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경고, “한국은 과연 정상 국가인가?”
[김용삼 칼럼]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경고, “한국은 과연 정상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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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기자는 해양 국가인 일본은 현해탄을 경솔하게 건너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시는 ‘블랙홀’에 끌려들어 가거나,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구로다 기자의 경고는 말을 바꾸면 이제 한국이 죽든 말든 일본은 상관하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인의 반일 정서를 추적한 한국 전문가

일반적 한국인들은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있는데, 일본은 기회가 날 때마다 역사를 왜곡하는 나라”로 이해한다. 그러한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화제작이 등장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일본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의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라는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담고 있는 주제가 의미심장할뿐더러, 전 국민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78년 교도통신 서울지국장으로 부임한 이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으로, 현재는 산케이신문 서울 주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한국 주재 기간이 44년째다. 한국 전문 언론인이자 한국 전문가인 셈이다.

저자 구로다 기자는 “과연 한국은 선진국인가?”라는 명제로 시작하여 “한국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국가 맞아?”라는 의문으로 바뀌었다가, 결론 부분에서는 “한국은 국가로서의 용도가 폐기됐다”라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즉, 한국은 이제 도저히 국가라고 부르기 민망한, 아니 국가이기를 포기한 집단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의 한국 전문가가 진단하는 현 단계의 한일 상황은 한국에선 반일 에너지가 폭발했고, 일본에선 한국의 반일보다 더 강력한 혐한(嫌韓) 에너지가 기세등등하다. ‘반일과 혐한의 기원’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한일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파고든다.

구로다 기자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대중사회에선 반일이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반면, 식자층이라 할 수 있는 언론인·지식인·정치인들은 집요하게 반일에 올인하고 있다. 이들이 일반 대중을 선동한 결과 한국은 반일이면서도 반일이 아닌 나라, 친일이면서도 반일인 나라, 세계 제일의 반일국인 동시에 세계 제일의 친일국인 불가사의한 나라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구로다 기자는 한국 전문가답게 냉정한 시각으로 한국인의 반일 정서를 추적하여 그 논리구조와 배경에 대한 해부를 시도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저서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저서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일본인이 다 된 존재를 한국인으로 되돌리는 작업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은 내선일체, 일선 동조론, 황민화 정책을 통해 조선인의 일본화를 급속하게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해방이 찾아오면서 한국인은 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신생 한국이 닥친 시급한 과제는 거의 일본인으로 체질이 바뀌다시피 한 한국인을 원래의 한국인으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 일제시대를 무조건 부정하는 반일 교육이 국가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된 것은 이런 필요성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반일 교육을 통해 거의 일본인이 된 사람들을 진정한 한국인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일본통치가 얼마나 가혹했었는가를 지속해서 주입시켜 일본을 부정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인화한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일본’을 지워내고 본래의 한국인으로 바로 세우고자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등장한다. 만약 일본통치 시대가 그토록 악질적이었고, 지독한 빈곤과 고통과 암흑의 시대였다면 그 시대를 직접 체험했던 한국인들에게 애를 써 가며 반일 교육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구로다 기자는 일본통치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했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교육해야 했다는 사실은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며, 일본이란 국가와 국민이 한국인에게 나쁜 짓만 저지른 존재가 아니었음을 많은 한국인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일이라고 진단한다. 때문에 한국인의 반일은 이런 반작용 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을 통해 의도적·계획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구로다 기자의 분석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반일 현상은 해방 후 국가적·민족적 필요성에 의해 격화되었다. 나아가 일본통치 시대를 직접 경험한 구세대보다, 직접 체험 없이 일본의 나쁜 점만 교육받은 해방 후 신세대에서 반일 감정이 더욱 강해지는 기현상에 직면했다.

‘사악한 나라’ 이미지를 부추기는 작업

글로벌화가 진행되어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언론에서, 정치인들의 선동으로 형성된 ‘사악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일본에 충격을 받는다. 깨끗하며 친절한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학, 음식을 통한 친근감이 확산되면서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정서적 불일치 현상에 부딪쳤다.

이렇게 되면 어렵게 쌓아온 ‘사악한 일본’ 이미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므로 일본은 ‘악의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반일 퍼포먼스가 범사회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위안부·독도·욱일기·야스쿠니신사 참배·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등의 이슈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동원된 것이다.

때만 되면 터져나오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구로다 기자는 대일(對日) 적대감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스컴의 대대적인 반일 팔이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진짜 이유라고 진단한다.
때만 되면 터져나오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구로다 기자는 대일(對日) 적대감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스컴의 대대적인 반일 팔이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진짜 이유라고 진단한다.

외교 문제를 가지고 특정 국가의 제품을 절대 사지 말라는 불매운동을 거국적으로 펼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기현상이다. 이런 기현상은 일본 제품이 한국인들의 일상에 널리 침투하여 정착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한국인들이 일본 제품이나 일본 문화, 일본 가요, 영화 등을 너무 좋아하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지게 된다. 구로다 기자는 대일(對日) 적대감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스컴의 대대적인 반일 팔이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진짜 이유라고 진단한다.

저자 구로다 기자의 지적 중 뼈아프게 수용해야 할 점은 한국인들이 정신적 질병처럼 앓고 있는 피해자적 역사관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영원한 피해자로 규정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해석·분석·적용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해의식 속에는 아직도 충족되지 않은 민족의 한(恨) 내지 자존심이 짙게 서려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인은 자신들에게 닥친 모든 국가적 불행을 일본 탓으로 돌린다. 대한제국의 망국, 타의에 의한 해방, 분단, 지역감정, 분배의 왜곡 등등 자신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일제 탓, 외세 탓으로 돌린다.

