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길러야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모두 존중하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진짜 교육
그 모든 것을 ‘인내’와 ‘사랑’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작년 1년. 학급의 급훈을 “Freedom is not free.”로 정하고 아이들에게 공짜 없이 사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쳤다. 물론 학년이 바뀌었으니 그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갈 길로 간 것은 물론이다. 1학년의 앳된 테를 벗고 벌써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키가 쑥 자란 아이들을 안교 안 이곳저곳에서 만난다. 교실에서 혹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도 잘하고 반갑게 맞는 아이들을 보며 유독 작년 한해를 걸쭉하게 보냈던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년 3월에 만나 꼬박 1년 하고 2개월을 보낸 지금, 그 추후가 유독 궁금한 친구가 한 명 있다. 도띵이.
(본래 이름은 도영이인데 휘갈겨 쓴 필체 덕분에 도영이가 ‘도띵’이로 보여 그날부로 아이의 별칭 겸 애칭을 도띵이로 불렀다. 아이와 담임인 나. 둘만의 약속이었다.)

도띵이는, 지난해 유독 선생님들이 불편해하는 학생이었다. 말투가 거칠고 존댓말을 구사할 줄 모르며 장난이 심해 급우들과 싸움도 잦았다. 학생부에도 간혹 불려 다니는데, 급기야 영어 수업 중 다른 학생과 멱살을 잡고 싸움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부에 혼쭐이 나고 교실로 가는 눈치였지만 모른 채했었다.

사건 다음 날 아침, 교실에 청소하러 가서 불러 대화를 시도 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뭐요!?”

기가 찼다. 잘못한 게 뭔지 설명하라 했더니 ‘뭐요?’ 한 마디 뱉더니 한참의 침묵 끝에 모르겠다고 했다. 알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모르면 내게 배워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평소와 전혀 다르게 고함을 꽥 질렀더니 아이는 당황했는지 움찔했다. 점심시간에 보자고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점심시간, 아이가 교무실에 찾아 왔다. 평소 같으면 다시 또 한 번 부르러 갈 때까지 내려올 리가 없는 아이인데 의외였다.

“왔구나.”
“….”
“너 오늘부터 <일기> 좀 써야겠다.”
“???”
“아침에 일어났다. 똥 쌌다. 학교 왔다. 끝. 이렇게 영혼이 없는 일기 쓰면 더 힘들어 질 테니 솔직하게 너의 하루에 대해, 교실에서든 길에서든 집에서든 네가 경험하고 느낀 네 생각, 느낌을 적거라.”
“노트 없는데요.”
“아무 노트나 된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일기는 매일 쓴다.”
“… 예.”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도띵이의 일기’였다. 찬찬히 읽고 매일 아이의 일기에 답을 써줬다.

도띵이의 첫 날 일기
도띵이의 첫 날 일기
키도 작고 작은 체구지만 수퍼맨이 되고 싶은 도띵이의 일기장 표지
키도 작고 작은 체구지만 수퍼맨이 되고 싶은 도띵이의 일기장 표지

하루 이틀. 아이의 일기는 ‘아침에 왔다’, ‘수업시간에 폰 뺐겼다’, ‘기분이 나쁘다’, ‘음악 들었다.’ 그런 일상에서 한 발작도 더 나가지 않았고, 넉 줄을 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석줄. 그러나 그 일기의 답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2/3쪽이 넘도록 빼곡하게 적어주었다. 어떤 날은 칭찬이 늘어졌고, 어떤 날은 사랑 고백을 하기도 했다. 부실하게 쓰면 너의 불성실을 입증할 뿐이라는 협박을 딱 한 번 하기도 했다.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일기는 계속됐다.

