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를 밀어내버린 알약인데

“내 알약 어디 있더라?”

알약이 오작동을 일으켜 수많은 컴퓨터가 먹통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필자는 본능적으로 PC의 전원을 켰다.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테스크탑 컴퓨터의 안부가 궁금한 탓이었다. 컴퓨터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부팅되었고, 나는 일단 당장 알약을 제거하는 일에 착수했다.

컴퓨터에 설치된 알약 소프트웨어는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오늘날의 안철수를 있게 해준 안랩의 V3를 밀어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컴퓨터 보안용 백신 프로그램으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한 알약을 필자가 어느 때인가 지워버린 덕분이었다. 정확히 언제, 어떤 사정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삭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수시로 모니터 화면에 뜨는 업데이트 권유 알림 메시지가 귀찮아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필자 컴퓨터는 무탈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사람의 목숨인 인명은 물론이고 컴명, 즉 컴퓨터 목숨도 재천(在天)인 듯싶다.

필자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더군다나 남부럽지 않게 나이 먹은 중년 아저씨이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21세 첨단문명시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생존의 기본 기술일 코딩(Coding)도 할 줄 모른다. 따라서 알약 프로그램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생겨났기에 허다한 이용자들의 컴퓨터를 일시에 먹통으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온갖 불편을 겪도록 이끌었는지 자세하고 꼼꼼하게 이야기할 재주가 당연히 없다.

그런데 알약 사태에 관한 대략적 설명을 컴퓨터 구동 원리에 정통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통해 듣자 윤석열 정권이 지난 몇 개월째 계속 직면해온 총체적 난맥상이 그 즉시 대뜸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낡고 오래된 아날로그 정체성의 끝판왕일 윤석열 정권이 지금처럼 먹통이 돼버린 이유가 알약의 갑작스러운 난동 아닌 난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컴퓨터들이 돌연 무용지물이 되고 만 디지털 대란의 발생 원인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건 단지 흡사한 정도를 뛰어넘어 에누리 없이 완벽한 복붙, 곧 복사해 붙이기였다.

알약 사태의 본질은 아주 간단하다고 한다. 알약 프로그램이 윈도우즈 업데이트용 프로그램을 해킹 등의 목적으로 컴퓨터에 이용자 몰래 깔린 악성 프로그램을 뜻하는 랜섬웨어(Ransom Ware)로 오인해 무심코(?) 삭제해버렸다는 것이다. 기계에 비유하자면 동네 카센터에 정기안전검사를 맡긴 자동차의 멀쩡한 부품들을 경험 없는 무자격 정비사가 마구잡이로 떼어낸 격이었다. 그러니 운전자가 아무리 키를 열심히 돌려도 차량에 시동이 걸릴 리 없었다.

알약도 윤석열도, 업데이트용 구성요소들만 골라서 삭제해

“이거 완전히 윤석열 대통령이네!”

알약이 하필이면 황당하게 윈도우즈의 업데이트 기능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을 쓰지 못하게끔 건드렸다는 얘기에 필자는 약간의 망설임 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뇌리에 떠올렸다. 윤석열이 이준석을 국민의힘의 당대표직에서 찍어낸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정권과 집권여당이 곧장 먹통이 돼버린 까닭에서였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올해 치러진 제20대 대선에서 얻은 득표수와 알약 사용자의 규모는 거의 일치한다. 전자는 1,639만 4천여 표, 알약 사용자는 1,600만 명.

이쯤에서 이준석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기에 이준석 하나 숙청됐다고 윤석열 정권 전체가 먹통이 되느냐는 의문과 회의를 표시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답을 벌써 앞에서 제시한 바 있다. 업데이트 기능을 마비시켰다고.

그렇다. 이준석은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성과가 성공적이었든 아니면 미미했든 윤석열 정권의 업데이트 작업을 지속적으로 주도해왔다. 이준석은 윤석열 정권 내부에 답답하게 가득 찬 퀴퀴한 구태의 공기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가 당수로 선출되기 전에는 보수 정당과 별다른 접점을 가진 적이 없어온 젊고 신선한 청년세대의 진취적이고 재기발랄한 미래지향적 혁신의 기운을 국민의힘 안으로 인입시키는 환풍구 역할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무수하고 자잘한 업데이트가 꾸준히 축적된 결과물로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법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환이 다름 아닌 혁신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혁신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업데이트에 모질게 추방령을 선고했다. 그는 추방령의 선포와 동시에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안에서의 모든 혁신의 기획과 노력을 사실상 금지시켰다.

이준석을 한밤중 심야의 윤리위원회에서 전두환 소장 일당의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적으로 연행ㆍ구금한 1979년 초겨울의 12ㆍ12 쿠데타 식으로 몰아낸 후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세력인 윤핵관들이 가장 먼저 신속하게 취한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 조치는 최재형 의원이 이끄는 혁신위원회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최재형이 선관위가 진즉에 종결시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뜬금없이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업데이트를 책임진 젊은 당대표가 강제로 축출되고, 당의 혁신 과정을 추동하려던 소신파 정치인이 느닷없이 손발이 꽁꽁 묶이는 ‘동토의 정당’에서 이제 일반 대중의 눈에 띄는 가시적 움직임이라고는 본인과 본인 패거리들의 공천 여부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는 저사양 정치인들의 득세와 발호뿐이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 인맥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물을 먹었다는 ‘카더라’ 보도를 근거로 두 사람의 조기 몰락을 주장하는 시각이 일각에 존재하는 분위기이다. 악덕 기업인들이 부당 이익을 악착같이 챙기는 데 동원되는 주요한 수법이 있다. 바로 고의적인 위장부도이다.

필자는 윤핵관 계파에 속하는 참모 몇몇이 대통령 청사에서 퇴진한 일은 국민의힘의 구태 기득권 정치꾼들이 연출한 일종의 위장부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 업데이트도 안 되고, 혁신도 안 되는 썩은 냄새 풀풀 진동하는 퇴행적이고 억압적인 비민주적 풍토와 문화에서는 오직 윤핵관 부류의 저사양 정치인들만이 정치생명의 원활한 유지와 부단한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뉴라이트 무리들 가운데 한 명일 전희경 전 의원이 신임 정무비서관으로 내정됐다는 뉴스가 당신들의 눈과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가?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을 차례로 거치며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의 질과 수준이 버전업은커녕 도리어 버전이 낮아지는 저사양의 정치가 뉴노멀(New Normal)로 확고히 정착된 인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와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자는 다운그레이드가 안전한 대세로 뿌리내린 하향평준화의 세태와 시대상에 단연 압도적으로 최적화된 인물들로 평가된다고 하겠다. 민심과 불통하는 저사양 먹통 정치인들을 단숨에 업그레이드시켜줄 마법의 알약이 빨리 개발ㆍ보급되길 바라는 게 비단 필자 혼자만의 일방적 염원은 아닐 것이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