남북 분단에 대해 한국인들은 “일본이 좀 더 일찍 미국에 항복했더라면 소련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었다면 분단은 없었을 것”이라고 일본을 탓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항복이 너무 빨라서 문제였다고 공격한다. 항복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광복군이 한반도로 진공하여 일본을 타도하고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마음에 안 들면 제멋대로 역사를 뜯어고쳐

이런 주장에 대해 구로다 기자는 “한국인들의 고질병은 ‘있었던 역사’보다 ‘있어야 했던 역사’를 중시하는 사고”라고 질타한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에 입각한 역사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는 “본래 이래야 했다”라는 식의 내용으로 뜯어고치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중화사상에 의해 일본보다 우월한 민족이라고 믿고 있는 한국인들은 오랑캐, 쪽발이 왜놈으로 비하하던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좀처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사례 중의 하나로 구로다 기자는 8·15 해방을 꼽는다. 한국의 독립은 연합국의 대일(對日) 승리로 이루어졌다. 한국인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하므로 40여 년에 걸친 독립운동가들의 열혈 고투에 의한 ‘자력에 의한 광복’으로 역사를 날조했다. 그 결과 일본통치 35년은 일본에 지배당한 비참한 시대가 아니라, 일본과 싸워서 이긴 빛나는 항일 독립전쟁의 시대로 바꿔치기 되었다.

저자는 한국이 한일병합 무효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이 대일 전승국이 되었어야 하는데 병합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한 데 대한 한(恨)풀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이 한일병합 무효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이 대일 전승국이 되었어야 하는데 병합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한 데 대한 한(恨)풀이라고 분석한다.

또 하나의 세례는 한일병합 무효선언이다. 병합은 이미 112년 전에 이루어졌고, 해방된 지 7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병합 무효’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이 연합국에 포함되지 못하여 대일 전승국이 되지 못한 ‘역사의 한(恨)’의 근원이 병합조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라는 한국 측 주장은 심정적으로 “우리는 일본과 싸워 이긴 존재이니 연합국의 일원으로 규정하여 대일 전승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한(恨)의 표출이라는 것이 구로다 기자의 분석이다.

구로다 기자는 “어디까지나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의 일을 현재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일본 문제라면 ‘불법’마저 용인하는 한국 정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상식이 되었다.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5억 달러의 경제원조 자금(한국은 청구권자금, 일본은 독립 축하금으로 해석했지만)과, 이와는 별도로 민간 차관 3억 달러를 수령함으로써 과거 식민지배와 관련된 보상 문제는 양국 정부 사이에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이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복잡한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한국인 대부분은 자신들이 영원한 피해자라고 믿으면서 일본에 대한 가해의식 같은 것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한국의 NGO 단체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정부 및 서울시의 허가도 받지 않고 대사관 앞 보도 위에 설치한 불법 시설물이다.

외국 공관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 행위는 비엔나 조약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일본 정부의 잇따른 철거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은 물론, 국내법을 위반한 설치물을 계속 방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교토에서 열린 한일 수뇌회담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위안부상이 생겨날지 모른다”라며 일본을 협박하기도 했다.

구로다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불법의 소녀상 시설을 용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한다. 일본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앞의 불법 위안부상을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한 것도 모자라 국가가 보호까지 해주다니!

“이처럼 국가 간에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나라를 어떻게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일본에서 일고 있는 혐한 정서의 최근 동향이다.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정부가 시민단체에 멱살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나라. 그 결과 국가의 권위와, 그것을 지탱해야 할 법치주의가 무너진 나라. 그런 것이 외교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전락했다.

구로다 기자는 한국은 이제 국가로서의 유통기한이 완전히 끝났다고 진단한다. 국내법·국제법을 막론하고 법치가 붕괴되었으니 더 이상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법치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역사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이 중국과 손잡고 반일 공동투쟁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 “한국은 이제 그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아무리 어려워져도 도와서는 안 된다”라는 원한론(遠韓論), 혹은 이한론(離韓論)이 제기되고 있다.

구로다 기자는 한국은 반도국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국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줄타기 외교’를 펼쳐왔다고 분석한다. 일본은 그러한 한국에 휘둘려 왔다는 것이다.

한일 병합도 한국으로서는 마지막 국면에서 ‘러시아냐 일본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본다. 결국 일본이 한반도를 통치하게 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로 깊숙이 끌려들어 간 ‘과잉 개입’의 산물이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일본에게 한반도는 무서운 ‘블랙홀’이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선배 세대가 한국에 너무 과잉 개입한 결과 쓰라린 원죄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 전문가 구로다의 분석이다.

다시는 ‘블랙홀’에 끌려가지 말아야

구로다 기자는 해양 국가인 일본은 현해탄을 경솔하게 건너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시는 ‘블랙홀’에 끌려들어 가거나,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구로다 기자의 경고는 말을 바꾸면 이제 한국이 죽든 말든 일본은 상관하지 말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스스로 국가이기를 포기한 한국을 정상적인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작심한 것 같다. 일본의 여론이 구로다 기자의 주장처럼 “한국은 이제 그만!” 상태를 유지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반일에 올인하느라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우방을 잃는 것이 과연 한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길인가?”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라는 책에서 구로다 기자는 이런 질문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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