남들은 '못(안)하는' 일을 본인만 혼자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 특유의 짜증스런 표정이 열흘쯤 되자 조금 사라진 것은 매우 경이로웠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자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조금씩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일기 쓴지 20일 쯤 지났을 때 아이의 어머니를 저녁 시간에 조용히 학교로 모셔, 부모님 상담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대뜸 ‘아이가 뭘 잘못 했느냐’고 물으셨다. 일이 생겨서 모시면 늦는 것 아니냐고, 아직 아무 일도 없어서 뵙길 청한다고 했더니 안심을 하고 학교에 오셨다.
그리곤 그간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들려 드렸다. 아이들과 싸움이 잦고 어른들께는 언어 사용이 거칠며, 수업시간에 멱살잡이를 하며 싸운 일까지. 당황해 하시는 어머니께 슬며시 도띵이의 일기를 보여드리고 그간의 경과를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혹 아들과 다투었던 다른 아이들에게는 꾸지람을 하지 않고 당신 아들만 나무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감지가 되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말에 덧붙여 <도띵이의 일기>를 보여드렸다. 도띵이 어머니는 찬찬히 그간의 일기를 읽으셨고, 약 한 시간의 대화 끝에 종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돌아가실 땐 희미한 미소에 편안한 얼굴로 가시게 해 드렸다.

도띵이가 일기를 쓴지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러자 일기가 하루 씩 걸러지는 날이 생겼다. 아이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새로운 포맷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이제 더 끌었다가는 도리어 역효과가 일어날 듯해, 그렇게 '영혼 없이' 쓰려면 이제 일기는 쓰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아이는 잠시 당황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그냥 자신을 포기하라’며 나의 인내심을 한 번 더 시험하려 들었다.

함부로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 인줄 알고 있느냐고 이번엔 언성을 조금 높였다. 일기를 안쓰는 대신, ‘부르면 당장 반응할 것’, ‘누구의 질문에도 왜요, 뭐요로 답하지 말 것’, ‘인사 잘 할 것‘ 등의 몇 가지 약속을 하면 일기쓰기를 면해주겠다고 했다. 그날 부로 <도띵이의 일기>는 중단됐다.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40여일 만이었다.

그렇게 1년을 교실 안에서 자신의 책임과 자유가 중요하고 소중함을 가르쳤다.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나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타인이 자유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가르친 한 해. 엄청난 역동이 일어나는 공간인 교실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자유를 익히며 1년을 보냈고 새 학년 되어 벌써 1학기의 중간을 보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수업시간에 만나도 밝게 인사하며 웃는 아이들! 한 뼘 씩들 키와 생각이 자란 아이들!

도띵이는 지금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인사성도 바르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는 아이로. 지금 현재의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작년에 수업을 들어오시지 않던 선생님이신데 도무지 작년의 도띵이를 상상하지 못하신다. 그럼 된 것 아닌가.

도띵이는 달라졌고, 교육은 성공이니까!

교육은 가장 늦게 가장 깊은 곳에서 결실을 맺는 열매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을 가르치고 바로잡아 주는 것이 우리 교사의 사명이라 믿는다. 그 생각을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종종 잊는다. 바로 가르쳐도 또 이내 제멋대로 간다. 그걸 하나도 어기지 않고 지킨다면 그것은 아이가 아닐지 모른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 아직 미숙하니까. 필요하다면 꾸중도 해야 하지만 인내가 첫째다. 아울러 사랑이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영혼이다. 사랑 없이 자라는 생명이 있던가!

필자가 이렇게 아이들과 공감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선생님도 ‘감성 팔이’를 하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글쎄다. 학교 현장에서 공감과 소통 없이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에게는 전인격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수적일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다가서려는 소통의 노력과 사랑이 어떤 목적과 수단을 위한 의도적인 것과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있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을 정치적 수단이나 이념의 도구로 삼는 일은 결코 교사들이 해선 안 되는 짓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만난 세월도 제법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치게 하고 가끔은 눈물짓게 한 아이들 덕에 교사도 자라고 성숙하게 깊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 아이들은 교사의 스승이다.

아참,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마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 스승의 날이 반갑지 않다.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이 날이 기껍고 유쾌한 교사가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몫을 다하려 애쓰시는 이 땅의 선생님들과 오늘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 서로 토닥이며.

“마음의 평안이 깃드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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