100’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제조기업 중 대기업은 28.8%, 중견기업은 9.5%가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새만금 태양광발전 시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 제공]
새만금 태양광발전 시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 제공]

제조업 중 대기업의 28.8%는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받아, 33.3%는 2025년이 데드라인

대산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8일 밝혔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시점은 ‘2030년 이후’가 38.1%로 가장 많았지만, ‘2025년까지’(33.3%) 요구받는 곳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재생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거래처가 끊길 수 있다’는 압박인 셈이어서, 기업 입장에서는 RE100 대처가 절실해진 상황이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이다. 국가나 정부가 나선 것은 아니고, 민간에서 주도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구속력은 없지만, RE100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이들끼리만 거래를 할 경우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글로벌 영업망을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도 RE100가입 추진...포스코, “오스테드 등 RE100 철강재 요청하는 고객사 늘어”

현재 애플, 구글, BMW 등 379개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했다. 국내에서도 SK그룹 7개사,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22개사가 이미 참여했다. 아직 미가입 상태인 삼성전자도 RE100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RE100 캠페인이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이를 외면하기는 어려은 실정이다.

최근 세계 해상풍력발전 1위 업체인 오스테드는 지난 8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에너지 기업 최초로 오는 2025년까지 오스테드 공급망에 속한 모든 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공급망 전체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해 업계 최초로 2040년까지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오스테드는 전략적 협력사들에 적용됐던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 100% 사용 목표를 오스테드의 모든 협력사로 확대했다. 오스테드는 공급망 내의 모든 협력사가 전방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이들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오는 9월 재생에너지 전기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예정이다.

오스테드 측은 “모든 협력사가 탄소 순배출 제로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번 발표는 모든 협력사가 사용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권장·장려한다는 점이며, 의무적인 계약 요건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스테드의 재생에너지 100% 사용 정책은 의무가 아닌 기대 혹은 권장 사항이지만 국내 업체들이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오스테드는 지난 8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2025년까지 오스테드 공급망에 속한 모든 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사진=오스테드 홈페이지 캡처]
오스테드는 지난 8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2025년까지 오스테드 공급망에 속한 모든 기업의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사진=오스테드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5월 오스테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오스테드가 인천 앞바다에서 진행하는 1.6G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에 참여하는 포스코는 “오스테드를 비롯해 RE100 철강재를 요청하는 고객사들이 늘고 있어서, RE100 제품 생산을 위한 REC 확보 등 여러 수단을 동시에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의 압박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지만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기업의 RE100 이행 비용은 유럽의 1.5~2배

RE100 조건을 이행하는 방법은 3~4 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직접 짓는 방법이다. 둘째는 녹색프리미엄제도를 통해 웃돈을 주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것이다. 넷째는 전력거래계약(PPA) 등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REC 구매다. REC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 모두 국내 기업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한국에서는 이 방식을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각각 유럽의 1.5~2배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녹색프리미엄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입하거나 REC를 구매하는 방법은 수십 년 동안 일회성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중소·중견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기에는 불리한 자연적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위 30개 기업의 한전 전력 판매실적을 보면, 국내 전력소비 상위 5개 기업이 47.7 테라와트시(이하 TWh) 전력을 소비했는데 같은 해 국내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1 TWh에 불과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실시한 ‘신재생에너지보급실적조사’에서도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43%로, 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약 30%)의 4분의 1 수준인 셈이다.

두산중공업이 전남 영광군 백수읍의 국가풍력실증센터에 8㎿급 해상풍력발전기 시제품 설치를 완료했다고 지난 1월 27일 밝혔다. 우리나라는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사진=연합뉴스, 두산중공업 제공]
두산중공업이 전남 영광군 백수읍의 국가풍력실증센터에 8㎿급 해상풍력발전기 시제품 설치를 완료했다고 지난 1월 27일 밝혔다. 우리나라는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두산중공업 제공]

RE100 요구받은 기업들 상당수가 재생에너지 풍부한 해외로 이전 검토해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의 국내 RE100 가입 기업의 전력 소비량이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보다 적은 상황이다. 향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력 다소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에 대비해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당장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전력 소비가 많은 철강제조사들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곳으로 생산거점을 옮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미 포스코는 올해 3월 호주 자원개발 기업인 핸콕과 함께 저탄소 철강원료 생산 추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비단 철강산업만이 아니라 RE100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흐름을 막으려면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철강 같은 기간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철강업계에서는 ‘지금까지 국내 철강사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로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을 잘 갖추고, 에너지 비용을 저렴하게 유지한 덕분’을 꼽는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쟁력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싸게 빨리,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재생에너지 사정을 감안하면, 국제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대한상의는 기업들이 RE100 참여를 위해 희망하는 정책과제로 4가지를 꼽았다. 첫째‘경제적 인센티브 확대’(25.1%)이다. 둘째는 ‘재생에너지 구매를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의견(23.2%)이다. 셋째는 ‘재생에너지 전력인프라 확대’(19.8%)이고, 넷째는 ‘정보 및 재생에너지 사업자 매칭 컨설팅 지원’(16.5%) 등이었다.

대한상의는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전력거래계약(PPA) 주민참여형 사업에 인센티브 제공 ▶녹색요금제구매시 부가비용 면제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대형사업에 민간기업 참여 확대 ▶PPA 부가비용 최소화 등의 정책 지원과제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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